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경수 지사의 어긋난 결백 주장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07 00:21 | 710호 30면 지면보기
김경수 경남 도지사가 어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재판부가 법정구속은 하지 않아 곧바로 수형 생활을 하는 것은 면했지만, 중형에 처해졌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재판부는 “존경받아야 할 정치인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 지사는 선고 직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는데, 법원의 지적을 겸허히 되새겨 보기 바란다.
항소심, 여론조작 공모 ‘의심없이 증명’ 판단
김 지사, “절대 해선 안 되는 일” 지적 새겨야
1심 모두 뒤집는 정치 판결 나오지 않아 다행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부분은 ‘드루킹’이라고 불린 김동원씨 일당과 함께 지난 대선 관련 여론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줄곧 공모한 적이 없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공모 관계를 인정했다. 법원은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고, 김 지사가 제시한 기사에 이들이 ‘댓글 작업’을 했다는 것을 공모의 증거로 봤다. 또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이 아지트로 삼았던 일명 ‘산채’에 방문해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작동시키는 시연회에 참석했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는 산채에는 갔지만 시연 장면은 보지 못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김씨 등의 진술과 디지털 기록 등을 김 지사의 시연회 참관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드루킹 일당이 피고인에게 킹크랩에 대해 브리핑했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백번 양보해 김 지사 주장대로 김씨 일당이 전문 프로그램까지 써 가며 인터넷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조작하는지는 몰랐다고 해도 그들이 다수의 인력을 동원해 대통령 선거 관련 인터넷 기사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 여론을 움직인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강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런 사실을 몰랐다면 김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선거 관련 기사의 인터넷 링크를 전달하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한 선거 운동으로 한창 바쁜 시기에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산채에까지 직접 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행동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작은 공동체 존립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 시민의 뜻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왜곡되면 나라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선거 국면에서의 여론조작은 더욱 용납할 수 없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그래서 법원은 이미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선거 관련 댓글 작업에 관여한 이들에게 중한 책임을 물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과 경찰의 여론 조작을 국기 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드루킹 일당이 벌인 일은 국정원이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기관이 아니라 개인의 모임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제 사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못 밖은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다.
사실 이번 재판은 많은 국민의 우려 속에서 진행됐다. 1심 판결 뒤 항소심 선고까지 이례적으로 1년 11개월이 걸렸다. 항소심 재판 도중 재판부 구성이 바뀌면서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을 제외한 두 명의 판사가 교체됐다. 이에 따라 1심 결과를 완전히 뒤집는 ‘정치적 판결’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제 법원은 김씨가 제시한 인물을 김 지사가 일본 센다이 총영사로 천거했던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거운동을 도운 사람에게 인사를 통해 대가를 치르려 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기에 판결에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여론 조작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사법부 신뢰 측면에서 매우 다행스럽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을 빨리 내려주기 바란다. 1, 2심 법원이 공히 실형을 선고한 피고인이 지사 자리를 지키며 임기를 거의 다 채우게 하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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