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 값이 서럽다
‘사람이 먼저’라는 정권, ‘미안하다’는 김정은 한마디에 감격
대통령이 국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국민 스스로 자기 목숨 지킬 수밖에
입력 2020.09.26 03:20
강천석 논설고문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을 수호(守護)하고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헌법 66조(대통령의 지위‧책무(責務)‧행정권)와 69조(대통령 취임선서)는 이런 대통령의 의무를 명시(明示)한 조항이다. 대통령이 이 책무를 게을리하거나 다른 업무와 우선(優先) 순위를 뒤집으면 정상적 대통령이라 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실종되고 북한이 표류(漂流)하던 이 공무원을 발견‧심문‧사살하고 시신(屍身)을 불태운 지난 이틀 동안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존재했을까. 정확히 말하면 최고 권력자는 있었지만 국민을 보호해야 할 최고 책임자는 없었다. 이 이틀 동안 서해 바다 표류자의 시간과 ‘사람이 먼저’라는 대통령의 시간은 다른 방향 다른 속도로 흘렀다.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 36분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실종됐고 그가 북한군에게 발견됐다는 서면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이 표류자의 목숨을 구하는 것과 관련된 지시를 내린 흔적은 없다. 그로부터 3시간 후 북한군은 표류자를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했다. 새벽 1시 26분 대통령은 미리 녹화된 UN 영상(映像) 연설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며 종전(終戰) 선언을 제안했다.
23일 오전 11시 대통령은 군 장성 진급 신고식에 참석해 합참의장‧육군‧공군 참모총장 등 6명의 대장에게 ‘국방력의 목표는 전쟁에선 이기는 것이고 평화 시대에는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훈시(訓示)했다. 새 보직자들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군심(軍心)을 결집하겠다. ‘삼정검(三精劍‧지휘도)은 칼집 안에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잘 새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디에서도 몇 시간 전 벌어진 참극(慘劇)의 긴장감은 느낄수 없었다.
민주국가와 독재국가의 가장 큰 차이는 국민의 목숨 값 차이다. 민주국가 지도자는 국민 생명을 최고 가치로 받아들인다. 독재국가에서 국민 생명은 무게나 길이처럼 숫자(數字)로 표시될 따름이다. 민주국가 지도자가 국민 목숨을 구하기 위해 때로 굴욕을 무릅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독재자들은 이걸 민주체제의 약점(弱點)으로 여기고 협박과 흥정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김정일은 2009년 미국 여성기자 두 명을 체포하고 석방 조건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요구했다. 김정은도 미국 대학생 웜비어를 억류하고 미국 고위 인사의 방북을 석방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국은 국민의 목숨부터 살린다는 가치를 기준으로 북한의 억지를 일부 수용했다. 국제 테러리스트들도 북한‧중국‧러시아 등 독재국가 국민을 인질로 잡고 그 국가들과 흥정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독재자들이 자기 국민 목숨을 깃털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서러운 국민이다.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권 나라라지만 국민 목숨 값은 한참 아래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시대에 진행된 다섯 번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어느 대통령도 6‧25 때 북한으로 납치된 국민, 국군포로, 납북 어선 선원, 납치 민항기(民航機) 조종사와 승무원의 송환 문제를 꺼낸 적이 없다. 송환은 커녕 생사 여부를 물은 대통령도 없다. 구(舊) 서독의 초대 총리 아데나워(1876~1967)는 서독을 반공(反共)의 기둥에 단단히 묶고 소련과의 수교(修交)를 거부했다. 소련은 아데나워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국교(國交)를 열면 억류 중인 독일 전쟁 포로를 석방하겠다는 미끼를 던졌다. 발을 헛디디면 정치 생명이 끊길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그는 비난을 무릅쓰고 1955년 9월 모스크바행(行)을 결정하고, 1만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국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정치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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