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5, 16]

Marine Kim 2021. 1. 9. 23:12

월남파병 이야기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5]

 

'한국에 큰 경제적 이익 주겠다'

 

파병요청 서울 온 험프리 부통령 약속

한국 전투부대 독자 작적권 문제 비상

 

66년부터 한국군의 파병은 무섭게 증가했다. 어찌 보면 미군의 대리전처럼 비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한국군 증파에 대해서는 존슨 미 대통령이 감사할 정도로 급속히 이루어졌고 숫자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71년에 발간된 존슨 대통령의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65년 여름 그 당시 15개 미 전투사단 75000명이 베트남에 주둔해 있었다. 맥나마라(미 국방장관)34개 사단 증원을 건의해 왔다. 만약 한국이 7개 사단 파병을 해 주지 않았다면 미국 병력 수준은 175000명 내지 20만 명으로 늘었을 것이다."

 

존슨 대통령의 회고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더라도 65년에 이미 미군 15개 전투사단이 주둔해 있는 가운데 곧이어 한국군 7개 사단이 파병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점까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우리 장병이 전장에 투입(86개월 동안 32만여 명 투입)됐다고 본다면 군사 측면을 떠나 한진 입장에서는 그만큼 장사할 수송 물량이 늘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군 7개 사단이 미군 34개 사단이 맡아야 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주었다는 부분도 언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군의 참전 지역이 그처럼 넓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월남의 전장 전체가 한진의 시장이었다고 유추해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물론 한국이 본격적인 전투부대 증파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6611일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험프리 미국 부통령이 서울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한국군 증파 문제는 비록 한진의 조중훈 회장 말처럼 '사업가는 사업성이 있느냐만 파악하면 되는 일이지 정부가 월남에 무슨 목적으로 파병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는 냉정한 발언이 있었다 하더라도 정부는 한국군을 통해 한진을 포함한 파월 민간업자들을 보호해야 했던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간략히 살펴 둬야 할 것 같다.

 

이미 언급했지만 정부는 경제발전이라는 국내 문제와 함께 북한 공산당에 당했던 한국전쟁을 생각할 때 공산주의자를 지구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싸우는 미국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의 남침으로 미군 1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한국 전선에서 발생했는데 미국이 증파를 요청하는 마당에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6.25 남침으로 유엔 16개국의 수많은 젊은 장병이 희생되고 1000만 이산가족이 생기게 된 역사적 사실을 생각한다면 오늘날에 와서 아직도 사과 한마디 없는 북한에 한국이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을 돕는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무모한 온정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울로 날아온 험프리 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이 월남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50만 명의 병력이 투입돼야 한다면서 한국이 1개 사단을 추가로 증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는 일본보다 당연히 한국에 더 큰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게끔 하겠다는 약속까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맹호사단의 잔류연대 혜산진(惠山鎭)부대와 백마부대 등 45000 병력이 추가 증파되는 계기였다.

 

그러나 한진을 포함한 우리 기업들과 민간 파월 기술자들이 월남 시장을 마음껏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신속한 파병이라든지 증파의 숫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존슨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한국군 7개 사단이 미군 34개 사단과 맞먹는 전투력을 지녔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독자적인 전술과 한국군만의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채명신 장군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성은 전 장관도 인터뷰를 통해 같은 증언을 했었다.

 

독자적인 작전권을 확보하지 못했으면 우리 기업들과 파월 민간업자들을 보호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였다. 증언의 일부 내용을 공개한다.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장군은 박 대통령을 만난다.

 

이미 육본 작전참모 부장으로서 비둘기부대 파병문제를 직접 다뤘던 그는 전투부대를 파병할 때도 박 대통령 앞에서 가장 먼저 논의한 것이 작전권 문제였다. 월남전이 발발했을 당시 채 사령관은 미군이 평화유지를 위해 비전투부대를 보내지 않고 만의 하나 전투부대를 월남에 파병한다면 한국도 전투부대를 보내는 것은 불가피하겠다는 예상을 했었다고 했다.

 

-왜 그렇게 예상하신 겁니까?

 

"6.25부터 생각을 해야 하는데 6.25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습니까. 김일성이 5년 동안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원을 받아 가면서 군사력 증강에 광분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세를 지니자 기습으로 남침해 온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때 일요일이라 전부 외출하고 장교클럽에서는 전방에 있는 연대장 사단장까지 불러다가 술 마시고 댄스파티 하고 아가씨 끌어안고 춤추고 25일 새벽 2시까지 그 짓하고 있었거든요.

 

그러고 2~3시간 후에 적이 쳐들어왔잖아요. 그땐 곤드레만드레 돼 가지고 육군 사령부 고급장교들은 전부 술에 나가떨어졌고 일요일이라 장병들은 외출 보내거나 농번기라고 해서 시골로 다 휴가 보내고 실지 병력은 반도 안 남아 있었단 말이죠.

 

그때 북한 괴뢰는 탱크 전투기 120대포를 막 갈겨대며 기습적으로 남침해 왔잖아요. 그러니 우리 전투부대는 거의 괴멸된 상태지요. 그러니까 부산까지 그냥 진격해서 내려가면 끝이에요.

 

그러면 그걸로 대한민국은 끝장나는 겁니다. 그때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이 있을 것이며 그때 싸운 상대가 공산주의자들 아닙니까. 똑같은 상황이 월남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미군이 비전투부대를 넣겠어요? 당연히 우리로서는 미군을 도울 수밖에 없고 전투부대를 원할 거라고 예상한 거죠."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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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6]

 

'작전권 없이는 월남 안 가겠다'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을 방문, 채명신 사령관의 안내로 주월한국군 사령부를 시찰하고 있다.

 

작고했지만 김성은 전 국방장관은 전투부대 증파의 배경을 경제 측면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60년대에 국민 애창곡처럼 소리쳐 불렀던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가사가 국민 모두의 공감을 얻었지만 박 대통령은 늘 '잘살게 해 보세 잘살게 해 보세'라면서 정부 각료들을 다그쳤다고 했다.

 

"월남전이 터진 그때가 6.25를 치르고 나서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100%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잖습니까. 그 무렵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85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빈곤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밀가루니 식용유 같은 것까지 미군이 갖다 줘서 우리 군대가 유지됐고 우리 국민도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라고 해서 밀가루 옥수수 이런 것들을 갖다가 먹고 살았던 겁니다. 국방비도 그걸로 사용했다구요.

 

그런데 안보까지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이북이 중공하고 상호방위조약이 되어 있고 소련하고도 상호방위조약이 돼 있고. 그래서 미군 2개 사단이 그때 한국을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2사단하고 7사단이오.

 

5만 명 가까이 주둔하고 있었죠. 그러니까 뭐 미국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루 생존도 어려운 상태였어요. 그럴 때인데 미국이 월남전에 본격적인 개입을 결심하고 나서 우리한테 특별히 병력을 증파해 달라고 부탁한 겁니다."(김성은 전 국방장관)

 

이런 상황에서 채 사령관은 기업들과 민간 파월 기술자들의 활동을 뒷받침해 줄 수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한국군만의 작전권을 확보했었기 때문이지만 그것도 자칫하면 확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사령관으로서 부임하기 직전이지요. 청와대에 들어가니까 박 대통령께서 '가거든 미군사령관 지휘하에 들어가서 임무수행을 하는 게 좋겠다'. 맨 먼저 이 말씀부터 하시더라구요. 깜짝 놀랐죠. 그래서 내가 명령 불복종이 된다면 군복을 벗겠다 작전권이 없다면 가지 않겠다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 드렸다구요."

 

-이유를 설명했을 것 아닙니까.

 

"6.25 때는 우리가 미군 지휘 아래서 작전을 했지만 월남은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침략을 받고 있는 자유 월남을 도와주러 간다는 건 정치적인 명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해야 우리도 정치적인 명분이 서지 이 전쟁이 미국의 청부전쟁도 아닌데 미군 지휘 아래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확실히 못을 박아 버렸다구요.

 

절대로 미군 지휘 아래서는 작전할 수 없다고 말이죠. 우리가 작전권을 가져야 우리 장병들 사기도 올려 줄 수 있고 우리 기업들의 신변보호도 가능한 거라구요. 작전권이 없는데 어떻게 장병이든 기업이든 민간기술자든 보호를 합니까?"

 

-박 대통령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디까.

 

"아주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라구요. '큰일 났다. 내가 브라운 대사하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이러시더군요. 물론 대통령의 뜻은 알지요. 우리가 실탄 하나 식량 하나 심지어 가고 오는 것까지 전부 미군 항공모함을 이용하고 헬리콥터다 탱크다 그런 것까지 전부 미군의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미군 지휘 아래 있어야 잘해 줄 거라고 생각하신 건 백번 옳은 말씀이에요.

 

그렇지만 월남은 전쟁 양상이 특수하다구요. 굴 속에 베트콩들이 잠복하고 지역전을 치러야 할 때도 숱한데 전체적인 작전만 가지고 돼요? 전선이 없고 후방에 적이 더 많단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전도 특수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말씀이 없으시더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하시더라구요. '국가원수가 상대방 대사에게 말씀하신 건 취소할 수 없으니까 일보 후퇴해 주십시오. 월남의 전쟁양상은 특수하니까 세부사항은 양군의 군사령관이 만나서 결정하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랬지요. 그래서 앞에서 얘기했듯이 미군 사령관 스몰렌 대장하고 공군사령관 브라운 대장 깐깐한 라슨 장군을 만나서 굉장히 싸웠지만 우리 입장을 관철시켜 작전권을 확보했던 것 아닙니까. 그게 없었으면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우리 기술자들 신변을 어떻게 보호합니까."

 

뒤에 한진이 수송과 하역 용역을 통째로 미국 회사에 빼앗기게 될 위기상황도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월남전을 경제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시장으로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한진의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병력 숫자만으로도 표정 관리를 해야만 될 일이었다.

 

실제로 형(조중훈)의 부탁을 받고 실패하면 귀국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왕복 티켓이 아닌 편도 티켓만 들고 월남으로 향한 당시 조중건 상무는 역시 형이 살피고 돌아와서 했던 얘기가 실감될 정도로 하역과 수송 물량이 황금 광맥처럼 줄지어 쌓여 있었다고 했다. 조 상무 얘기다.

 

"부두에 가 보고 다 돌아보니까 엉망진창이고 형님(조중훈) 말이 틀림없는 겁니다. 처음 월남을 둘러보러 가셨는데 금광이 바다 위에 떠 있더라면서 네가 가서 보자기에 싸 오라고 했단 말이죠. 금광을 아예 통째로 보자기에 싸 오라 이거죠 하하하. 그러면서 한국에서 친했던 미군들이 월남에 다 가 있으니까 너만 가면 전부 반길 거다 그거예요. 가서 보니까 진짜 사이공 아니면 퀴논에 다 있어요."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출처]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5,16] '한국에 큰 경제적 이익 주겠다' |작성자 오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