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묵

‘어떻게 …….’ ‘어떻게 …….’ 토마스는 ‘어떻게’에 묶여 있습니다

Marine Kim 2020. 5. 10. 23:01

오늘의 묵상

‘어떻게 …….’ ‘어떻게 …….’ 토마스는 ‘어떻게’에 묶여 있습니다. 토마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실은 예수님 그분 자체입니다. ‘어떻게’는 토마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일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어떻게’를 찾아 나서는 것은, 지도도 없이 미지를 탐험하는 일과 같습니다. 토마스와 필립보는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실은 자신을 개방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한계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마디가 ‘머물다’입니다. 함께 머무는 것은 경험과 이해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말 못하는 강아지나 고양이와도 함께 머물 수 있는 우리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함께 머물기가 그리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자문해 봅니다. 말이 통하고 뜻이 통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 사이에,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통하지 못하는 갈등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너무 믿고, 너무 의지해서, 너무 미워할 수 있다.’라는 말은 신앙생활 안에서도 되짚어 보아야 할 말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믿고, 너무 의지해서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예수님, 자신이 갈망하는 예수님이라는 우상을 부여잡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을 다 들어주신다는 믿음은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 안에서도 자유로이 당신의 뜻을 온전히 펼치실 수 있을 때 터져 나오는 감사와 감탄의 행위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작 우리의 편협한 뜻을 이루시려고 육화하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로우실 수 있도록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