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의 엽기적 만행에 ‘평화’ 매달리는 대통령
[중앙선데이] 입력 2020.09.26 00:21 | 705호 30면 지면보기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되고 그 시신이 불태워졌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국군의 날 행사에서 북한의 만행을 언급하지 않았다. 기념사에서 ‘평화’는 6번이나 강조했지만, 북한의 야만적인 행동을 비판하고 경고하는 메시지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군 통수권자로서 당연히 이 문제를 단호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피살 10시간만에 보고, 그 뒤에도 33시간 침묵
국군의 날, 북 도발 경고 대신 평화만 6번 강조
누구를 위한 대통령이고, 어느 나라 군대인가
지난 22일 서해상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모(47) 씨가 북한군 총에 살해된 사건의 본질은 비무장한 민간인에 총을 난사해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북한은 부인하고 있지만 해상에서 기름을 부어 시신을 불태운 뒤 바다에 유기한 정황이 짙다. 불탄 시신은 서해상에서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가장을 잃은 유족의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은 참담하다 못해 분노를 느낀다.
문 대통령은 국민 피살사건이 발생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대통령 보고 전에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는 게 청와대와 군의 어설픈 해명이다. 문 대통령은 이씨가 피살됐는데도 23일 유엔에서 당초 녹화한대로 화상 기조연설을 했다. 핵심 메시지는 ‘북한과 종전선언’ ‘평화’였다. 엄중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종전선언이 국민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것인가. 같은 날 11시 청와대의 진급 군 장성의 보직 신고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장성들에게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이 아닌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그땐 문 대통령이 피살 사건을 보고받은 직후였다. 문 대통령은 사건에 대한 대면보고 이후 국방부의 공식입장 발표까지 33시간 동안 침묵했다. 특히 24일 위중한 상황에 김포시 공연장에서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코로나와 재해로 인한 어려움과 함께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한 사실이 청와대의 공개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부와 군의 대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처음부터 구출할 생각도 없었다. 이씨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에 북한군과 처음 조우한 상황을 군 당국이 청와대에 보고했는데도 구출 지시가 없었다. 군 첩보망으로 북한군의 사격지시를 확인했지만, 대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북한과의 공식 연락선이 지난 6월 이후 모두 차단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상선 통신망으로 북한군 선박에 경고할 수도 있었다. 북한 해역에 들어간 우리 선박이나 주민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가동됐다는 발표도 없었다. “설마 그럴 줄(북한군이 사살할 줄) 몰랐다”는 게 궁색한 변명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더욱 문제되는 행위는 이씨의 ‘자진 월북설’을 흘린 것이다. 그의 신발이 배에 남아 있다는 게 이유다. 이씨가 2000만원 빚을 졌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씨의 동료들은 자진 월북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또 월북한 뒤 자신을 증명할 공무원 신분증도 배에 두고 갔다. 무엇보다 두 아이가 있는 공무원의 자진 월북은 쉽지 않다. 조사도 없이 이번 사건을 이씨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유족의 가슴에 두번 못을 박는 일이다.
어제 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해명 역시 유감이다. 사람을 살상한 뒤 미안하다는 식이다. 만행을 무마하기 위한 사후 조치로밖에는 이해가 안 된다. 청와대는 상황이 어렵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최근 친서 교환을 공개했다. 우발적 사고로 덮으려는 것은 아닌가. “북 최고지도자가 한 전문에 두번이나 ‘미안’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말은 또 무언가. 이번 사건은 모든 게 석연치 않다. 문 대통령의 사흘간 행적도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국민에 소상히 밝히고, 국회 차원에서 전면 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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