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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따라 월급이 결정된다고? 의사들의 씁씁한 속사정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Marine Kim 2016. 12. 17. 14:21

Why] 가꾸는 의사가 실력도 좋다?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 입력 : 2016.12.17 03:02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안과 의사는 안경 안 쓰고, 성형외과의는 피부 관리…
실력보다 겉모양 따지는 세태 보는 것 같아 씁쓸

일러스트
두 살짜리 사내아이가 설사를 한다며 병원에 왔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내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진찰을 하려는 순간 아이의 울음보가 터졌다. 청진기를 가까이하면 울고 멀어지면 안 울고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도저히 진정이 안 돼서 대기실로 보냈다. 10분쯤 지나 다시 들어온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그때부터는 백약이 무효였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우는 아이를 상대로 진찰할 수밖에 없다. 간신히 진찰을 마친 후 진료실을 나서는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애가 흰머리를 처음 봐서 그런 걸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흰머리를 처음 본 아이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머리가 좀 일찍 희어지는 편이다. 아버지도 40대 중반에 이미 염색을 하셨었다. 내 머리도 40대 들면서 희어지더니 이제는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다. 몇몇 환자들은 내 머리를 보고 염색을 하면 훨씬 더 젊어 보일 것이라고 한다. 이발을 하러 들른 미용실에서는 자연스러운 게 좋다며 염색을 말린다. 가족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다들 웃으며 머리는 자연스러우니 놔두고 살이나 빼라고 한다.

의사의 외양은 환자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집사람에게 들으니 큰딸 친구 아버지가 소아과 의사인데 넥타이를 살 때 주로 원색 계열만 고른다고 했다. 젊은 엄마들을 계속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니 조금이라도 화사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 수 가르쳐줬다고 했다. 내가 의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병원에 취직하는 선배들 외모에 따라 월급 차이가 있거나 취직 여부가 결정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같은 경력이라면 풍채가 넉넉하거나 이마가 훤한 인상이어야 좀 더 취직도 잘됐고 월급도 높았다고 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주어야 하는 신뢰감이나 안정감을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의학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현재에는 과거와는 좀 다른 면으로 의사의 신뢰도가 평가된다. '자기 자신도 가꾸지 못하는 의사가 어찌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시력 교정 수술을 하는 안과 의사들은 절대로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의사가 안경 쓰고 시력 교정 수술을 한다면 환자는 '의사도 하지 않는 수술을 내가 왜 받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피부 미용이나 성형을 업으로 삼은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려고 연예인처럼 성형수술을 받고 피부를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동료 의사의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실력만큼이나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염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게 좋기도 하지만 염색을 한 번 하면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 지저분해져서 게으른 사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희어서 실제보다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진료실에서는 가끔 유리할 때도 있다. 약을 제대로 먹지 않거나 제때 병원에 오지 않는 환자에게 호통(?)을 쳐야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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