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 성지 바로 인근에 위치한 백곡 공소는 예로부터 깊숙한 산골로, 찾는 사람이 적었고 안성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말끔히 포장된 지금도 그리 인적이 흔치 않은 곳이다.
이 지방은 천혜의 피난처로 박해 시대 때 수많은 교우촌이 형성됐던 곳이다. 충북 진천군과 충남 천안시 그리고 경기도 안성시가 경계를 이루는 삼각점에 위치한 이 지역은 우선 그 지세가 험해 비교적 박해의 찬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위치가 각 지방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 교통이 편리했기에 박해 시기 은밀한 연락이나 밤을 틈탄 도주가 용이했던 것이 교우촌이 형성되기에 아주 적합한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진천 톨게이트에서 차로 17.4km 남짓 안성 쪽으로 달리면 ‘삼박골 비밀 통로 순교자의 묘’라고 적힌 푯말이 나온다. 배티 성지까지 약 2km,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이 비밀 통로는 박해 시대 때 신자들이 은밀하게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다.
톨게이트와 이 푯말의 중간쯤에 도로 왼편으로 바로 백곡 공소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소박하지만 단아한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는 공소는 오랜 풍상을 겪어 왔으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스런 느낌을 갖게 한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성모상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신앙의 풍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공소의 모습과 아주 잘 어울려 깊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묵상할 수 있게 해준다.
백곡 공소는 박해 시대를 거쳐 신앙을 자유를 얻은 뒤 여러 번의 이전을 거쳐 1961년 7월 21일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였다. 진천 본당 제2대 주임 아헌(W. Aheam, 安) 굴리엘모 신부가 기존의 공소 건물로는 도저히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어 고심하던 중 ‘경주 이씨 문중’에서 현재의 공소 부지를 기증하여 우선 임시 건물로 공소 강당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그 후 산업화와 이농현상으로 신자수가 급감하면서 새로 증축하지 못하고 여러 번의 보수공사만 거쳐 지금까지 오고 있다. 1997년 공소 경당 옆에 교육관을 신축하였고, 2004년 경당 지붕 교체 및 바닥공사를 새로 했다.
공소 정문 옆에는 두 기의 묘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남원 윤씨와 밀양 박씨 성을 가진 바르바라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데 이들은 시누이와 올케간이다. 남원 윤씨 집안은 본래 홍주에서 살다가 21세 손인 윤행윤 때에 박해를 피해 배티 골짜기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병인박해를 당해 윤행윤의 손자며느리인 밀양 박씨 바르바라(1827년생, 23세 손 윤태명 요셉의 부인)와 손녀 윤씨 바르바라가 함께 체포되어 신앙을 굳게 증거한 뒤 매를 맞아 순교했고, 그 시신은 가족들에게 거두어져 배티 성재골에 안장되었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들의 순교일은 1866년 10월 20일이다.
이들의 유해는 본래 배티 뒷산 성재골의 무명 순교자 묘역(현 6인 무명 순교자 묘역) 안에 위아래로 나뉘어 안치되어 있었는데,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을 1970년대 초에 후손들이 다시 찾았다. 1977년 평택에 사는 순교자의 후손들이 묘를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 배티를 찾았다. 이를 알게 된 배티와 백곡 공소의 신자들은 후손들을 만나 교회에서 대대로 잘 돌보며 기도드릴 수 있도록 설득하여 두 순교자들의 유해를 백곡 공소 경내로 이장한 뒤 깨끗하게 단장하였다.
백곡 공소를 찾는 순례자들은 순교자들의 자취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배티 성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배티 성지는 최양업 신부가 장마철이면 머물며 집필과 사목활동을 했던 성당 겸 사제관, 안성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모셔진 14인의 무명 순교자 묘역 그리고 1997년 봉헌한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과 2012년에 봉헌한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과 2014년에 축복식을 가진 최양업 신부 박물관,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 14처 등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순교자들의 숨결에 젖어들 수 있는 사적들이 풍성하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