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에 의하여 그리스도 교가 사방으로 전파되어 나가는데 사도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 18-19> 여기서 찬송가는 찬가와 시편 이외의 구약을, 그리고 영가는 사도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지은 노래로 해석된다. 예수님의 12사도가 죽은 후 이른바 속 사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리스도교 음악은 이교도들의 영향도 받게 된다. 로마 제국 전성기의 초대 교회 시절에는 "저들은 정한 날 해뜨기 전 일찍이 모여서 하느님과 동등한 그리스도에게 교송가를 부르는 사람들"(플리니오 서간집 93번)는 기록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 들은 악기를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그리스의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성 글레멘스(St.Clement of Alexandria, 150-215)는 교회 안에서의 악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배척한 학자인데 그는 수금(하프)과 비파만을 허용하였다. 313년 로마의 55대 황제인 콘스탄티노 1세 (Constantinus, 재위 306-337) 의 밀라노 칙령에 의하여 로마 제국 전 영토내에서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인정되자 교회 건물에 화려한 바실리카(Basilica) 건축 양식이 도입되고 예식을 성대하게 치르게 됨으로써 음악을 비롯한 미술, 조각, 건축 등의 예술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찬미가는 가사가 긴 산문체이기 때문에 이른바 성영창법에 따라 같은 높이의 음을 길게 유지하며 가사를 읽듯 하는 노래를 하였다. 이 시기에 있었던 음악 자료는 거의 없다. 3세기경 이집트의 유적지인 옥시린코스(Oxyrihnchos)라는 곳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는 가톨릭 음악 중 현존하는 최고의 성가집이다. 1922년에 출판된 이 성가집은 그리스어 가사와 그리스 기보법 (문자 악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가사의 내용은 삼위일체를 찬송하는 찬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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