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묵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Marine Kim 2020. 9. 25. 22:39

오늘의 묵상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짧게 보도하지만, 루카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라는 말이 덧붙여지는 것은, 루카 복음의 지속적인 서술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루카 복음 1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루카 복음의 의도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돌아와 서로 친교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루카 복음의 공간적 흐름이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다만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길에 십자가는 빠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다는 사실이 복음서 안에서 늘 논쟁의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른바 승리의 그리스도이셔야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음일 수밖에 없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길이 성직자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수많은 혜택과 위로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성직자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과 위로는 그들의 인간적 능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할지라도, 성직자들은 꽤나 풍성한 대접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받고 또 받는 데 익숙해지면, 주고 나누고 함께하는 데 인색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제 경험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어서 아무리 영성 훈련을 한들 제 삶이 풍요로우면 이웃의 배고픔을 어찌 알겠습니까. 제 삶에 부족함이 없으면 하루 끼니가 아쉬운 이들의 형편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십자가의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 자리에 배부른 이만 모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은 가진 이든 그렇지 못한 이든 모두가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는 잔치의 자리입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께서는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자리를 마련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십니다. 특정 계층만을 위한 그리스도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