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빼앗긴 고종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나았던 두 가지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
입력 2021.01.23 03:00
일러스트=안병현
권위적인 면이 왕과 비슷해서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조선시대 왕에 곧잘 비유된다. 예컨대 취임 1주년이 됐을 때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이라는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세종대왕을 살펴보면 닮은 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주 세종대왕릉에 그분을 만나러 갑니다.” 정권의 민낯이 드러난 지금은 친문 사이트조차 이런 얼토당토않은 비유는 하지 않는다. 세종 해프닝은 그가 조선 왕 중 가장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일 뿐, 문 대통령과 비슷해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문 대통령을 정조에 비유한다. 작년 말, 고민정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과거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은 개혁 군주 정조의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 검찰 개혁을 입에 달고 사는 문 대통령이 정조, 국민의 힘이 노론이라는 뜻. 하지만 정조에 관한 자료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가 지금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의금부 수장을 임기 내내 괴롭혔다는 내용은 없다. 게다가 정조가 기득권층과 싸우면서 개혁을 한 것은 백성을 위한 일인 반면,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은 그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 아닌가? 아무리 정조가 돌아가신 분이라 해도, 자신이 문 대통령 같은 분과 비교되는 것을 안다면 저세상에서 화병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양심 있는 이라면 문 대통령을 세종이나 정조가 아닌, 다른 왕에 비유한다. 먼저 거론되는 이는 인조. 그는 당파 싸움의 한 패거리인 서인들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킴으로써 왕이 된다. 전임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나라의 안전을 지키려 한 반면, 인조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버리지 못하고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펴는 바람에 결국 청나라의 침공을 불러온다.
문 대통령은 어떨까. 현 정권이 주체사상을 신봉하던 ‘주사파’를 등용하는 것은 인조가 서인만 감싸고 도는 것과 비슷하고, 오랜 동맹국이었던 미국 대신 중국과 북한을 숭배하는 정책도 인조의 친명배금을 연상시킨다. 운이 좋아 전란이 나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 국민이 바다에서 북한군 총을 맞아 죽고, 북한 노동당 부부장인 김여정에게 ‘특등 머저리’라는 말을 듣는 수모를 당해도 그저 헤헤 웃고 계시니, 열불이 난다.
어떤 이들은 문 대통령을 연산군에 비유한다. 연산군은 향락의 대명사로, ‘흥청망청’이란 사자성어는 그가 대궐로 뽑혀온 기생을 ‘흥청’이라 부른 데서 기인한다. 문 대통령 자신은 향락과는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나랏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는 점은 연산군과 비슷하다. 공무원을 엄청나게 늘렸고,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은 적자로 돌아섰다. 경제를 망쳐 세수가 줄어드는데 포퓰리즘 정책만 남발하니 나랏빚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 지금 우리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43%에 달하는데, 여기에 연금 충당 부채를 포함하면 OECD 평균보다 높은 93%다. 이 밖에도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신하를 모조리 숙청했는데, 정치 보복 면에서는 문 대통령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조와 연산군 모두 문 대통령과 닮은 점이 있지만, <매국노 고종>이란 책을 읽다 보니 문 대통령과 가장 비슷한 왕은 다름 아닌 고종이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종은 조선 왕 중 가장 무능한 왕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원흉이 됐다. 문 대통령 역시 무능이란 면에서는 결코 고종에게 뒤지지 않는데, 임기가 5년이라 다행이지 고종처럼 40년 넘게 대통령직에 머무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둘째, 정적이 한 것은 무조건 폐기한다. 논란 많은 쇄국정책을 펴긴 했지만,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통치 10년 동안 부국강병으로 갈 수 있는 일을 제법 했다. 인재를 고루 등용했고 악의 온상이던 서원을 철폐했으며, 군사를 양성하는 데 힘쓴다. 하지만 고종은 친정(親政)을 선언한 이후 대원군에 대한 적개심으로 그의 모든 정책을 폐기해 버림으로써 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을 길을 막아버린다. 문 대통령 역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적폐로 몰며 그들의 모든 것을 부정했는데, 그들이 소환될 때는 오로지 일이 잘못돼 ‘탓’을 하기 위함이다.
셋째, 고종은 책임지기를 싫어했다. “자기 의견이 있더라도 이를 처음부터 제시하지 않고 반드시 신하들 입에서 나온 의견을 좇는 형식으로 주장을 관철했다.”(위의 책 84쪽) 문 대통령은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입을 닫고 장기간 묵언 수행에 들어가고, 그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미루는 게 특기다. 백신을 못 구했다고 국민이 질책하자 “백신 구매 책임자는 정은경 청장”이라고 한다든지, 검찰총장 징계안에 서명하면서 자기 의사는 전혀 관철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게 대표적인 예니, 고종과 정말 비슷하다. 설상가상 고종이 유체 이탈 화법도 곧잘 구사했다지 않는가.
이렇게 닮은 점이 많은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고종이 문 대통령보다 나은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사과문이 훨씬 진솔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임오군란 직후 고종이 발표한 사과문에는 “화폐를 고치고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인 것도 나의 죄다”처럼 모든 항목 끝에 ‘나의 죄다’가 반복돼 있다. 문 대통령의 사과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구절이 있기는 할까? 물론 고종의 사과문은 남이 써준 것이긴 하지만, 그건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고종의 사과문을 들은 사람이라면 약간 위안 정도는 받았다는 점에서, 사과문에서는 고종의 압승이다.
다른 하나는 고종에게는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신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의정이던 이유원은 고종에게 여러 번 반대했고, 궁내 원로인 김병시 같은 이는 고종 앞에서 이런 직언을 한다. “어찌 이런 나라가 있습니까?”(위의 책 199쪽) 문 대통령 곁에는 대체 누가 있는가? 대통령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면서 아부만 해대는 간신배가 한 트럭이다. 물론 고종이 충신들의 직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나라가 망했지만, 신하들의 질적인 면에서도 고종의 압승이다. 충성스러운 국민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께 한 말씀 올린다. “정조와 세종을 바라보지 마시고, 일단 고종부터 넘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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