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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4년간 성추행...집무실 침실로 불러 안아달라 했다"황지윤 기자 남지현

Marine Kim 2020. 7. 13. 15:13

입력 2020.07.13 14:04 | 수정 2020.07.13 15:10

"무릎에 든 멍 보호해주겠다며 입술 접촉"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비서로 일했던 여성을 껴안고 무릎에 입을 맞추는 등의 성폭력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전 비서 A씨 측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년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2시 A씨 측은 ‘한국 여성의 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A씨 측 주장에 따르면 박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지속적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비서 성폭력은 4년동안 지속됐다”며 “피해자는 부서 변경 요청했으나 시장이 승인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A씨 측은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A씨의 변호를 맡은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집무실 안에 있는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서 안아달라며 신체접촉을 했다”며 “또 무릎에 든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면서 무릎에 자신의 입술을 접촉하는 행위도 있었다”고 밝혔다.

채팅방을 통한 성폭력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해서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음란한 문자를 전송했다”며 “속옷만 입은 사진을 전송하는 등 피해자를 성적으로 괴롭혀 왔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이날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독한 ‘피해자의 글’에 따르면 피해자는 “처음 그때 저는 신고했어야 마땅했다”며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고 했다. 이어“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놨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라며 “너무나 실망스럽고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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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3/2020071302162.html
암브로시오 성가는 고대 음악을 총결산하는 시기의 음악이라는 점과 동방의 히브리 음악이나 그리스 음악이 서방(로마)으로 도입되어 독특한 교회음악으로 집대성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성 암브로시오(St. Ambrosius, 339-397)는 이태리 서북부 지방의 밀라노(Milano)의 주교이며 서방 교회 4대 교부 중의 한 사람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 많은 성가를 작사, 작곡하고 음악 이론을 정립하였다. 유명한 곡으로는 떼데움(Te Deum: 주여 당신을 찬양합니다)이 있다.
 
(1) 암브로시오 성가의 특징
(2) 암브로시오 성가 시대의 전례와 성가
(3) 암브로시오 성가의 영향
 
(1) 암브로시오 성가의 특징

이 시대의 음악은 반주 없이 독창이나 제창으로 불려졌다. 암브로시오의 성가는 대중성을 띠고 있어서 민요처럼 애송되었다. 암브로시오 성가는 밀라노 부근인 이태리 북부뿐만 아니라 유럽, 북아프리카 및 소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레고리오 성가가 나온 이후에도 한동안 독자적인 전례와 음악을 유지하였다.
암브로시오 성가는 베네딕토 수도원이 창설되면서 성무일도에 따른 성가로 부르게 되어 더욱 발전되었다. 그러나 1058년 스테파노 교황(Stephanus Ⅸ, 제154대 교황)의 조치[그레고리오 성가로 통일하기 위하여 암브로시오 성가의 사용 제한] 이후 쇠퇴하였다.
암브로시오 성가 시대에 주목할 만한 변화는 라틴어의 등장이다. 라틴어가 교회에 쓰이게 되므로 전례문의 표준화, 특히 성가 가사의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암브로시오의 음계는 4음 음계로 반음이 하나 있는 완전 4도인데 4음 음계를 두 번 반복하면 오늘날의 7음 음계와 같아진다. 암브로시오 음악 이론에는 4개의 정격적인 선법이 있는데 기보법이 없던 시대였으므로 자세한 기록이 없다.

 

(2) 암브로시오 성가 시대의 전례와 성가

성 암브로시오 시대에는 이미 가톨릭 교회의 전례가 어느 정도 체계화되어 있었고 거기에다가 동방 교회나 다른 지방의 음악이 유입되어 토착화되기 시작하였다. 성 암브로시오는 자신의 주교좌 성당인 밀라노 대성당에서부터 전례에 성가를 도입하였다. 암브로시오 전례는 밀라노 지방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가톨릭 전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암브로시오 성가 시대에는 성가 학교(Schola Cantorum)가 창설되고 라오디게아(Laodicea) 회의가 개최되었다. (4세기 말) 라오디게아 회의에서는 교회의 임명을 받은 자가 아니면 교회에서 성가를 부를 수 없도록 제도화했는데 이방인(또는 이교도)의 문화가 유입되어 혼란이 일어날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3) 암브로시오 성가의 영향

성 암브로시오는 동방 교회로부터 전례와 음악을 도입하였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자비를 구하는 기도인 “기리에(Kyrie eleison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그리스어이다. 또한 암브로시오 성가는 가톨릭 교회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체계화되고 정리되어 다음 세대(200년 후)의 그레고리오 성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 암브로시오의 전례와 성가는 오늘날에도 밀라노 지방에 남아 있어서 가톨릭 고대 음악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