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7.05 20:13
"영화에나 나올 법한 희대의 금융 사기극이다."
최근 터진 5000억원대 펀드 사기 사건인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를 두고 금융권에서 도는 말이다. 옵티머스 사태는 지난해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라임 사태'보다 범죄 내용 면에서 훨씬 충격적이고, 대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옵티머스는 국내 굴지의 대형 증권사를 비롯해 펀드자산 관리 및 평가 업무를 맡은 시중은행과 공공기관을 서류 위조 등의 방법으로 감쪽같이 속이며 3년 가깝게 들키지 않고 수천억원을 쌈짓돈처럼 써왔다. 금융 당국의 감시망도 요리조리 피해갔다. 주인공이 온갖 사기 행각을 벌이며 수사기관을 조롱하는 내용의 미국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떠올리게 한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부실기업 사채를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둔갑시켜
검찰은 옵티머스자산운용 김재현 대표와 2대 주주 이모(45)씨를 동시에 체포해 사기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김 대표 등은 지난 2017년 6월 이 펀드를 만들어 증권사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한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1년 미만의 상품이라며 투자금을 모았다. 돈 떼일 염려가 사실상 없는 상품이란 점이 부각되며 초반에는 기관들 위주로 투자하다가 나중에 인기가 높아지자 개인들도 돈을 넣었다. 초저금리 시대에 연 3% 안팎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데다 안전자산인 만큼 수요가 많았다. 증권사들이 앞다퉈 판매에 나서면서 지난 3년간 들어온 투자금이 2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조5000억원가량은 환매가 이뤄졌고, 환매되지 않은 잔고는 지난 5월 말 기준 5200억원쯤 된다.
평온하게 굴러가는 줄 알았던 옵티머스 펀드가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지난달 중순. 만기가 도래한 일부 펀드에 대해 옵티머스가 "상환을 연기해야 할 것 같다"고 증권사에 통보한 것이다. 증권사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웠다. 상환 연기는 공공기관이 돈을 지불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인데, 공공기관 특성상 실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경위를 묻기 위해 옵티머스 사무실을 찾았고, 상상할 수 없던 말을 듣는다. 실제 투자한 자산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니라 이름 모를 비상장 기업들의 사채라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대부업체도 끼어 있었다.
투자 대상인 공공기관 이름이 적힌 예탁결제원 명의의 '펀드 내역서'까지 확인했던 증권사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옵티머스 측은 '부실 자산'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온갖 서류를 날조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당시 옵티머스 사무실을 방문했던 증권사 관계자는 "믿기지 않아서 어안이 벙벙했다"며 "신규 투자금으로 끊임없이 '돌려막기'를 한 셈인데 코로나 사태 등으로 최근 투자가 위축되면서 꼬리가 잡힌 것"이라고 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금융 당국, 예탁결제원, 증권사들의 무책임
옵티머스 펀드는 5일 기준 1056억원에 대해 환매가 연기된 상태다. 아직 만기가 남은 4100억원가량도 상환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삼일회계법인은 옵티머스가 실제 투자한 자산에 대한 실사를 벌이고 있다. 옵티머스는 펀드 잔고 5200억원 중 2700억원에 대해서는 투자처를 밝혔지만, 나머지 2500억원에 대해서는 행방이 묘연해 실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는 사모펀드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어줬던 금융 당국, 펀드자산 확인 업무를 게을리한 관계 기관, 판매에 앞서 신중하지 못했던 증권사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먼저 금융 당국은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2015년부터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해줬다. 전문사모운용사의 자본금 요건(40억→10억원)과 사모펀드 투자 최저한도(전문투자자형 5억→1억원, 경영참여형 10억→3억원)를 낮춰줬고, 전문 운용 인력이 3명만 있어도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해줬다. 사모펀드는 5~6단계로 분류되는 펀드 위험 등급도 금융 당국의 검사 없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옵티머스는 '낮은 위험' 등급으로 펀드를 분류했고, 증권사들은 안정추구형 투자자들에게 펀드를 판매했다.
펀드 자산을 평가해 기준가를 산정하는 예탁결제원의 무책임한 업무도 도마에 올랐다. 본지 취재 결과, 예탁결제원은 옵티머스로부터 대부업체 채권 인수계약서를 받아놓고도 펀드 내역서에는 옵티머스가 요청하는 대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출채권이라고 기입해줬다. 인수계약서에는 LH가 전혀 나오지 않지만 예탁결제원은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옵티머스의 말만 믿었다. 펀드 기준가를 산정하는 데 있어서도 옵티머스가 제출한 '장부가'를 그대로 적었다.
지난해 5월부터 옵티머스 펀드 자산을 관리하던 하나은행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하나은행 이전에 5개월간 옵티머스 펀드의 수탁사였던 기업은행 관계자는 "옵티머스 측에 펀드 자산 관련 서류 등을 요청하자 옵티머스가 수탁사를 다른 은행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증권사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특정 운용사가 연간 수천억원씩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용역업체에 사업 진척률에 따라 현금을 즉각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매출채권을 발행하는 사례는 사실상 거의 없다.
◇정·관계 인맥까지 얽혀… 게이트 비화 조짐
이번 사태는 정·관계 인맥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옵티머스 사내이사인 윤모(43) 변호사와 윤씨의 아내 이모(36) 변호사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법률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사임했다. 옵티머스 자문단에 이헌재 전 부총리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포진해 있던 점도 화제다. 옵티머스 회장 직함을 달고, 회사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양호 전 나라뱅크 은행장은 이 전 부총리와 경기고 동창이면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양씨가 호화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벌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외에 2대 주주인 이씨가 과거 폭력조직원 출신이며 옵티머스로부터 2700억원가량을 투자받은 10여개 기업의 대표라는 점, 이씨가 대표인 업체들의 등기이사나 감사직을 옵티머스 김 대표의 아내가 맡고 있는 점 등도 논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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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5/20200705014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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