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저 후보가 대통령 되면 어떤 세상 올 것인가'
- 입력 : 2017.05.08 03:09
지역·인물·여야는 낡은 기준… 어정쩡하고 기회주의적 처신
후보들 발 못 붙이게 하려면 새 대통령이 가져올 세상이
내 정치적 성향과 맞는지 유권자 이념에 따라 표 줘야
과거엔 인물 보고 찍었다. 지역 보고 찍었다. 여(與)냐 야(野)냐 보고 찍었다. 젊으면 좌(左) 찍고 늙으면 우(右) 찍었다. 못 살면 무엇이든 주겠다는 사람, 좀 살면 무엇이든 현상 유지할 사람 찍었다.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경향이 그랬다는 말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선거도 수십번 해보고 민주 선거에도 꽤 익숙해졌다. 뽑아놓고 후회도 해보고 속기도 여러 번 속았다. 게다가 이제는 우리 손으로 뽑은 현직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탄핵해 끌어내리는 엄청난 경험도 갖게 됐다. 이쯤이면 우리가 대통령 뽑는 기술(?)도 좀 늘었어야 한다. 그만큼 당했으면 더 이상 바보(?) 같은 유권자 신세는 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 볼 것 없다. 말 잘하고 임기응변 좋다고 좋은 대통령 되는 게 아니었다. 학벌 좋고 경력도 훌륭하고 군대도 꼭 갔다 와야 좋은 대통령 되는 게 아니었다. 흔히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따지는데 우리의 일천한 경험으로도 신·언·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채 좋다고 좋은 대통령 되는 것 아니고 언변 좋다고 훌륭한 대통령 되는 것 아니다. 또 학벌·학문이 뛰어나다고 좋은 정치하는 것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지역'도 별 볼 일 없었다. 지역은 성(城)을 쌓는 것이 아니라 감옥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지역인이 됐을 때 일시적으로 누리는 이득(?)보다는 추후 정권이 바뀌어 타지역 사람이 됐을 때 당하는 피해가 더 혹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가'가 판단의 준거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가 오래 발달해온 나라들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의 기본 환경이나 방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아직은 법과 제도의 경험이 부족한 나라, 남북으로 갈린 나라, 주변이 4대 강국으로 둘러싸인 나라, 무엇보다 이념 체계의 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서는 대통령 하나가 능히 나라의 기본 틀과 환경까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내일 투표소에 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저 후보가 되면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다. 그가 가져올 세상의 대략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인물, 지역, 여야, 공약에 구애되기보다 새 대통령이 가져올 '세상'이 유권자 개개인의 정체성과 어떻게 합치할 수 있는 것인지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각 후보가 내거는 세상이 과연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 맞느냐를 판단하자는 것이다. 내가 진보적 또는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진보·좌파 후보를 찍고, 내가 보수적이고 온건한 세상을 바란다면 보수당의 후보를 찍는 것을 말한다.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면에서 남북, 한·미, 한·일, 북핵, 개성공단, 주적(主敵), 사드, 국방력, 노동, 세금, 동성애, 낙태, 전교조, 민노총 등에 대한 자신의 이념 성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각 후보의 공약에 들이밀어 봐야 한다.
우리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가, 부조리와 불합리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가, 보수 우파적 '적폐'도 싫지만 좌파적 '적폐' 역시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기업이 성(盛)한 세상이 좋은가, 노동이 '당당한' 세상이 좋은가 이런 것들이 판단의 준거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냥 찍을 사람이 없어서' '이 사람 싫어서' '이 후보보다는 저 후보가 나아서' '어차피 안 될 사람 찍어 사표(死票)가 되기보다는' 등등의 이유로, 덧셈이 아니라 뺄셈 방식으로 표를 던지는 따위의 투표권 낭비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는 후보의 색깔이 아니라 내 생각이 더 중요한 잣대다. 자기가 보수인가, 진보인가, 우파인가, 좌파인가, 중도인가, 리버럴인가 하는 등의 이념적 성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그 스펙트럼에 정치·사회·경제·법·제도의 색깔을 맞추어가는 선진적 정치 문화를 체질화할 때가 됐다. 색깔론을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에 따라 '세상'을 선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실 이번 선거는 그런 변화의 기미를 보여 왔다. 여(與)냐 야(野)냐로 날카롭게 대립한 선거도 아니고 과거처럼 지역으로 싹 갈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진하나마 보수, 진보·좌파, 중도·보수, 노동 등의 이념적 구분을 내세 우는 경향이 강해졌다. 유권자인 국민도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맞춰 후보를 선택하는 진일보한 투표권 행사를 보여줬으면 한다.
이쪽, 저쪽의 표를 겨냥해 중간에 엉거주춤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듯한 기회주의적 처신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만들려면 유권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비추어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제시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선거도 수십번 해보고 민주 선거에도 꽤 익숙해졌다. 뽑아놓고 후회도 해보고 속기도 여러 번 속았다. 게다가 이제는 우리 손으로 뽑은 현직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탄핵해 끌어내리는 엄청난 경험도 갖게 됐다. 이쯤이면 우리가 대통령 뽑는 기술(?)도 좀 늘었어야 한다. 그만큼 당했으면 더 이상 바보(?) 같은 유권자 신세는 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 볼 것 없다. 말 잘하고 임기응변 좋다고 좋은 대통령 되는 게 아니었다. 학벌 좋고 경력도 훌륭하고 군대도 꼭 갔다 와야 좋은 대통령 되는 게 아니었다. 흔히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따지는데 우리의 일천한 경험으로도 신·언·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채 좋다고 좋은 대통령 되는 것 아니고 언변 좋다고 훌륭한 대통령 되는 것 아니다. 또 학벌·학문이 뛰어나다고 좋은 정치하는 것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지역'도 별 볼 일 없었다. 지역은 성(城)을 쌓는 것이 아니라 감옥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지역인이 됐을 때 일시적으로 누리는 이득(?)보다는 추후 정권이 바뀌어 타지역 사람이 됐을 때 당하는 피해가 더 혹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가'가 판단의 준거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가 오래 발달해온 나라들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의 기본 환경이나 방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아직은 법과 제도의 경험이 부족한 나라, 남북으로 갈린 나라, 주변이 4대 강국으로 둘러싸인 나라, 무엇보다 이념 체계의 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서는 대통령 하나가 능히 나라의 기본 틀과 환경까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내일 투표소에 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저 후보가 되면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다. 그가 가져올 세상의 대략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인물, 지역, 여야, 공약에 구애되기보다 새 대통령이 가져올 '세상'이 유권자 개개인의 정체성과 어떻게 합치할 수 있는 것인지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각 후보가 내거는 세상이 과연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 맞느냐를 판단하자는 것이다. 내가 진보적 또는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진보·좌파 후보를 찍고, 내가 보수적이고 온건한 세상을 바란다면 보수당의 후보를 찍는 것을 말한다.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면에서 남북, 한·미, 한·일, 북핵, 개성공단, 주적(主敵), 사드, 국방력, 노동, 세금, 동성애, 낙태, 전교조, 민노총 등에 대한 자신의 이념 성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각 후보의 공약에 들이밀어 봐야 한다.
우리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가, 부조리와 불합리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가, 보수 우파적 '적폐'도 싫지만 좌파적 '적폐' 역시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기업이 성(盛)한 세상이 좋은가, 노동이 '당당한' 세상이 좋은가 이런 것들이 판단의 준거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냥 찍을 사람이 없어서' '이 사람 싫어서' '이 후보보다는 저 후보가 나아서' '어차피 안 될 사람 찍어 사표(死票)가 되기보다는' 등등의 이유로, 덧셈이 아니라 뺄셈 방식으로 표를 던지는 따위의 투표권 낭비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는 후보의 색깔이 아니라 내 생각이 더 중요한 잣대다. 자기가 보수인가, 진보인가, 우파인가, 좌파인가, 중도인가, 리버럴인가 하는 등의 이념적 성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그 스펙트럼에 정치·사회·경제·법·제도의 색깔을 맞추어가는 선진적 정치 문화를 체질화할 때가 됐다. 색깔론을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에 따라 '세상'을 선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실 이번 선거는 그런 변화의 기미를 보여 왔다. 여(與)냐 야(野)냐로 날카롭게 대립한 선거도 아니고 과거처럼 지역으로 싹 갈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진하나마 보수, 진보·좌파, 중도·보수, 노동 등의 이념적 구분을 내세
이쪽, 저쪽의 표를 겨냥해 중간에 엉거주춤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듯한 기회주의적 처신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만들려면 유권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비추어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제시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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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7/20170507017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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