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edral Photo

공세리 성당

Marine Kim 2015. 5. 9. 19:29

성모상과 성당 외부.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 · 서산 · 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 · 문의 · 옥천 · 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貢稅) 창고가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되었다가 고종 때 폐지되면서, 80칸짜리 건물이 헐리고 1897년 그 자리에 공세리 본당 구(舊) 성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

공세리 본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드비즈 신부는 2대 기낭(Guinand, 陳普安) 신부가 1년 만에 전임하면서 초대에 이어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를 닦았다. 그 크고 화려함으로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로 멀리서부터 많은 구경꾼을 불러왔던 현재의 성당 건물은 드비즈 신부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 감독하면서 지은 1922년도의 성당이다.

길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마치 순교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안내자처럼 길게 뻗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피땀이 범벅이 된 순교자의 발걸음을 묵상하면서 올라가면 한편으로는 성당이 자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유박해(180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으로 순교한 32위를 모신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순교자들의 잠자리를 말없이 지켜보는 성모상이 건립되어 있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 시대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곳입니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됐다가 고종 때 폐지됨으로써, 80칸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 성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공세리 본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과 3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습니다. 드비즈 신부는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을 사목하면서 크고 화려함으로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이 된 현재의 성당 건물도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여 1922년도에 완공하였습니다.

성당 한 편에는 신유박해(180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 순교자 32위를 모신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진 곳에는 원래 1867년 정묘년에 순교한 박의서(사바스), 박원서(마르코) 그리고 박익서(본명 미상) 3형제가 나란히 잠들었던 묘소가 있던 곳입니다.

공세리 성당은 1995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1998년 성당과 옛 사제관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0년 성당과 옛 사제관의 원형 복원공사와 사제관, 수녀원, 예수마음 피정의 집, 성체조배실, 주변 정비 사업을 시작해 2002년 10월 13일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2007년 8월에는 3형제 순교자 묘가 있던 곳에 순교자 현양탑을 세워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 28위 순교자의 유해와 묘석을 봉안하고 그 위에 도자기 테라코타 부조작품 ‘28위 순교자’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후 추가로 발굴된 4위 순교자의 유해 또한 이곳에 모셨습니다. 2008년 9월에는 옛 사제관을 개보수하여 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Cathedral Pho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동성당  (0) 2015.12.30
공주 중동 성당   (0) 2015.05.09
혜화동 성당   (0) 2015.05.08
포도청  (0) 2015.05.08
광희문   (0) 201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