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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해병대 출신 건축가 정이삭이 '다세대주택'을 주목하는 이유

Marine Kim 2016. 4. 13. 15:25

백령도 해병대 출신 건축가 정이삭이 '다세대주택'을 주목하는 이유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최연소 기획자…"다세대주택, 한 시대 주거문화 보여주는 공공자산"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입력 : 2016.04.1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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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랩이 리모델링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387-31번지 다세대주택. /사진제공=에이코랩
에이코랩이 리모델링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387-31번지 다세대주택. /사진제공=에이코랩
마포구 연남동 387-31번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오가는 비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붉은 벽돌의 다세대주택의 주소지다. 완공된 지 25년 된 이 이름 없는 다세대주택이 3월 말쯤 한 젊은 건축가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

이 건물의 연면적은 207.80제곱미터(약 63평)로 약 38% 확대됐다. 반지하를 포함해 3층 높이의 건물이 4층으로 올라갔다. 발코니는 쇼윈도로 탈바꿈됐다. 계단을 다듬고 난간을 교체했고 통로에 벽돌색과 어울리는 옅은 상아색을 칠했다.

널찍한 사각 통유리들이 햇살을 머금고 빛나는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증축 및 대수선)한 인물은 정이삭(36·사진). 건축 사무소 에이코랩의 소장이자 오는 5월 열리는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최연소 기획자다. 리모델링을 마치기 전 이 다세대주택의 원본 모형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입구 정면에 배치된다. 무명 다세대주택이 전시 기획의도를 보여주는 '얼굴'이 된 이유는 뭘까.

정이삭 에이코랩 소장. /사진제공=에이코랩
정이삭 에이코랩 소장. /사진제공=에이코랩
"한국 건축업계가 실전에서 사투를 벌이는 대상은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작은 건물입니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의 전형이지요."

지역 주택업자가 1991년 완공한 다세대주택을 거장의 작품을 되살리는 작업처럼 꼼꼼히 관찰했다는 정이삭의 말이다. 건축가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다세대주택 리모델링’에 뛰어든 셈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은 개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지만 ‘공공자산’이기도 합니다. 한 시대의 주거문화를 오롯이 보여주는 건축이기 때문이지요. 이 공공자산은 대부분 90년대 지어진 것으로 우리 주거 문화에 다소 적합하지 않더라도 즉각적인 철거보다 되살릴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장소가 아닐까요."

정이삭은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거친 전장과 인연이 깊다. 북한의 포격 도발이 있었던 연평도의 해병대 부대 생활관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연평도서관'이 그의 작품이다. 외딴 섬에서 근무하는 해병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책의 향기를 느끼게 한 셈이다. 그 역시 백령도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정이삭은 두 가지 원칙에 맞으면 어떤 일이든 맡는다. "제 능력이 닿는 일,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축 일이라면 그게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함께 하고 싶어요. 하지만 사람의 생명마저 관여될 수 있는 건축일을 하면서 제가 하는 생각이 옳은지에 대해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해보는 시간도 갖습니다."
연평도서관. /사진제공=에이코렙
연평도서관. /사진제공=에이코렙
정이삭은 '연평도서관'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선정 ‘It-Award’ 공공환경디자인상을, 한국공간디자인단체총연합회가 시상하는 '따뜻한 공간상' 대상을 받았다.

한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을 이끄는 예술감독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용적률 게임'이란 전시 주제를 잡았다.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건물 바닥면적의 합)의 비율을 말하는 '용적률'은 한국 도시건축을 좌우하는 개념이자 건축가들이 사투를 벌이는 대상으로 규정됐다. 전시는 정이삭을 비롯해 신은기, 안기현, 김승범, 정다은 등 5인이 공동 기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