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06 05:07
민자에서 돌연 도공 사업으로
나랏돈 고속도로 누굴 위한 것인가
서울 강남구 세곡동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를 연결하는 ‘용인서울고속도로’는 삼성고속도로란 별명이 있다. 2009년 개통한 총연장 22.9㎞의 고속도로다. 끝자락인 흥덕나들목(IC) 인근에는 국내 최대 수출기업인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삼성 수원사업장이 있다. 차가 밀리지 않는 평일에는 헌릉IC에서 흥덕IC까지 15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까지는 25분이면 갈 수 있다. 고속도로와 연결된 자동차전용도로 ‘동부대로’를 따라서 기흥사업장, 화성사업장까지도 곧장 이어진다. 이 고속도로가 개설된 까닭은 경부고속도로 양재~수원 간의 만성포화로 인한 물류비용 증가를 줄이고 인근 택지지구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서다. 하지만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수혜자가 특정지역에 국한된 관계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건설됐다. 총공사비 1조4932억원 가운데 민간업체가 5732억원을 부담하고, 정부는 국고에서 3673억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민자(民資) 고속도로라서 통행료가 비쌀 것이란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경수고속도로’라는 민간업체에서 운영하는 용인서울고속도로는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경쟁구간 고속도로와 통행료가 동일하다. 지난 7월 31일 용인서울고속도로 시작점인 헌릉IC에서 흥덕IC까지 직접 달려본 통행료는 1800원. 서울로 돌아올 때 이용한 경부고속도로 수원신갈IC에서 양재IC까지의 통행료 1800원과 같았다. 도로공사 고속도로에 부가세 1%가 면세되는 점을 고려하면 민자 고속도로가 오히려 더 저렴했다. 그렇다고 고속도로 주행여건이 경부고속도로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산악지형을 극복하고자 터널과 교량으로 직선화해 고속주행 여건은 경부고속도로에 비해 오히려 더 쾌적했다. 건설비용을 줄이기 위해 휴게소와 같은 고속도로의 핵심기능과 관계없는 시설이 없을 뿐이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27일, 서울세종고속도로의 사업방식을 당초 계획한 민자사업에서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가 주도하는 재정사업으로 바꾸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세종고속도로는 서울과 세종시를 70분대로 연결하는 총연장 131㎞의 고속도로다. 이로써 부채만 27조원에 달하는 한국도로공사의 추가 재무부담은 물론 국민세금 투입이 불가피해졌다. 국토부 측은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인 ‘도로 공공성 강화’를 사업방식 전환의 명분으로 내걸었다. 국토부 측은 “도공 사업으로 전환될 경우 통행료가 9250원(도공의 1.2배)에서 7710원 선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한 경감금액은 59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통행료 인하의 주 수혜대상이‘공무수행’ 간판을 달고 다니는 세종시 중앙부처 관용차들이란 점에서 “세금으로 공무원 전용 고속도로를 깐다”는 비난도 함께 나온다. 한국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국민 세금이란 것은 조금 과도한 표현”이라며 “정부에서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조달이라든지 종합관리감독하는 만큼 재정사업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국토부가 민자사업을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내세운 또 다른 이유는 서울세종고속도로가 경제중심 서울과 행정중심 세종을 잇는 국토의 남북축(軸)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남북 5축’으로 불리는 서해안(1축), 경부(2축), 중부(3축), 중부내륙(4축), 중앙(5축) 등 도로공사 고속도로들이 5개 선(線)이나 있는 마당에 추가로 나랏돈을 들여 고속도로를 신설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서울세종고속도로와 같은 남북축 고속도로지만, 민자로 운영 중인 ‘용인서울고속도로’와의 형평성 논란도 나온다. 수원광명고속도로(17번), 평택화성고속도로(17번), 구리포천고속도로(29번) 등 최근 신설된 남북축 고속도로는 모두 민자로 지어졌다. 서울·경기도 인구 2000만명의 수요가 뒷받침되는 만큼 굳이 나랏돈을 들여 지을 이유가 없어서다.
반면 인구 26만명 세종시는 행정중심도시라는 이유로 나랏돈 투입이 집중되고 있다. 국토부는 앞서 지난해 11월, 세종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를 연결하는 총연장 46.5㎞의 국도 43호선을 신설 개통했다. 왕복 4~6차선의 자동차 전용도로로 평택에서 평택화성고속도로, 봉담동탄고속도로, 수원광명고속도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울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남북축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세종까지의 통행시간은 평일 출퇴근 기준 135분에서 110분으로 25분, 주말 기준으로는 142분에서 113분으로 29분이 줄었다. 하지만 국토부는 1조513억원의 나랏돈을 들여 만든 이 도로를 고속도로가 아닌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해 통행료가 없는 무료도로로 만들었다. 세종시에 한 번 갈까말까 한 비수도권 지방 주민들 입장에서는 “세금으로 공무원 전용도로 깐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토부 측은 “민자로 서울세종고속도로를 건설할 경우 경쟁관계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에서 나오는 연간 1000억원가량의 도로공사 통행수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도 내세우고 있다. 공기업인 도로공사 주도로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도로공사 주도로 해당구간을 신설하면 서울시와 세종시의 주요 연결도로 중 하나로 민자로 건설되어 운영 중인 ‘천안논산고속도로(25번)’의 통행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피차일반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한 뒤 정안세종로(국도 43호선)로 세종시로 접근하는 코스는 서울과 세종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 중 하나다.
결국 이는 공기업 수입은 줄면 안 되고, 민간은 줄어도 된다는 ‘관존민비(官尊民卑)’식 발상에 다름아니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천안논산고속도로는 민자 건설 시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 약정이 체결되어 있어 통행수입이 줄면 이를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줘야 하는 구조다. 한 교통업계 관계자는 “MRG는 민자 유치를 위해 정부가 먼저 고안한 제도”라며 “도로공사 주도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공기업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고속철도 운영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서울세종고속도로는 민간사업자가 먼저 제안한 도로건설사업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월부터 ‘제2경부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두산중공업, GS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등 민간 건설사들이 차례로 제안해왔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발 재정위기를 겪으며 금융비용이 상승하면서 계속 지연돼왔다. 결국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의 적격성 조사를 통과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일부 건설업체들은 노선개설에 필요한 정보 수집, 지형과 지질조사 등에 이미 수십억원의 비용을 쓴 상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 공무원과 주민 만나서 밥 먹고 정보 수집한 것을 제외하고 KDI 적격성 조사에 필요한 서류작성에만 30억원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적격성 조사 통과 두 달 만에 민간제안사업 철회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민간 건설업체들로서는 속으로 분을 삭힐 수밖에 없다. 관급공사 최대 발주처인 국토부와 도로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향후 도로공사 주도의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이 본격화될 때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서라도 그간 들어간 ‘매몰비용’에 대한 불만조차 대놓고 표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결국 민간 건설업체들은 대한건설협회(CAK) 명의로 지난 7월 31일, 5당의 정책위의장과 국토부를 상대로 ‘서울세종고속도로 재정사업 전환 철회 건의서’를 전달하는 데 그쳤다. 대한건설협회는 건의문에서 “민자사업은 사업계획 단계부터 착공까지 최소 5~10년이 소요되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므로 무엇보다 안정적인 사업추진 환경이 필수적”이라며 “2007년부터 시작해 적격성 조사까지 통과한 사업을 불과 2개월 만에 ‘공공성 강화’라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10년간 준비해온 기업들에 큰 손실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업계 피해금액은 대략 20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며 “국토부에서 ‘미안하니 소송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부가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을(乙)’인 민간의 사업 아이템을 훔쳐가는 ‘정부 갑질’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경기도 안성 이북 구간은 이미 설계를 마친 상태로, 기존에 민자로 추진한 안성 이남 구간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27조 부채 한국도로공사의 고민
국토부의 결정으로 사업을 떠맡게 된 경북 김천에 본사를 둔 한국도로공사 역시 말 못 할 고민에 빠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도로공사는 그간 고속도로 건설과 유지·보수로 2016년 기준 27조5000억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정치권과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수익성도 불확실하고 국도와 지방도로 충분히 교통수요를 처리할 수 있는 곳까지 선심 쓰듯 고속도로를 놓은 결과다. 정치권 인사들은 고속도로 개통을 치적으로 앞세워 선거철 표와 맞바꿔왔다. 이에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도로공사는 불요불급한 SOC(사회간접자본) 건설 예산을 삭감하는 방침에 따라 신규 고속도로 건설은커녕 기존 고속도로 일부를 매각해 부채를 갚으라는 압박에 시달려왔다. 도로공사는 2014년 고속도로 휴게소 4곳을 민간에 1206억원에 매각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덩치 줄이기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반면 사업전환 방침을 결정한 국토부는 “추가 재정부담이 없도록 공사비의 90%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부담하고 정부는 세종~안성 간 민자 제안 수준인 공사비 10%와 보상비만 부담할 것”이라고 못 박은 상태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사업비 부담을 도로공사 측에 대부분 떠넘기려는 일종의 꼼수다. 도로공사는 지난 7월 7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6회 도로의 날’ 기념식에서 김학송 사장(전 국회의원)이 사의를 밝힌 터라 국토부의 습격에 마땅히 대응할 창구조차 없다.
새로 임명될 신임 도로공사 사장 입장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했다가는 국정감사에서 곤욕을 치를 것이 뻔하다. 도로공사가 총사업비만 7조5500억원에 달하는 서울세종고속도로를 직접 건설할 경우 고속도로 건설에 들어가는 자금조달을 위해 추가적으로 수조원의 금융권 부채를 일으키는 것이 불가피하다. 한국도로공사의 옥병석 홍보팀장은 “회사채를 발행해 고속도로 건설 재원을 조달하게 될 것”이라며 “도로공사의 신용등급이 좋아서 낮은 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서울세종고속도로 통과 예정지 인근의 지주(地主)들이다. 벌써부터 서울세종고속도로 통과 예정 지자체로부터는 고속도로 나들목(IC)을 자기 지역으로 나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고속도로 통과 예정지인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은 지난해부터 동네 이장협의회와 주민자치위원회 등 관변단체 주도로 ‘원삼IC설치추진위원회’를 만든 뒤 IC 유치를 공언하고 있다. 이에 호응해 관내 국회의원들도 국토부와 도로공사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충북 청주시도 관변단체 회원들을 위주로 ‘청주 남이분기(동세종) 유치위원회’를 결성한 뒤 총력전을 예고하고 있다.
IC 유치전이 가열되자 국토부와 도로공사 측은 “아직 구체적 노선과 정확한 IC 위치가 확정된 바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는 상태다. 고속도로 나들목이 개통될 경우 보상비가 지급됨은 물론 인근 논밭의 땅값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국토부는 “사업방식을 전환해 전 구간 개통 시기를 1년6개월 앞당겨 오는 2024년 6월 조기완공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당초 도로 완공 시점은 2025년 12월이었다. ‘대선공약’이란 이유로 국책사업으로 지정해 속도전 식으로 밀어붙일 경우 보상비가 얼마가 더 풀릴지 알 수도 없다. 서울세종고속도로 총사업비 약 7조5500억원 중 토지보상비는 약 1조3200억원이 풀릴 예정이다.
특히 공무원들이 대거 특별분양받은 세종시 부동산 가격은 오를 일만 남았다. 세종시는 지난 5년간 땅값 상승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세종시는 올 상반기에도 지가가 전년 대비 3% 상승해 전국 시도별 땅값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시도별 토지거래량도 세종시가 전년 대비 56.3% 증가해 1위를 차지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지난 8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당정협의를 가진 뒤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구로 중복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세종고속도로의 시작점은 서울 강동구고, 도착점은 세종시다. 이들 지역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서울세종고속도로 신설이 호재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세종시’란 말은 특정하지 않고 ‘행복도시건설예정지역’이라고 표현했다. 국토부는 참고자료에서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구에서 모두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건설예정지역으로 한정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서울세종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세종시 대부분 지역은 칼날을 피해갔다. 누가 진짜 투기 주범인지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