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강원감영지(江原監營址)는 원주시 제2청사로 사용되면서 그 모습을 잃기도 했지만

Marine Kim 2015. 8. 21. 19:25
강원감영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출입문루인 포정루와 중삼문과 연결되어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으로 들어서는 내삼문.원주시 일산동에 위치한 강원감영지(江原監營址)는 원주시 제2청사로 사용되면서 그 모습을 잃기도 했지만 정청(政廳)인 선화당(宣化堂)과 정문인 포정루(布政樓)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현재는 원주시 제2청사가 철거되고 강원 감영지에 대한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다.
 
이에 따라 원주 일대의 죄인들은 감원감영으로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국사범 등의 중죄인은 물론 잡범들에 대한 형도 집행됐는데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처형되었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원주 일대의 죄인들이 강원감영으로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는 국사범 등의 중죄인은 물론 잡범들에 대한 형도 집행됐는데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처형되었습니다.

강원감영지의 정문인 포정루와 정청인 선화당은 건립 당시 위치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조선시대 감영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래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 명칭은 강원감영(문루 및 선화당)이었으나 2004년 1월 17일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포정루와 선화당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박해의 현장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많은 순교자들이 강원감영의 옥에서 혹독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감옥 터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복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강원감영지에 있던 원주시 제2청사는 철거되고 지속적인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