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7.15 15:58 | 수정 2020.07.15 20:10
가해자인 상사, 피해자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선택
美 전역에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 거세
주요 도시에 바네사 기옌 추모 공간 마련
미 여군 바네사 기옌의 모습. 텍사스주 포트후드 군 기지에서 근무했던 기옌은 상급자로부터 성추행 당했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호소한 뒤 4월 22일 실종됐다. 실종 2개월 만에 시신 일부가 발견됐다. 성추행 및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애런 로빈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미 육군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미국에서도 상급자에게 성추행 당한 여성이 살해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추행과 살해 의혹을 받는 남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 전역에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현지 시각)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여군 바네사 기옌(20)은 지난 4월 22일 미 텍사스주 킬린의 포트후드 군 기지에서 실종됐다. 기옌은 실종 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런 로빈슨을 포함한 상관 2명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2개월 간의 대대적 수색 작업을 벌인 끝에 기옌의 토막난 시신 일부가 강 근처에서 발견됐다. 기옌을 성추행하고, 살인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로빈슨은 수사가 계속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로빈슨의 여자친구는 시신 유기를 도운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됐다.
기옌 측 변호사는 “기옌이 로빈슨에게 ‘(이 일을) 보고하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로빈슨이 기옌을 해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기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느꼈다면, 그는 여전히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미 전역에선 기옌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12일 기옌이 군 생활을 했던 텍사스주에선 시위대 수백명이 거리로 나왔다. 시위대는 기옌의 사진과 악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우리가 기옌이다’ ‘기옌을 위한 정의’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12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에서 바네사 기옌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려 한 시민이 '바네사 기옌을 위한 정의'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AFP 연합뉴스
텍사스주 포트워스엔 군복을 입은 기엔의 모습을 그린 대규모 벽화가 등장했다. 시민들은 꽃과 과일, 풍선 등을 놓아 그를 추모했다.
1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 바네사 기옌을 추모하기 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AP 연합뉴스
추모 열기는 미 전역에서 뜨겁다. 이날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며 기옌의 얼굴과 성조기가 그려진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워싱턴 등 미 주요 도시엔 기옌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12일(현지 시각) 미 텍사수주 오스틴에 바네사 기옌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거리에 마련돼 있다. 미 주요 도시 곳곳에는 이런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다/AFP 연합뉴스
소셜 미디어에는 ‘#내가 바네사 기옌이다’ ‘#ME TOO’ 같은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미국 내 참전용사 등 4000명이 국방부와 의회에 기옌의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트리스테자 오덱스 퇴역해병대 병장은 “우리는 바네사 기옌이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90여명의 의원들은 기옌과 관련한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을 했다.
군 내에서 상관에 의한 성추행 피해를 본 여군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기옌의 가족들도 군인들의 성범죄를 신고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을 만들라고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최근 의회에서 “군이 성희롱·성폭행을 예방하거나 피해자와 생존자를 돕기 위해 충분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성폭력에는 무관용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옌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추행이 줄어들거나 피해자가 신고로 인한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5/20200715030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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