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news

대한민국이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Marine Kim 2016. 12. 29. 13:38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219] 가상현실의 나라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 입력 : 2016.12.29 03:08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내 주변을 막고 있는 험악한 좀비들. 무지막지한 공격을 가하지만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아니, 반대로 내가 쏜 총 한 방에 모두 힘없이 쓰러진다. 클릭. 채널을 돌려보자. 이번엔 금수저 10개 정도를 입에 물고 태어난, 정유라도 울고갈 페르시아의 왕자다. 그냥 집에서 편하게 쉬어도 될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주를 구하러 간다. 공주를 지키는 용의 입에선 시뻘건 불이 나오지만, 내가 휘두른 칼 한 방에 사라져버린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가상현실. 지난 수십만년 동안 인류는 언제나 같은 현실에서만 살았다. 인간은 모두 함께 사는 단 하나의 현실에서 제각기 성공하고 실패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가상현실이 보편화되는 순간 원하는 현실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현실에서의 문제를 풀기보다 복잡한 현실을 회피하면 된다.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보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가상의 세상. 마르크스의 말대로 종교가 인민의 아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 가상현실이 미래 시민의 아편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은 피하기 어렵다.

(왼쪽부터)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PC 게임 오버워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VR'. /각 홈페이지 제공
물론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 가상현실에서 더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되냐고? 문제는 지속성이다. 가상현실은 내가 원하면 사라지거나 바꿀 수 있지만, 진정한 현실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한다. 가상에서의 문제와 답은 가상현실 고글을 벗는 순간 무의미해지지만, 진정한 현실에서의 문제는 내가 아무리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주변을 막고 있는 아베, 푸틴, 시진핑, 트럼프. 대한민국이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주변 '스트롱맨'들이 쏜 한 방에 우리는 힘없이 쓰러질 수 있다. 북핵,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자유주의와 글로벌 자유무역의 몰락. 우리가 우리 자신을 멸망케 하는 가상현실에서 싸우는 동안 진짜 현실의 진짜 문제들은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8/20161228028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