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공기업 사장은 왜 대통령에게 소송 걸었나
입력 2020.07.19 05:43
[주간조선]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사장과 상임감사 자리가 3개월이 넘도록 공석이다. photo 뉴시스
그의 이름 뒤에는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는 소식과 함께 ‘갑질 논란’이 따라붙었다. ‘공기업 사장이 운전기사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논란으로 인해 해임됐다고 보는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장이 ‘그렇고 그런’ 갑질로 ‘그저 그렇게’ 해고된 경우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임명했던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무효 처분 행정소송을 걸었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그는 “정권 실세가 앉힌 ‘낙하산’에 의해 무리한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최창학(61) 전 한국국토정보공사(LX·옛 대한지적공사) 사장은 2018년 7월 사장직에 임명됐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전자정부국 국장을 지냈고,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 소장, 대한지적공사 공간정보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 7월 공모를 통해 LX 사장직에 임명된 그는 임기를 1년 3개월 남긴 올해 4월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LX의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는 그의 해임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토부가 그에게 보낸 통보서는 ‘공공기관운영법 제35조 제3항에 따라 그 직을 해임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최 전 사장은 국토부 장관이나 차관 또는 담당 실무자 선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해임이 결정됐다’는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4월 2일 오후 6시35분, 국토부 담당 국장으로부터 “5분 뒤 사장님 해임에 대한 전자문서가 전송될 것”이라는 전화 한 통이 해고 통보의 전부였다. 그는 실제 4월 3일 0시부로 해임됐다. 미리 짐을 챙길 틈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해임된 사장’ 신분으로 출근해 책상을 정리해야 했다.
국토부, 전화 한 통으로 해고 통보
최 전 사장은 지난 7월 15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해임된 배경에 대해 “LX 내·외부에서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학연·지연으로 얽혀 있는 류근태 전 상임감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라고 말했다. 류 전 감사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81학번 동문이다. 김현미 장관은 전주여고, 류 전 감사는 전주고를 나와 연세대에 입학했다. 최 전 사장은 “김현미 장관이 사장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거기 내 동향 사람(류근태)이 감사로 있는데 좀 시끄럽다더라. 크게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그날 김 장관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첫 만남부터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최 전 사장은 자신이 해임된 이유로 꼽히는 ‘갑질 논란’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사장이 아침에 1시간 일찍 출근해 사내 헬스장에서 운동한 것을 두고 ‘운전기사를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보는 게 정말 타당한 것인가. 운전기사 역시 헬스장에서 함께 운동하기로 동의했을 뿐더러 횟수도 평균 주 1.6회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운동이 아니라 집무실에서 혼자 신문을 봤다면 갑질이 아닌 것인가.” 그러면서 최 전 사장은 당시 운전기사가 “본인도 합의하에 일찍 나와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강요나 압박은 없었다”며 직접 쓴 진술서를 보여줬다.
최 전 사장의 ‘갑질 논란’이 그가 해임되기 직전 갑자기 터진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지역 언론 등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고,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야당 의원들로부터 관련 질의를 받았다. 또 LX가 추진 중인 ‘드론교육센터’ 건립과 관련해 ‘최 전 사장이 LX 본사가 있는 전북이 아닌 자신의 고향 경북에 지으려고 한다’는 의혹도 나왔다. 그는 “경주시가 좋은 조건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해서 통상적인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을 뿐, 내 고향에 지으려고 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심지어 내 고향은 경주도 아닌 예천”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어 같은해 11월에는 국토부에서 LX 측에 감사를 나왔다. 최 전 사장은 “당시 국토부 감사 담당자는 나와 만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5개월 뒤에야 해임을 통보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이 누군가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봤다. 일반적인 검증 절차도 없이 왜곡된 주장만을 근거로 해임됐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나처럼 억울함을 겪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류 전 감사는 감사 재직 당시 인사 전횡과 허위 예산 편성, 사적 관계가 있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나 지난 2월 해임됐다. 당시 감사원은 류 전 감사가 ‘△특정인에 대한 승진을 요구하는 등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고 △일상감사 권한을 이용하여 허위 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부당한 요구를 했으며 △자신과 관련된 특정 단체 등에 기부금 집행을 요구하고 △사적으로 알고 있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하는 등’의 부당한 개입을 했다고 밝혔다. 이 중 ‘허위 예산 편성 요구’의 건이 바로 최 전 사장이 “지역 민심을 배반하고 자기 고향에 지으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던 LX의 드론교육센터 건립이다. 감사원은 감사 보고서에서 “임원 A(류 전 감사)는 LX 자체 휴양소를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부지 매입 검토를 지시하면서 이를 드론비행장 부지 명목으로 예산을 편성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5일 만난 최창학 전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그는 “해임된 이후 하루에 10㎞씩 걸었다. 몸이 녹초가 돼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고 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낙하산 감사와의 갈등이 해고 원인?
주간조선이 입수한 LX 내부 ‘사장 해임 관련 이슈사항 정리자료’라는 문건에는 “사장 해임 사건은 부정과 비리로 해임된 상임감사(류근태)가 전반적인 것을 기획하고, 뒤에서 지역 언론과 추종 노조세력을 동원하여 문제를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 국토부와 청와대 지인들에게 전달해 만들어낸 기획 작품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나와 있다. 이 문건은 최 전 사장 퇴임 후 내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사장은 “사람들은 내가 ‘감사와의 갈등’을 빚은 것이 해임된 사유 중 하나라고 하는데, 감사가 인사전횡과 비위를 일삼는데 사장이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걸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류 전 감사는 감사원의 감사와 해임처분이 자신을 내쫓기 위해 내가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말대로 따라주지 않는 사장을 내쫓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넣은 정황이 많다”고 말했다. 류 전 감사 역시 지난 7월 15일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그 일(감사원 감사)은 최창학 전 사장이 꾸민 기획된 비리 조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LX의 한 직원은 “류 전 감사의 전횡 등으로 불만을 가진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전임 감사의 전횡은 LX 안팎과 전주 지역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류 전 감사는 2018년 3월 LX상임감사직에 임명됐다. 류 전 감사가 온 뒤인 2018년 4월, 전임 박명식 사장이 임기를 1년 8개월여 남기고 “새로운 정권의 인사권을 존중해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퇴했다. 이후 2018년 7월 최 전 사장이 부임했다. 이때부터 사장과 감사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는 것이 LX 내부의 시선이다.
LX는 자회사 LX파트너스에 여당 출신 인사를 사장으로 앉혀 ‘낙하산’ 논란이 또 한 번 불거졌던 곳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공공기관들은 자회사를 설립해 기존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는데, 이 자회사도 정권 주변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LX파트너스는 2018년 7월 전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고 서울 송파구에서 총선과 구청장 선거 등에 출마한 성모씨를 대표로 임명했다. 현재 LX는 사장과 상임감사 모두 공석인 상태로 공모를 진행 중인데, 성 모씨 역시 이 상임감사직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7/20200717035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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