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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잡기 오죽 힘들면 '거짓 목적지' 댈까요

Marine Kim 2016. 12. 29. 13:21

택시 잡기 오죽 힘들면 '거짓 목적지' 댈까요

[승객들, 연말 승차거부 기사와 전쟁]

가까운 거리 퇴짜맞기 일쑤에 기사 선호지역 예약했다 바꾸고
일산 등 먼 거리 가는 동료와 합승했다 "경유해달라" 요청도
기사들 "우리도 먹고 살려니…"

대학원생 정유미(여·28)씨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24일 밤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택시를 잡지 못해 애를 먹었다. 빈 택시가 여러 번 섰지만, 모두 행선지를 물어보고는 "미안하다"며 태우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정씨는 "용산구 청파동 집까지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택시 기사들이 '방금 예약이 잡혔다' '교대 시간인데 방향이 다르다'는 핑계를 대고 승차를 거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정씨 옆 다른 시민 수십명도 택시 잡기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28일 오전 0시 30분쯤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사람들이 차로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고 있다. 일부 택시 기사가 연말 대목을 맞아 ‘손님 골라 태우기’를 하는 행태는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8일 오전 0시 30분쯤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사람들이 차로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고 있다. 일부 택시 기사가 연말 대목을 맞아 ‘손님 골라 태우기’를 하는 행태는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명원 기자
참다 못한 정씨는 스마트폰 택시 앱(응용 프로그램)을 켜서 목적지란에 멀리 떨어진 잠실역을 적었다. 택시비가 많이 나올 법한 '가짜 목적지'를 적으면 택시가 쉽게 잡히기 때문이다. 5분도 안 돼 택시 잡기에 성공한 정씨는 기사에게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 그러니 청파동으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가 "잠실역 간다고 해서 부리나케 왔는데 그러면 어떡하냐"고 항의하자 정씨는 "승차 거부로 신고하겠다. 그대로 가달라"고 요구했다. 정씨는 "연말엔 특히 단거리 승차 거부가 빈번하기 때문에 이런 꼼수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탈 수가 없다"고 했다.

연말 대목을 노리는 일부 택시 기사의 승차 거부가 올해도 계속되면서 시민들도 편법을 동원한 자구책으로 맞서고 있다. 교대역 부근에 사는 직장인 고동근(31)씨는 토요일이던 지난 17일 밤 강남역 인근에서 송년회를 마친 후 일행 2명과 택시 합승을 했다. 1시간 넘게 택시 잡기에 실패한 뒤 일행 중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의 목적지로 택시를 잡은 것이다. 고씨는 "강남역과 가까운 교대역으로 가자고 하면 '교대 시간'이라고 빼던 택시가 멀리 떨어진 신촌으로 가자고 하니 바로 왔다"고 했다. 고씨 일행은 택시에 탄 뒤에야 기사에게 각자 목적지를 말하며 "경유해달라"고 했다.

서울에서 승차 거부가 가장 많은 곳 그래프

승객들은 "택시 기사를 속이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부 권영순(55)씨는 "편법을 쓰면 택시 기사를 보기 조금 민망하지만, 추운 날씨에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리는 것보단 거짓말하는 게 낫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말 승차 거부하는 택시 쉽게 잡는 법'이란 글이 공유되고 있다.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는 "택시 기사도 서민인데 손님들이 너무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10년 넘게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김모(58)씨는 "합정역에서 경기 일산 간다던 손님이 (합정역과 가까운) 당산역으로 목적지를 바꾼 적이 있다"며 "야간 할증이 붙으면 3만원이 넘는데 5000원짜리 '똥콜'로 바뀌는 순간 허탈했다"고 말했다. 목적지를 갑자기 바꾸는 승객들과 택시 기사들 간 심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택시 기사 이양무(64)씨는 "요즘 열 번 손님을 태우면 2~3명은 그런 손님"이라며 "택시 예약도 엄연한 약속인데, 택시 기사 정도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목적지를 서울 외곽으로 찍어 스마트폰 앱 택시를 부른 뒤 실제로는 가까운 곳에 간다는 이유로 택시 기사가 운행 을 거부하면 승차 거부에 해당된다"는 국토교통부 유권해석을 받았다. 승객이 전화 등으로 미리 목적지를 알리고 호출했더라도 사정에 따라 바뀔 여지가 있으므로 택시 기사는 그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택시정책팀은 "택시 기사가 요금을 더 받기 위해 합승을 강요하면 불법이지만, 승객이 자발적으로 합승해 목적지를 경유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고 밝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9/2016122900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