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묵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은 한쪽이 다른 쪽을 향하여 부탁하거나 지시하는 의무 수칙이 아닙니다

Marine Kim 2020. 5. 14. 15:14

오늘의 묵상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은 한쪽이 다른 쪽을 향하여 부탁하거나 지시하는 의무 수칙이 아닙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숙제로 주어진다면 사랑하면 할수록 지쳐 가게 됩니다. 성당 일을 할 때나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나,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것을 해야 할 일이라고 다짐할수록, 우리는 그 일을 기쁨보다는 의무감으로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일’은 서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한쪽이 다른 쪽을 향하여 건네는 선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자리에 서로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야 할 일’로 생각하기보다 ‘하고 있는 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굳이 무엇인가 행동하여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머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부조리하고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밝혀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창한 선물을 인간에게 건네주심으로써 인간이 감동받고 회개하여 하느님이신 당신께 돌아오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자리에 인간으로 오신, 그리하여 참으로 인간다운 것이 참으로 하느님다운 것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은 더러움을 떠나 깨끗함으로, 부족함을 떠나 완전함으로, 고통을 떠나 행복으로 나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을 더럽게 보지 않고, 부족함을 무시하지 않고,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그럼에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좋은 곳에 머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싫어도 미워도 함께 머무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