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묵

성지순례길 - 수도권 지역: 죽산 순교 성지

Marine Kim 2017. 7. 17. 22:50

[성지순례길 - 수도권 지역] 죽산 순교 성지(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종배길 115)


따가운 여름 햇살이 쏟아져 내립니다. 오랜 가뭄으로 고즈넉한 전원 풍경이 곱지만은 않네요. 바싹 메마른 땅에 성지를 알리는 우람한 바위가 서 있군요. 천 년이 가도 변치 않을 바위에서 순교자들의 항구한 마음을 엿봅니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지의 검고 큰 솟을대문이 인상적이네요. 안으로 들어서자 넓게 펼쳐진 마당과 오른편의 대성전, 그리고 양쪽으로 높이 선 두 개의 순교자 현양 탑과 정면의 십자가 밑으로 나란히 자리한 순교자 봉분들이 고즈넉하군요.

2014년에 시복된 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복자 오 마르가리타 부부,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 막고 끌려간 최제근 안드레아와 방 데레사 부부, 귀머거리였던 남편과 수화로써 치명을 약속한 조치명 타대오와 김 우보 로시나 부부, 삼대 가족 넷이 함께 순교한 여기중과 아들 여정문과 며느리와 손자, 부자가 나란히 교수형 당한 최성첨과 아들, 한 날 처형된 이웃사촌 이희서와 홍천여, 이 년 뒤에 장인의 뒤를 따른 이희서의 사위 이진오, 일 년 전에 공주 감영에서 치명한 남편 고요셉의 뒤를 따라 자식을 떼어놓고 순교한 문 막달레나, 아홉 식구와 함께 체포되어 홀로 목숨 바친 한치수 프란치스코, 관아에서 조만과와 교리문답을 암송하며 신앙을 고백한 유 베드로, 옹기를 구우며 교우촌 공동체를 이룬 정덕구 야고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열일곱 살 난 딸을 치한들에게 내어준 김 도미니코와 김인원, 치명 기록만 남은 홍치수와 정 토마스와 금 데레사 등 24위 순교자들의 삶이 기구하기 그지없네요.

죽산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갈라지는 길목이어서 도성을 수호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1595년에 도호부가 되었으며, 1635년에는 여주에 있던 진영이 옮겨와 죽산도호부사는 수어후영장과 토포사를 겸하게 되었지요. 그에 따라 죽산도호부사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천주교인들을 체포하고 처형하였던 겁니다. 봉분이 마련된 24위 외에도 백여 명에 달하는 교우들이 단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고문받다 처형당하였던 것이지요. 좌우로 12기씩 놓인 봉분 한 가운데 자리한 무명 순교자 묘가 가장 큰 까닭을 알만하군요.

이곳은 고려 때 송문주 장군이 지키던 죽주산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몽고군이 진을 쳤던 자리라 이진(夷陳)터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곳으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는 뜻으로 ‘잊은 터’라 불리기도 하였답니다. 이곳의 비참한 역사가 잘 드러나고 있네요. 지명 유래를 알고 나니 가슴이 더 먹먹해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잊은 터’에 끌려가 견결한 믿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다 치명한 신앙 선조들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척박한 땅에 ‘눈물로 씨 뿌리던’(시편 126,5) 분들을 말입니다.

[2017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농민 주일) 서울주보 5면, 김문태 힐라리오(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