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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직전까지 法治 조롱한 한명숙… 검찰도 책임있다

Marine Kim 2015. 8. 25. 21:36

기자수첩] 수감 직전까지 法治 조롱한 한명숙… 검찰도 책임있다

입력 : 2015.08.25 03:00

"저는 구치소 안에서 여러분은 밖에서… 진실이 이기는 역사 만들자"
속죄는커녕 끝까지 궤변… 형 집행 늦춘 檢이 빌미준 셈

 
박상기 사회부 기자
24일 오후 1시 40분 한명숙(71) 전 총리가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서울구치소 앞에 나타났다. 그는 오른손엔 성경, 왼손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을 들고 150여명 지지자 앞에 섰다. "저는 오늘 사법 정의가 이 땅에서 죽었기 때문에 상복(喪服)을 입었습니다. 저는 결백합니다."

5년 전 처음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한 전 총리는 성경을 손에 쥔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을 땐 백합을 들고 검찰을 비난했다. 지난 20일 대법원에서 불법 정치 자금 9억원 수수죄로 징역 2년이 확정됐지만, 이날 모습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 때 그 진실은 언제든 밝혀지는 것"이라며 "저는 (구치소) 안에서, 여러분은 밖에서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자"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박범계·이미경·임수경·정청래·진성준 등 동료 의원 10여명과 지지자들은 "한명숙은 무죄다"라고 외쳤다. 여럿이 울음을 터뜨렸고, 한 전 총리가 구치소 쪽으로 이동하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검은돈을 받은 전직 총리는 민주화 투사인 양 구치소로 걸어 들어갔다.

전직 총리가 실형을 사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그런 불명예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법원 판결 직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선 무죄"라고 했다. 22일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고, 노 전 대통령 묘역 방명록엔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믿습니다'라고 썼다. 한 전 총리가 받은 9억원 중 3억원은 대법관 13명 전원이 유죄로 볼 정도로 증거가 명백했다. 하지만 판결 이후 한 전 총리의 행보는,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24일 오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지자들이 준 백합을 들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4일 오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지자들이 준 백합을 들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그가 이렇게 사법부 판결조차 무시하고 '법치(法治)'를 농락할 수 있었던 데엔 검찰이 나흘간의 말미를 준 것이 한몫했다. 통상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 실형이 확정된 경우엔 당사자에게 하루의 시간을 준다. 검찰은 처음엔 한 전 총리에게도 20일 판결 직후 21일 출석을 통보했다. 하지만 병원 진료와 신변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검찰은 구치소 수감을 24일로 미뤄줬다. 전직 총리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준 특혜였다. 하지만 그는 특혜의 시간을 법원과 검찰을 조롱하는 데 썼다.

검찰 관계자는 이 특혜에 대해 "일반인에 비해 한 전 총리는 도주 가능성이 거의 없고, 병원 예약도 잡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전직 검사장은 "한 전 총리가 신변 정리와 거리가 먼 행동을 했을 때 즉시 강제 구인 조치를 검토했어야 옳다"며 "정치인의 판결 불복과 일탈 행위에 대해 검찰이 너무 무신경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와 일행이 이날 구치소 입구에서 벌인 행사 명칭은 '진실 배웅'이었다. 지난 나흘간 한 전 총리가 보인 행태를 보고 검찰 수사와 사법부가 밝힌 '진짜 진실'을 오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새로 생겼다면, 그 책임은 검찰에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