입력 2020.07.07 08:47 | 수정 2020.07.07 13:14
"내 세금이 왜 성범죄자에게 쓰이나"
"피해자는 기가 막힐 것, 이게 나라냐"
비서 성폭행 혐의로 3년 6개월 형을 확정받고 복역중인 안희정(왼쪽) 전 충남지사가 6일 일시 석방돼 어머니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취재진을 만난 모습.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연합뉴스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받고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모친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박병석 국회의장,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해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조화·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자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2030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성범죄자에게 왜 대통령이 자신의 공식적 지위를 이용해 조의를 표하느냐” “안희정은 사법부가 ‘성범죄자’로 확정한 인물이다. 피해자 심정은 생각도 안 하느냐” “내 세금이 왜 성범죄자에게 쓰이느냐”고 하고 있다.
◇“문대통령 조화는 성범죄 사면장?”
공무원 박모(39)씨는 “문재인 대통령 조화가 성범죄자인 안 전 지사 모친 빈소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게 나라냐’ 싶더라”며 “문 대통령이 안 전 지사를 그렇게 아낀다면 ‘대통령 문재인’이 아니라 ‘자연인 문재인’ 자격으로 조화를 보냈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회사원 이모(28)씨도 “대통령 조화를 보니, 안희정씨가 사실상 ‘사면’을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고 했다.
안희정 전 지사 모친 빈소엔 유력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안 전 지사와 악수하는 이낙연 전 총리, 정세균 국무총리, 유인태 전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연합뉴스
이들은 대통령을 비롯, 국회의장·국무총리와 국회의원 등 고위 공무원들에게 부여된 지위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회의 한 보좌진은 “안 전 지사가 진심으로 자신의 성범죄를 사죄한다면, 정치인들이 개인 신분으로 조문하도록 하고 빈소 또한 비공개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처사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 모친 빈소는 사실상 안 전 지사의 ‘정치적 재기’ 무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6일 빈소인 서울대병원에 도착,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마지막 길에 자식 된 도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빈소를 찾은 지지자들이 “못 나오시는 줄 알고 걱정했다”고 하자 “걱정해주신 덕분에 나왔다. 고맙다”고 화답했다.
조문을 마친 여야 정치인들이 안 전 지사의 말과 표정을 앞다퉈 언론에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며 안 전 지사와 자신의 인연을 소개했고,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며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안 전 지사가 많이 여위었다”고 했다.
◇“얼마나 슬프겠냐” 앞다퉈 달려간 정치인들
일각에선 ‘모친상을 당한 안 전 지사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2030 여성들은 “누가 어머니 조문을 하지 말라고 했느냐. 다만 공적으로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회 여성 근로자 페미니스트 모임인 ‘국회페미’는 지난 6일 “안 전 지사 모친 빈소에 정치인들이 소속 단체 자격으로 조화ㆍ조기를 보낸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와 정당, 부처의 이름으로 조의를 표해서는 안 된다”며 조화나 조기 등을 개인 비용으로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2017년 12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가 송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도청 회의실로 들어서는 모습. 왼쪽은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지은 정무비서./조선일보DB
◇“성범죄 앞에도 관대한 ‘남성연대’”
정의당도 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것을 “무책임하다”고 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대법원에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안 전 지사 빈소에 여권 정치인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조화와 조기를 보내고 있다”며 “안 전 지사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2차 가해 앞에 피해자는 여전히 힘겨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오늘과 같은 행태가 피해자에게, 한국 사회에 '성폭력에도 지지 않는 정치권의 연대'로 비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정치권에서 성범죄자에게 공식적으로 ‘힘내라’고 굳건한 남성연대를 표한 격”이라며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성폭행범에게 직함 박아 조화를 보내는 나라. 과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위로할 사람은 안희정이 아니라 그에게 성추행 당한 김지은씨”라며 “그냥 사적으로 조의를 전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성추행범에게 ‘대통령’이라는 공식직함을 적힌 조화를 보낼 수 있는지”라고 했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페미정의당" VS "더불어마초당" 갈등 치닫는 안희정 '조화 파동'진중권 "안희정에 조화, 대통령이라면 공과 사 구별 좀"안희정, 모친상 온 與 인사들에 "이런 처지가 돼 미안"정의당 "文대통령, 성폭력 안희정에 혈세로 조화 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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