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방탄조끼 4벌 껴입는 정권
02 | 수정 2020.07.23 18:10
할리우드 폭력물 영화를 보면 대개 중요 인물이 은신해 있는 저택은 몇 겹의 경호 보디가드가 배치돼 있다. 정문을 지키는 중무장 병력이 있고, 그들을 지나서 저택 가까이 가면 그곳 안뜰을 지키는 무장 보디가드가 있고, 다시 계단참 경호실에도 무장한 요원이 CCTV 모니터를 보면서 포진해 있으며, 마지막으로 중요 인물의 침실이나 거실 문 앞에도 무장 요원이 지키고 있다. 삼중사중으로 방호벽을 치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라는 것을 하면서 만든 시행령을 보면 구중심처 핵심 인물을 보호하려는 할리우드 폭력물 영화가 떠오르는 한편 지금 정권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왜 오늘 제목을 ‘방탄조끼 4벌 껴입는 정권’이라고 했는지 그것을 설명해드리겠다.
최근 청와대 민정실이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령에 따르면 앞으로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대상이 4급 이상 공직자, 3000만원 이상 뇌물, 마약밀수 범죄로 한정돼 있다. 게다가 곧 신설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가 3급 이상 공직자를 수사하도록 돼 있고, 또 5급 이하 공직자는 경찰이 수사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정작 검찰이 손 댈 수 있는 수사 대상은 오로지 4급 공직자로 한정돼 버렸다.
중앙부처 4급 서기관은 과장급 정도 되는데, 과장 한 사람이 단독으로 범행에 가담한 경우는 사실상 매우 드물다. 만약 어떤 하나의 뇌물 수수 사건에 3급 공직자와 4급, 5급 공직자가 함께 연루돼 있으면 당연히 검찰의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뇌물 사건은 수사하는 과정에서 연루된 인물들의 범위가 확대되기도 하고, 뇌물 액수가 늘어나기도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4급 공직자만 관련되어 3000만원 넘는 사건으로 확정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작년 말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찰이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와 대형 참사 등을 직접 수사하라고 했다. 검찰 권한을 일부 제한하면서도 이들 범죄에 대해선 직접 수사권을 준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해 통과시켰다. 그래놓고선 검찰이 정권 비리를 수사하자 시행령으로 ‘4급 이상’만 수사하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상 검찰에게 "공무원 수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같다. 이것은 살아있는 권력이 검찰의 수사를 막아내는 세 번째 방탄조끼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범죄 혐의를 받는 공직자의 직급에 따라 공수처·검찰·경찰 등 민감하게 수사 추체가 바뀌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됐다.
우리는 방금 수사권 조정이 지금 정권의 세 번째 방탄조끼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첫 번째 방탄조끼, 두 번째 방탄조끼는 무엇일까. 첫 번째 방탄조끼는 말할 것도 없이 공수처 설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시스템, 그리고 공수처장 추천 때 야당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절차가 진행된다면, 그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으로 향하던 검찰의 칼끝을 가로막는 첫 번째 방탄조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작년부터 시작된 조국 일가족 비리 의혹 사건, 울산 시장 선거 공작과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와 정권 실세 연루 의혹 사건,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사모펀드 관련 금융 사건들, 그리고 4·15 부정선거 의혹에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들, 이런 것들을 검찰 손에서 빼앗아가 공수처가 수사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고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공수처 설치가 지금 정권에게는 가장 든든한 첫 번째 방탄막이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방탄조끼는 추미애 법무장관이 취임한 이후에 거의 ‘인사 학살’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윤석열 총장의 손발 자르기’다. 앞서 말한 권력형 비리 의혹이 얽혀있는 사건들에 대해 직접 수사를 지휘하던 실무 책임자급 검찰 간부들이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는 인사를 당하고 있다. 1차 인사, 2차 인사,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3차 인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윤석열 사단을 솎아내는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둘째 방탄조끼다.
자, 그렇다면 지금 정권이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네 번째로 껴입은 방탄조끼는 무엇일까. 그것은 검찰 수사권 조정안에 들어있다. ‘국가나 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경우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점이다. 앞서 껴입은 3벌의 방탄조끼, 즉 첫 번째 ‘공수처 설치’, 두 번째 ‘윤석열 손발 자르기’, 세 번째 ‘4급 공직자로 검찰 수사 대상 한정하기’ 등등도 안심이 안 되어 한 벌 더 네 번째 방탄조끼, 거의 모든 검찰 수사에 대해 법무장관 허락 받기를 못 박아 놓은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대통령의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나 같다.
우리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지금 정권이 한사코 껴입으려고 하는 방탄조끼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공수처가 같이 출범했다면, 그리고 그때부터 사회적 ‘중대 사건’ 수사를 법무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면, 과연,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던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족에 대해 수사 개시가 가능했을까. 과연, 과연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라는 송철호 울산 시장 선거공작과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그들의 공소장에 대통령 이름이 수십 번씩 거론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과연, 과연, 대통령을 ‘형’이라고 부른다는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 국장에 대한 비리 수사가 몇 발작이나 뗄 수 있었을까.
야당에서는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정권 후반기 검찰의 사정(司正)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권이 방탄조끼를 네 벌씩이나 껴입는 것을 보면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정말 두렵기는 두려운 모양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3/20200723040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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