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K. Marine story

군인과 고무신 1 -484 김준호

Marine Kim 2020. 9. 26. 22:16

군인과 고무신 1 -484 김준호

“순아 울산 큰애기 보고싶다
정조준 금지구역
귀국선
시몬아! 포성이 드리느냐
필승”

베트남전쟁을 대변하는 유명한 이 역사적인 사진 한 장은 월남전의 긴장과 두려움, 공포, 희망을 모두 보여주는 걸작이다.

M16을 들고 p25 무전기를
메고 얼굴이 전혀 안 나오고 철모에 적힌 구호만 돋보이는 이 주인공은

1967년 6월, 베트남에 파병된 해병 청룡부대 1대대 통신반장 이명수 해병 하사였다.

뚜렷한 전선이 애매한 베트남 전쟁터를 누비면서 매일 월맹 정규군과 베트콩과의 전투가 계속되고, 매복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삶과 죽음은 한순간이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오로지 살아서 귀국선을 타고 돌아가겠다는 생각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 해병의 뇌리에는 울산에서 기다리는 연인 순아씨가 있었기에 철모의 제일 중심에 “순아 보고싶다”를 절절하게 적어 둔 것이었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그 급박한 순간에서 어머니가 아닌 애인을 찾는 이 젊은 군인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군인에게 여자란 무엇일까?

남자가 군대를 간다는 통과의례는 우리나라 같은 징병제 국가에서는 여지가 시집을 간다는 것만큼 평생 잊혀지지 않는 도전이고 불안하고 무거운 일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해 그 수많은 신화, 전설, 소설, 시, 노래, 춤으로 만들어지는 남녀의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과제였다.

본질주의적 시각에서 또는 사회문화적 차이에서 생물학적 차이에서 남성은 양, 해, 빛, 밝음, 용감, 정열, 전쟁 등을 의미했다.

반면 여성은 달, 그림자, 어두움, 부드러움, 조용, 평화, 온화함 등을 상징했다.

이러한 젠더의 특성으로 남성은 힘과 용기, 결과와 생존 등을 중심으로 잘 발달되어 있는 존재이고,

반면 여성은 감성과 연민, 사랑, 관계, 과정 등을 중심으로 잘 발달된 존재이다.

이것이 조화를 이루어 인류는 만물의 영장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이십 년이 넘게 끌려만 다니던 남자가 처음으로 세상을 끄는 시기가 군대 생활인 것이다.

진해 해병훈련소 시절부터 공포스러운 11m 막타워 과업을 받을 때 조교가 꼭 묻는 말이 있었다.
"애인 있습니까?“

무조건 있다고 해야 했다. 만약 없다고 하면 꼬라박아 기합을 받다가 엄마 이름을 부르고 뛰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예 있습니다 "
"123번 훈련병 애인 이름 힘차게 부르며 낙하합니다, 낙하! "
훈병들은 천 리나 떨어진 곳에 남겨진 애인에게 들리도록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지르며 막타워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은영아ㅡㅡㅡㅡㅡ "

그랬다 우리는 20년을 키워준 어머니를 떠나 1년도 채 안 사귄 은영이를 구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적지로 몸을 날렸다.

1983년 해병 1사단의 23대대 소대 내무반의 구조는 이랬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과 2층의 침상에 24∼28명이 기거하는 좁은 편인데,

주로 고참들이 1층을 쓰고 쫄병들이 부지런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2층을 썼다.

내무반의 가운데는 난로가 놓인 자리와 물주전자 자리가 있었고, 고참들이 기거하는 1층을 향하여 텔레비전이 버티고 있었다.

벽에는 각종 구호와 낡은 거울 하나와 달력이 부착되어 있었고, 내무실 양문 안쪽으로는 실제 크기의 북힌군 모습의 그림과 인체의 급소가 그려져 있었다.

개인 관물대는 1인용 매트리스를 까는 자리 바로 위에 붙박이로 붙어 있었는데 60×90cm 크기로 그 아래로 침구와 개인 군장품들을 넣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관물대는 1개 대대 병력이 쓴 것 같이 낡았는데 그나마 명찰과 계급이 붙어있었다.

그 안에는 각종 의류와 치약 칫솔 같은 위생용품과 무좀약 같은 개인용품들을 넣어 두었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애인을 사회에 두고 자원 입대한 해병들의 희망과 낙은 애인의 사진과 편지였다.

그 관물대 문 안쪽에 무당이 신주 모시듯 애인의 사진을 붙여놓는데

주야장천 눈이 빠지게 그 사진만 바라보고 물고 빨았다가, 볼에 대보다가 하는 재미로 힘든 해병대 생활을 견뎌 내었다.

아무리 살벌한 해병대 내무생활이라도 쫄병의 애인 사진은 절대 손을 안 대는 것이 무언의 법칙이었다.

왜냐하면 쫄병의 여자 편지나 사진을 손을 대면 곧바로 총기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힘든 야간 경계근무를 설때면, 동쪽의 바다를 응시하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 다큐멘타리 인간극장를 5편은 족히 만들어내었다.

연인과 결혼하는 상상으로 두 시간, 집을 이 층을 지었다가 삼 층을 지었다가 하면서 두 시간,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애 이름도 짓고, 둘째 애 이름도 짓고 하다가 두 시간,

제대 후에 그 애인과 꾸미는 아름다운 미래설계로 그 지리한 야간 경계근무를 견뎌 내었다.

그만큼 애인의 사진은 행복 ,열정, 자존감으로 그 고단한 해병대 생활을 잠시 잊게 해 주었고,

그 만큼 애인의 존재는 이십 대 피 끓는 청춘들의 원천이었고, 고통을 이기게 해주는 진통제와도 같았다.

그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
짐받이 뒤에 그녀를 태우고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갈 수만 있다면
구름이 뭉실뭉실한 산마루 언덕까지라도
다 달려가고 싶지만
산죽밭 끼고 강물 돌아 흐르는 물가까지 가서
소풍처럼 그녀와 점심을 먹으리라
이것이 내 평화라고, 유토피아라고
강물에다 대고 물수제비를 띄우며
까르르, 소리 지를 수도 있으리 –김명국 시

통신병이 한 묶음의 군사우편을 향도병에게 인계를 하고 갔다.

남자는 어머니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지만 연인의 사랑은 믿지 못한다.

편지는 항상 봉투를 찢어낼 때의 긴장과 두려움이 있었다.

군사우편은 대개 늦어도 5일이면 도착을 하는데 서해 해상 접경지역의 고립된 섬에서 해병대 생활을 하는 흑룡 6여단 장병들에게는 10∼15일이 갈리기도 해서

어떨 때는 가을에 보낸 편지가 초겨을에 도착하기도 했다.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