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3, 4]

Marine Kim 2021. 1. 9. 23:00

월남파병 이야기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3]

 

'미국에 큰소리 친 적 있습니까?'

이동원 외무 '미군 철수 운운은 공갈'

'실리 최대한 얻어야' 박대통령 설득

 

월남파병의 주무부서는 당연히 국방부였다.

 

그러나 해외파병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특히 한국과 혈맹관계인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파병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거기에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최소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국방장관이 아닌 국무장관이 나섰듯이 한국의 핵심 파트너는 외무장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동원 장관이 생전에 필자와 만났을 때 털어놓았던 회고담이지만 그는 파병을 앞두고 이른바 '브라운 각서'에 담길 핵심적인 실리를 얻어내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마주 앉아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앞서 언급했듯 박 대통령은 파병의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얻겠다는 게 전쟁을 치르는 우방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 장관은 실리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맞서 언쟁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박 대통령의 그러한 생각이 순진하고 고상한 선비적인 심성 때문이라고 회고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설득에 박 대통령이 동의했다면서 '아주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미국이 6.25 때 우릴 도왔던 혈맹 아니냐 그런데 미국이 고독한 전쟁을 하고 있는데 조건 없이 도와줘야지 우리가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고 하면 되겠느냐 월남이 공산화된다면 동남아 지역과 한국의 안보도 위협받을 것이 분명한데 월맹을 제압할 수 있도록 무조건 도와야 하지 않느냐 이게 그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양심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돕지 않았을 때 미국이 주한 미군을 빼내 월남에 투입하면 당장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겠느냐 그것도 상당히 염려하셨지요.

 

196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 당시 한국은 GNP 60불 수준의 최빈국이었다.

 

그분이 생각하고 계신 걸 그렇지 않다는 논리로 설득하고 미군을 한국에서 빼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작전을 짜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참 애먹었습니다 하하. 어떤 사람은 뭐 김정렬씨가 나섰다느니 모 대사가 나섰다느니 그러는데 전혀 아니고 나하고 박 대통령하고 단 둘이 담판을 짓다시피 했던 겁니다. 이게 월남파병 초기 때 얘기요."

 

월남파병을 통한 한국 경제의 부흥을 위해 미국과 담판을 앞둔 시점에서 박 대통령과 나눈 대화록을 이 장관이 회고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면 당시 청와대 안에서 얼마나 깊숙한 밀담이 오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각하 김성은 장관(당시 국방장관)과 장기영 부총리한테 파병에 따른 득실과 경제적 실리에 대해 검토를 지시해 주십시오."

 

"임자(이동원 장관)는 득실 계산이 나오면 어떡하겠다는 게야. 임자한테 자꾸 맡겨 달라고만 하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내가 알아야 되겠어."

 

"각하의 심중은 제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미군이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며 한국전쟁을 도왔는데 은혜를 갚아야지 월남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거나 다름없는 미국을 상대로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미국이 월남 전쟁을 수행하는 것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런 것이 국제 간의 손익계산서인데 파병에는 실리가 따라야 합니다. 국방장관과 부총리가 검토해 결론이 나오면 그걸 바탕으로 미국 교섭의 포지션 페이퍼를 작성해 해결을 보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미국이 곤경에 처했다는 걸 알면서 조건부 협상을 하겠다는 거 아니오 이 장관은!"

 

"각하 어차피 3차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우리의 젊은 장병들을 월남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입장이라면 외롭게 싸우고 있는 미국을 지원하면서 경제와 국방 외교 면에서 충분한 실리를 얻어내야 한다는 게 저의 판단이고 계산입니다."

 

지금까지 끌려 다니기만 하던 한국 외교를 일시에 반전의 기회로 돌려놓을 수 있고 배짱을 부릴 수도 있는 찬스라고 본 것이 이 장관이었다. 그는 열변을 토했다고 했다.

 

"각하 전쟁을 잘만 이용하면 시베리아도 개발할 수 있고 중공대륙에도 당당히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본이 한국전쟁을 이용해 경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많이 팔아 먹었고 얼마나 이익을 챙겼습니까. 그렇다고 욕을 먹었습니까? 그게 냉혹한 현실이고 실리외교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왕성한 힘을 가지고서도 끌려만 다니는 외교를 해서 되겠습니까.

 

왕성한 인력이 기업으로 보면 굉장한 담보물이듯 왕성한 전투력은 어떤 병기보다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담보가 됩니다.

 

우리의 왕성한 전투력이 아니라면 왜 콧대 높은 미국의 거물급들이 뻔질나게 한국을 찾아오고 야당 지도자들까지 찾아다니면서 기름기 흐르는 얄팍한 웃음을 보이고 그러겠습니까. 각하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지금까지 미국에 형님 대접 한번 받아본 적 있습니까? 미국한테 큰소리 한번 쳐본 적 있습니까? 그런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파병외교는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각하!"

 

"이 장관 우리가 실리를 조건으로 내걸면서 자꾸 흥정이나 하는 이미지를 주면 명분도 잃고 다 잃어. 미국은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빼내 월남에 투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단 말이오. 그걸 알아야지!"

 

"각하 그건 공갈입니다."

 

"뭐야?"

 

"정말 그런 생각을 한다면 미국은 아시아의 반공라인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건 미국의 절대적인 손실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때 왜 참여했느냐 하는 미국의 근본적인 명분마저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유엔 참전국 전체의 원성도 피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걸 미국이 모를 리 있겠습니까? 반공라인을 포기한다면 월남전에는 왜 참전을 했다는 겁니까?"

 

"그게 공갈이라는 소리는 임자가 첨이구먼!"

 

*************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4]

 

'월남 문제로 각하 만날 생각마'

미국과 파병협상 유리하게 이끌려고

이동원 장관, 브라운 대사 불러 통보

 

 

1965년 초 윈스럽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외무장관 자격으로 배석한 이동원 장관.

 

19667월 한국군이 월남 주둔지 두코지방에 도착해 포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각하 절대 공갈입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뺀다는 건 시나리오조차 작성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보다 더 유능한 외교관들과 군사 전략가들이 워싱턴에는 득실거리고 있을 텐데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 공산괴뢰들이 반드시 남침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월남전 때문에 한국에서 미군을 빼고 극동지역을 포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내가 공갈이라는 것도 생각 못해서 우려하고 있었다는 소리구먼?"

 

"아이고 각하께서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갈이 아니라면 러스크 국무장관이나 번디 차관보 노레드 국무성 한국과장 같은 이들이 통사정을 하면서 서울에 와 달라고 해도 콧방귀만 뀌더니 부르지도 않는데 왜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겠습니까. 심지어 서울의 브라운 대사는 급하게 워싱턴으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급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관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야."

 

"각하 외교는 찬스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번 기회에 국방경제 외교경제를 통해 충분한 실리를 얻어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협상하고 실리를 좇느냐에 따라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쟁복구만 해도 수송업체 건설업체 대규모 노동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 아닙니까. 우리가 파병하는 대신 월남전에 소요되는 막대한 군수물자와 일반물자까지 우리가 수출할 수 있도록 협상할 수도 있습니다."

 

"김용태 의원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먼."

 

"김 의원께서 그런 생각을 한다면 매우 현실적이고 옳은 시각입니다 각하!"

 

"당신 너무 야박해!"

 

"저는 국제외교를 하는 외무장관입니다."

 

마침내 박 대통령은 이 장관에게 국회를 설득하고 소신껏 해보라는 하명을 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워싱턴으로 존슨 대통령을 만나러 가기 전 박 대통령과 작전을 세운 한 가지가 있었다.

 

"각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파병 문제 때문에 서울의 브라운 대사가 각하 면담을 요청하면 그 문제는 저하고 전부 협의하도록 해 주시고 만나주지 마십시오."

 

"대사를 만나주지 말라니."

 

"각하께서 대사를 만나주시면 그 친구가 저하고는 협상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버르장머리만 나빠질 것입니다. 그러면 일이 안 됩니다. 저는 브라운 대사를 통해 우리의 조건을 워싱턴에 전하도록 하고 그것이 수용되지 않으면 존슨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겠다고 통고할 생각입니다."

 

"존슨 대통령이 임자를 만나주겠어?"

 

"각하께서 브라운만 만나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존슨 대통령이 저를 만나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이 장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외무장관으로서 철저히 실리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미국에 요구할 파병 조건이나 경제적 규모에 대해 박 대통령과 나눈 말씀이 없었습니까?

 

"없을 수 없지요. 미국에 여러 가지 국군 현대화니 경제 원조니 기업 진출이니 그런 걸 설명 드리면서 내가 처음에는 너무 엄청난 액수를 잡으니까 대통령께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시데요? 그렇게 하다가 인심만 잃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씀도 하시고.

 

그래서 내가 미군이 월남에서 쓰는 돈을 생각해 보시라고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요구하는 건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고 그랬지요.

 

그때 우리가 56만 명 군대가 가지 않았어요? 근데 우리 장병 수만큼 미군 56만 명이 월남에 갔다면 돈을 수십 배는 더 썼을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대통령도 더는 말씀이 없으시고 너무 심하게 공갈치지는 말라고 하시더군 하하하."

 

이른바 '브라운 각서'를 받아내기 위한 이동원 장관의 전략과 배짱은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에 '브라운 각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브라운 각서에 담긴 규정과 합의 내용에 근거해 파월장병들의 보수와 수당 한국의 모든 물자 수출과 기업체 진출 등이 결정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월남파병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도 반드시 배경이 되고 분석의 근거자료가 되는 것이 '브라운 각서'였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면담이 갑자기 차단되자 예상했던 대로 브라운 대사는 펄쩍 뛰고 난리를 쳤다. 미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가 박 대통령과 정무협의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외무장관에게 항의를 해 온 겁니까?

 

"하하하 그놈 자식이 보통 콧대가 아니었거든.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난감하게 됐다고 난리예요. 그만큼 미국 대사의 힘이 컸어요. 그렇지만 파병은 저들이 아쉬운데? 그래서 내가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한 방 놨어요.

 

당신이 정일권 총리도 만나고 김성은 장관도 만나고 부총리 야당 당수 다 만나고 대통령까지 만나겠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앞으로 월남 문제로 각하 만날 생각은 하지 마라. 어떤 경우가 됐건 나하고 협의를 해야지 각하와 합의를 봤다고 해도 그건 무효다. 파병은 외무장관이 오케이 안 하고는 어림없다.

 

그랬더니 펄펄 뛰고 말이요 외무장관이 대통령 위에 있는 거냐고 핏대를 올리면서 난리야. 그럼 마음대로 하라고 외무장관 오케이 없이 한국군 파병이 되는지 당신이 재주껏 해 보라고 하하하."

 

-수그러들었습니까?

 

"저들이 몸이 달아 있는데?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끝나는 게 아니라 확전되고 있었단 말이오. 결국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나오데 하하. 우선 두 가지를 백악관에 전하라고 했어요. 브라운과 협의를 하는 게 아니고 내 뜻을 백악관에 알려 존슨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오라는 식이지요. 그 두 가지가 엄청난 겁니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출처]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3,4|작성자 오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