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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검찰 파쇼”라는 조국에게 묻는다김광일 논설위원

Marine Kim 2020. 7. 7. 23:00

입력 2020.07.07 18:05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검찰 파쇼’ 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 전날인 3일 전국 고검장·지검장이 다 모인 검사장 회의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휘는 위법’이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자 이것에 대해서 조국 씨가 반발한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 "임의기구에 불과한 ‘검사장 회의’다" "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 위반이 명백하다."

지난주부터 윤석열 총장이 검찰청법 제7조 2항에 명시된 이의 제기권에 근거해 추 장관에게 ‘지휘 철회’를 요청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법 조항은 이렇게 돼 있다.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하여 이견(異見)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자 조국 씨가 나서서 추 장관을 옹호하고 윤 총장에게 "검찰 파쇼"라고 한 것이다. 조국 씨는 이렇게 말했다. "통제를 받지 않는 검찰총장을 꿈꾸거나 지지하는 것은 ‘검찰 파쇼’ 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백화점식 가족 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으로 기소된 조국 씨는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 사건의 피의자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나름대로는 자신이 전임 법무장관이어서 후임 법무장관인 추미애 씨를 응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본인은 지금 형사 사건 재판의 피의자 신분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조국 씨는 "검찰 파쇼 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했는데, ‘다름 아니다’ 같은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 이것은 완전 일본식 표현이다. 이미 지식인 사회에서는 오래 전에 퇴출당한 표현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씨가 이 표현을 쓰고 있다. 책 안 보고 공부 안 한다는 뜻일까. 더구나 입만 열면 ‘반일 민족주의 선봉장’처럼 행세했던 위인이 일본식 표현을 쓰는 게 영 눈에 거슬린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조국 씨는 서울대 로스쿨 교수였고, 문재인 정권의 민정수석이었으며, 비록 한 달 동안이지만 이 나라의 법무장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그가 말한 ‘검찰 파쇼’라는 말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1982년 학번 대학생 시절 나름 운동권이었던 조국 씨는 대학원에 다니던 도중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약칭 사노맹 사건에 연루됐고, 1993년 5월 울산대 전임강사로 재직 중에 구속된 적이 있다. 그때 대법원 판결로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사노맹은 결성 이념이 반제(反帝), 즉 반제국주의, 그리고 반파쇼, 민족해방 등이었다.

아마 그런 시절부터 조국 씨는 어떤 상대방을 만나든지 늘 머릿속에 ‘파쇼·반파쇼’라는 단순한 이분 구도로 판단해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윤석열 검찰을 "파쇼 검찰"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80년대 운동권까지, 딱 그 시절까지 ‘파쇼’라는 말이 운동권 세력들의 입에 올라붙어 있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파쇼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2020년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입에서 파쇼라는 말을 듣게 되니 심지어 신기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80년대 운동권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파쇼 체제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박정희·전두환 체제를 파쇼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당시 세계적 냉전구도의 최전선에 놓인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보안법의 존치와 엄격한 적용은 필수불가결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검찰 파쇼’라는 말을 조국 씨가 처음 쓰는 말은 아니다. 올해 초 추미애 장관도 한 말이었다. 지난 1월 추 장관은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추진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방 이후 처음 권력기관 개혁을 제대로 하려는 것이다. 해방 전후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검찰 파쇼’라고 할 정도로 검찰에 많은 권한이 집중돼 인권을 침해하고 권력과 유착하는 등 국민 우려를 가중시켰다."

그런데 추미애 장관도 틀렸다. 이른바 권위주의 정부에서 ‘검찰 파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많이 썼던 표현이 ‘검찰 파쇼’였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면 여당 쪽에서 "파쇼 검찰"이라고 막말을 쏟아내곤 했다. 2003년 검찰이 정대철 민주당 대표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검찰이 파쇼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금과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데자뷔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다.


파쇼라는 말은 ‘묶음’ ‘결속’이란 뜻이다.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들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당의 상징이다. 파쇼란 원래 19세기에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정치 결사체를 일컫기도 했다. 작년9월 청문회 때 자칭 사회주의자라고 했던 조국 씨가 윤석열 검찰을 비난하면서 ‘파쇼’라는 말을 쓰니 앞뒤가 엇갈리는 느낌, 이건 뭐지? 하는 느낌도 든다. 근래에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독재 체제’를 파쇼라고 하기도 하며, 학술적으로는 ‘국가가 모든 일을 독점적으로 관여하는 정치 체제’를 파쇼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이념에 의하여 국가 전체의 활동을 통제하고 목적 지향적으로 사회를 이끌고 가면서 민간 부문이나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를 파쇼라고 한다.

‘정부가, 이념에 의하여, 국가 전체의 활동을 통제하고, 목적 지향적으로 사회를 이끌고 가면서…’ 말 그대로 놓고 보면 현 정부를 지칭하는 것 같지 않은가. 헌법학 교수 조국 씨에게 묻는다. 살아있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검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헌법주의자 윤석열이 파쇼인가,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박탈하려고 하는 추미애 법무장관이 파쇼인가. 대통령에게 가까운 인물들인 ‘조국, 송철호, 유재수’ 사건을 기소하고 재판하는 윤석열 검찰이 파쇼인가. 아니면 행정부·사법부를 장악하는 것은 물론, 방송 언론을 한 손에 거머쥔 상태에서 시민단체까지 석권한 문재인 정권이 파쇼인가. 드디어 입법부에 슈퍼 여당으로 군림하면서 ‘일당 독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갖은 입법 조치를 밀어붙이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 파쇼 아닌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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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7/20200707033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