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48)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른바 ‘적폐 수사’를 총괄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한 이후 작년에만 세 번 좌천됐고 1년 내내 ‘채널A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한 검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윤석열 측근’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이 ‘검·언 유착’ 프레임으로 밀어붙였다가 실패로 끝났다는 게 중론인 채널A 사건 수사도 사실상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걸로 볼 수 있다. 윤 총장은 이 사건 처리에서 한 검사장을 감쌌다는 이유 등으로 직무 배제와 징계 청구를 당했다.
공작에 당해 감옥 갈 수 있겠다 생각
‘할 말이 많지 않으냐’는 본지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하던 한 검사장을 설 연휴 중인 13일 그의 서울 집 부근에서 만났다. “어감을 충실히 살려 달라”는 그의 요청에 따라 문답을 경어체로 정리했다.
―현직 검사장인 당신이 채널A 기자와 유착해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씨 비리 의혹을 제기하려고 했다는 ‘채널A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진실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가진 쪽에서 벌인 공작과 선동이 상식 있는 사람들에게 막혀 실패한 거죠.”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한동훈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안 주니 포렌식 기술이 더 발달할 때까지 기다리자’며 무혐의 결재를 미루는데.
“추미애 전 장관 등이 9개월 전에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는데, 다 어디 가고 아직 휴대전화 얘기만 되풀이하는지 모르겠네요. 어떻게든 흠을 찾아보려는 별건 수사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들에게 험한 일 이겨내자고 부탁
―작년 7월 대검 수사심의회는 당신에 대한 ‘수사 중단' 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때 ‘억울하게 감옥 가도 이겨내겠다’고 호소했었죠?
“당시 전방위 공작에 당해 감옥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더라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간들을 기록에 남겨두자는 거였습니다. 가족들에게도 험한 일 생길 수 있는데 같이 이겨내자고 부탁했죠. 거짓 선동에 맞서서 대한민국 시스템의 틀 안에서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자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채널A 기자가 녹음한 ‘부산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당신이 추미애 전 장관을 ‘일개 장관’이라 부르고 비판한 게 화제가 됐는데.
“공적 인물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그 정도 비판도 못 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죠.”
―이번 인사도 물을 먹었는데 억울한가요.
“세상에 억울한 사람들이 참 많고 저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억울한 일 안 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역사를 보면, 옳은 일 하다가 험한 일 당할 수도 있는 건데요, 그렇다고 저같이 사회에서 혜택받고 살아온 사람이 억울하다고 징징대면 구차합니다. 상식과 정의는 공짜가 아니니 감당할 일이죠.”
―'조국 수사'의 보복이라고 보나요.
“그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잉 수사였다는 지적도 있는데.
“설명 안 되는 의혹들이 워낙 많았고, 관련자들이 말을 맞춰 거짓말을 하거나 해외 도피까지 한 상황이라 집중적 수사가 필요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입시 비리나 펀드 비리 같은 건들만 봐도, 그 정도 사실이 드러나면 보통 사람들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되 유리한 사정을 설명하는 식으로 방어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음모론을 동원해 더 적극적으로 사실 자체를 부정했으니 압수 수색 같은 수사가 더 필요했던 거죠.”
―여권은 사소한 문제를 부풀렸다고 합니다.
“자본시장의 투명성, 학교 운영의 투명성, 고위 공직자의 청렴성과 정직성, 입시의 공정성, 그리고 사법 방해. 어느 하나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도 아니죠.”
―출세시켜 준 정부를 배신했다는 공격도 있었죠.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를 원했다면 저를 쓰지 말았어야죠. 그분들이 환호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 때나, 욕하던 조국 수사 때나, 저는 똑같이 할 일 한 거고 변한 게 없습니다.”
―여권에선 윤 총장이나 당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권 수사’를 했다고 의심합니다.
“윤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겁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 수사로 제 검사 경력도 끝날 거라는 거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하나 덮어 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
―'선출된 권력에 대한 검찰의 저항'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냥 틀리는 말입니다. 누구든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입니다. 모든 헌법 교과서에 나오는 당연한 말이죠.”
한 검사장은 전직 대통령 2명 외에도 전 대법원장, 삼성·현대차·SK 등 대기업 총수, 전·현직 판사, 청와대 출신 인사와 금융인 등 수많은 거물을 법정에 세웠다. ‘과잉 수사에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여러 번 제기됐고 재판에 대한 심적·경제적 부담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대답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수사하면서 공명심 같은 것은 없었나요.
“진영에 상관없이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해야 한다는 그 기준에 따라 일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약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게 현실 세계니까요. 그러다 공격받는 건 감수해야죠. 물론, 제가 한 일들이 모두 다 정답은 아니었겠지만, 틀린 답을 낸 경우라면 제 능력이 부족해서지 공정이나 정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서는 아니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 상황 고려하지 않고 기업 수사를 너무 가혹하게 하지 않았나요.
“저는 기업인이 대한민국 사회를 여기까지 발전하게 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꼭 그래야 하고, 깊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은 자유시장과 시장에서의 경쟁인데, 그 기초는 공정한 룰(rule)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심각한 불법이 드러난 이상, 그게 누구라도 똑같은 룰이 적용되어야만 그런 믿음이 가능합니다.”
국민에 충성할 뿐, 검찰 사랑하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의 ‘적폐’ 수사를 다 해 봤는데 차이점은?
“그런 비교가 제 몫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사실이면 잘못’이라는 전제하에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사실이라 해도 뭐가 문제냐’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권은 월성 원전 조기 폐쇄가 정책에 대한 것이니 수사 대상이 안 된다고 하는데.
“정책도 헌법과 법률을 지키면서 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는 어떤가요.
“지탄받는 악인을 응징할 때에도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지가 그 사회가 문명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주제가 ‘검찰 개혁’으로 넘어갔다. “당신은 ‘검찰주의자’냐”는 질문에 한 검사장은 “저는 검찰을 사랑하지 않아요. 의인화된 검찰 조직이란 허상입니다. 저한테 월급 주는 건 국민이고 거기 충성한다는 생각은 분명하지만, 검찰 조직이라는 허상에 충성할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없어요”라고 했다.
―검찰 개혁에 찬성하는지. 검찰이 자성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대단히 찬성합니다. 그런데 진짜 검찰 개혁은 살아있는 권력 비리라도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특별한 검사가 목숨 걸어야 하는 게 아니라, 보통의 검사가 직업윤리적 용기를 내면 수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 말입니다. 당초 검찰 개혁 논의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비리를 눈치 보고 봐줘서 국민들이 실망했던 것에서 시작된 거 아닌가요? 그 부분이야말로 검찰이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정부의 검찰 개혁은 반대 방향이라 안타깝습니다. 그 결과, 권력 비리 수사의 양과 질이 드라마틱하게 쪼그라들 겁니다.”
이대로면 약자·서민들이 착취당할 것
―그게 일반 국민 삶에 무슨 영향을 미치죠? 검찰 권한을 지키기 위한 핑계로 들립니다.
“강자의 권력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되는 순간, 부패는 공사(公私) 모든 영역으로 좀비(zombie)처럼 퍼져 나갈 겁니다. 가속도 붙을 거고요. 모든 영역에서 약자들과 서민들이 대놓고 착취당할 겁니다.”
―여당이 검찰이 무소불위라며 부패·경제·선거 등 6대 범죄 수사권도 뺏겠다고 합니다.
“추미애 전 장관 같은 사람 한 명이 1년도 안 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는 검찰이 어떻게 무소불위인가요. 오히려 얼마나 정치권력 앞에 취약한지 드러났죠. 권력 비리, 경제 비리, 기업형 조폭 수사에선 검찰이 어떤 기관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인데, 외압에 맞설 수 있는 법적·현실적 신분 보장 정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윤 총장, 가치를 공유하는 사이
―당신은 ‘윤석열 측근’인가요.
“윤 총장은 훌륭한 검사고, 좋은 사람입니다. 그분이나 저나 공직자이고, 할 일 했던 것뿐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치를 공유하는지는 몰라도 이익을 공유하거나 맹종하는 사이는 아니니, 측근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윤 총장이 정치할 거라고 보나요.
“그건, 지금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네요.”
―당신이 노무현 재단 계좌를 추적했다고 주장하던 유시민씨가 최근 공개 사과를 했죠.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저뿐 아니라 유씨의 거짓 선동에 1년 넘게 현혹당한 많은 국민이 피해자입니다. 그러니 어물쩍 넘어갈 수 없죠.”
―앞으로 계획은?
“검사 그만둘 때까지 지금까지처럼 살겠죠. 손해 보더라도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는 다짐은 늘 합니다. 20년 동안 수사마다 그걸 지키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운 좋게도 그때마다 주위에 좋은 수사관들, 실무관들, 검사들이 있었어요. 윤 총장도 그런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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