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유곡(深山幽谷), 계곡이 깊어 배 밑 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린다.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 2리, 백운산(해발 1,087m)과 구학산(해발 985m) 연봉 사이로 십여 리를 들어간 곳에는 계곡만큼이나 깊은 신앙의 터가 펼쳐진다.
한국의 카타콤바라 할 만큼 풍성한 신앙의 유산을 지닌 배론은 우선 그 경관이 수려하다. 배론 입구에 위치한, 경치 좋기로 유명한 원주 - 제천 간의 탁사정(濯사亭)은 배론이 자랑하는 절경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수려한 자연도 배론이 안고 있는 신앙의 유산에 견준다면 그 빛을 잃는다. 배론의 옹기 토굴에서는 명주 자락에 1만 3천 3백 84자로 울분과 신심을 기록한 '황사영 백서'가 쓰여졌고, 바로 옆의 초가에서는 이 땅 최초의 서구식 대학인 신학당이 섰으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신부였던 최양업 신부가 이곳 배론에 묻혀 있는 것이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배론 성지는 박해를 피해 산과 계곡으로 숨어든 교우들이 모여 이룬 교우촌으로 주로 옹기 굽는 일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곳입니다. 앞길이 창창했던 황사영은 천주교의 오묘한 이치에 매료되어 세례를 받은 후에는 벼슬길도 마다하고 1801년 신유박해 때 배론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해 8월 주문모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고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배론의 옹기 토굴에서 썼는데, 그것이 황사영 백서입니다. 하지만 백서를 품고 가던 황심이 붙잡혀 황사영도 대역무도의 죄인으로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옹기 토굴 옆에는 1855년 장주기 회장의 초가집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서구식 대학인 신학당이 복원되어 있고, 그 뒷산에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습니다. 이렇듯 배론 성지는 교회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2001년 3월 2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성지 일대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배론 성지는 1999년 최양업 신부 서품 150주년을 기념하고 시복 시성을 기원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을 건립하였는데, 그 모양이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합니다. 또한 대성당과 소성당 두 동으로 건립된 기념성당은 성지 주변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 하여 '배론'이라 불려온 지명과 어울리도록 배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2년 10월에는 성지 초입에 순례자들의 집을 봉헌하였고, 2004년 11월에는 대성당 뒤편에 최양업 신부의 거룩한 삶의 여정을 한 눈에 보고 묵상함과 동시에 산 이와 죽은 이가 한 자리에서 만나 기도할 수 있는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을 조성해 봉헌하였습니다. 2005년 피정의 집으로 사용되는 순교자들의 집을 새단장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2010년 9월에는 신자들에게 문화와 영성을 교육하고 교구 교회사와 영성을 기록 · 보관 · 연구함으로써 교회와 지역사회 문화 발전에 기틀이 될 '문화영성연구소'를 설립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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