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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세월→선거의 여왕→첫 여성 대통령→중도 하차

Marine Kim 2017. 3. 11. 07:57

인고의 세월→선거의 여왕→첫 여성 대통령→중도 하차

  • 입력 : 2017.03.11 03:02

[朴대통령 탄핵]
영욕이 교차했던 '인간 박근혜, 정치인 박근혜'

열두살 때부터 청와대 생활
1979년 흉탄에 아버지 잃은 뒤 靑 나와 18년간 대외활동 삼가…
1998년 의원 당선돼 정계 데뷔, 천막 당사로 한나라당 재건
2012년 대통령 당선됐지만 최순실과의 40년 인연에 발목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부녀 대통령,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됐지만 첫 탄핵 대통령으로도 남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삶은 영욕(榮辱)과 부침(浮沈)이 늘 교차했다.

12세부터 청와대 생활…부모를 흉탄에

박 전 대통령은 6·25 전쟁 중인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 셋집에서 대령 박정희와 육영수의 첫딸로 태어났다. 열두 살이던 1964년부터 시작된 청와대 생활을 박 전 대통령은 그리 행복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자서전에서 '청와대 생활은 하지 말아야 할 금기 사항이 빼곡한 나날이었다'고 했다. 1974년 8·15 경축 행사에서 어머니가 문세광에게 저격당해 숨지면서 프랑스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그는 당시 일기에 '소탈한 생활,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꿈, 이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로 했다'고 적었다. 22세 때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1시 30분쯤 아버지가 저격당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고 "전방은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빨면서 오열했다. "5년 전 어머니의 피 묻은 한복을 빨던 기억이 겹쳤다"고 했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는 1975년 3월 6일 청와대에서 처음 만났다. 최태민이 '육 여사의 현몽(現夢)을 꿨다'며 편지를 보내와 만나게 됐다. 최순실과의 연(緣)도 이때 시작됐다.

인고의 18년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인 1979년 11월 21일 두 동생 근령·지만을 데리고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왔다. 이후 1990년대 말까지 18년간 거의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신군부의 박정희 격하(格下) 운동 등으로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던 시절이라고 박 전 대통령은 이후 회고한 바 있다. 자서전에서 이 시기를 돌아보며 '권력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지므로 허무하다'고 했다. 1988년부터 아버지의 공을 기리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도 발족했다. 그는 "(아버지 10주기인) 1989년은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다고 해도 좋을 한 해였다"고 했다.

이 기간에도 최순실과의 인연은 끊기지 않았다. 최순실은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을 강남에 열고 박 전 대통령이 이사장이었던 한국문화재단 부설 연구원 부원장 등을 맡았다. 박 전 대통령은 검증 등에서 최씨 일가가 문제가 될 때마다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저를 도와준 인연"이라고 했다.

정치 입문과 18대 대통령 당선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어 이듬해 4월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해 당선됐다. 한나라당 부총재가 된 그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 1인 체제를 비판하며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복당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저에겐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고,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고 했다. '천막 당사' 정신을 발판으로 121석을 얻었다. 이후 당대표로 지휘한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하고도 병상에서 "대전은요?"라고 말하며 유세에 나섰다. 그때의 흉터가 아직 남아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패하고 "저 박근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라고 하며 한나라당의 정권 회복에 기여했다. 2011년 12월에는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바꾸고 총선을 지휘했다.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집권 여당 대선 후보가 됐고, 연말 대선에서 51.6%의 지지율로 승리했다.

그러나 최순실과의 40년 인연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차인 작년 9월 최순실씨가 개입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씨 관련 비리 의혹 이 잇따라 확인되자 결국 작년 10월 25일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고, 이후 두 차례 더 사과를 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11월 29일 3차 담화에서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야권은 이를 거부했고 12월 9일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중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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