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묵 39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오늘의 묵상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짧게 보도하지만, 루카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라는 말이 덧붙여지는 것은, 루카 복음의 지속적인 서술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루카 복음 1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루카 복음의 의도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돌아와 서로 친교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루카 복음의 공간적 흐름이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다만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길에 십자가는 빠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 교차하고 ..

대침묵 2020.09.25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랍니다

오늘의 묵상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랍니다. 그런데 그들의 관심은 엉뚱한 곳으로 향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예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가르침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둘러싼 것들에 관심을 가집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시자 평범한 동네 청년이신 예수님께서 ‘어디서’ 놀랄 만한 지혜와 힘을 얻었는지 그것만 궁금해할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참인간이시자 참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한 면만 생각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때로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이 우리를 방해합니다. 이것들은 편하고 좋을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 데 방해가..

대침묵 2020.07.31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알려 주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질그릇은 글자 그대로 화려하지 않고 투박하며 값지지 않은 평범한 그릇입니다. 그리고 질그릇은 쉽게 깨지고 부서질 수 있는 성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현실을,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잘 보여 줍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으로서 나약한 존재이지만 무엇보다 값진 보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께서 보여 주신 구원의 업적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힘이 없지만 우리 안에 담긴 보물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을 통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을 향하여 갑니다. 복음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나약함을, 인간적인..

대침묵 2020.07.25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주로 비유를 통하여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알려 주십니다. 비유는 전혀 모르는 것을, 때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하기에 좋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의 신비와 우리 인간에 대하여 모두 알고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둘을 모두 알지 못하면 비유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음의 완고함에 대한 표현입니다(이사 6,9-10 참조). 성경에서 완고한 마음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을 애써 부인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만 새기지 못하고, 하느님의 업적을 보지만 외면합..

대침묵 2020.07.23

‘밀과 가라지.’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내용입니

오늘의 묵상 ‘밀과 가라지.’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내용입니다. 마태오 복음만이 전하는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예수님의 설명으로 명확해집니다.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좋은 씨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반면에 원수는 가라지를 뿌리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입니다. 종들이 묻습니다. “가라지들을 거두어 낼까요?” 그러나 주인은 수확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수확은 종말을 나타내는 비유인데, 특히 종말에 있을 심판을 나타냅니다. 주인은 그때까지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도록 둡니다. 오늘 복음은 밀이나 가라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비유는 주인의 자비, 곧 하느님의 자비를..

대침묵 2020.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