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7, 8]

Marine Kim 2021. 1. 9. 23:06

월남파병 이야기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7]

 

'각서 안 쓰면 또 워싱턴 갈 거요'

존슨 대통령과 담판 끝에 '브라운 각서' 작성

상당한 실리 얻어내 한국 경제발전의 디딤돌

 

월남전에 한국군 추가 파병을 요청하기 위해 1966년 방한한 존슨 미국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군이 건설한 월남의 비둘기교.

 

이동원 장관과 존슨 대통령 간에 오간 두 시간의 대화는 한국군 파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브라운 각서'에 담길 내용도 백악관에서 타결된 셈이며 한국 정부가 계산한 경제적 실리도 사실상 큰 줄기에서 합의를 보게 되는 것이다.

 

6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경제사에서 분명한 획을 긋고 있는 국군 파월 내용은 892월부터 집중 인터뷰 여섯 차례 수시 인터뷰 십수 차례를 통해 채록한 이 장관의 증언과 공개된 외교문서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외교문서에 나오지 않는 비사들은 대화록을 통해 재구성했다.

 

이 장관은 존슨 대통령이 '월남에서 미군이 상당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미국이 믿는 친구인 한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듣고 특유의 배짱과 익살스러운 논리를 펼치며 편하게 대화를 이끌었다고 했다.

 

"각하 미국이 한국의 혈맹이고 친구고 한국이 가장 의지하는 형님인데 그런 미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 도와드리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 국민은 보은과 의리를 소중히 하고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우리의 방위선이 위협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미군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미군을 도울 수 있도록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셔야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미국이 어떻게 도와주면 한국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거요."

 

여기서 이 장관은 두 가지 조건을 꺼낸다. 브라운 대사를 통해 미국에 전달하려 했던 핵심이었다.

 

"각하 대한민국이 미국을 돕기 위해 파병을 하는데 파병으로 인해 대한민국 안보가 위태롭게 돼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월남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맹방인 한국이 안보의 위협을 받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각하.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파병에 따른 한국군의 전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한국군을 현대화해야만 되는데 브라운 대사께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제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 대사가 잘못이오. 내가 도와드리겠소."

 

대사를 옆에 앉혀두고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냐고 했을 때 이 장관은 정색을 하면서 '외교 교섭은 실리추구가 목적이다. 체면도 없고 인정사정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렵더라도 결정권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외교를 잘한다고 하는 게 무슨 소린지 아느냐. 가증스러울 정도로 억지를 부리고 뻔뻔스러운 짓을 예사로 하면서도 시침을 딱 떼고 자기들 주장을 고집하기 때문'이라면서 크게 웃었다.

 

물론 브라운 대사는 어금니를 짓누르며 붉은 반점이 돋을 정도로 화난 표정이었지만 존슨 대통령이 자신에게 확인하지 않는 한 끼어들지 못하게 돼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병들 대우 문제입니다. 한국군이 생명을 걸고 미군을 도우려고 하는데 그러자면 미군이 한국군을 형제처럼 아우처럼 대접을 해줘야 용기백배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것이오. 누가 대접을 하지 않겠다고 했소?"

 

"여러 가지 재정 지원에 있어서 브라운 대사가 차등 대우를 하겠다고 하니까 제가 생각할 때 이건 각하께서 모르고 계시는 사항이 아닌가 싶어 각하를 뵈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건 우리 대사가 또 잘못한 거요. 같은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데 차등대우를 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하게 생각하겠지요. 내가 지시를 하지요."

 

이것으로 협상은 끝났다. 이 장관은 '두 시간 동안 만났는데 장병들에 대한 처우문제와 한국군 현대화 문제가 30분도 걸리지 않고 해결됐다'면서 나머지는 월남전쟁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묻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국회가 들끓고 국민의 우려가 증폭되는 국가적인 최대의 이슈였지만 상대에 따라 의외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국제외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미 전쟁을 하고 있는데 존슨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무엇이 궁금했다는 겁니까?

 

"그게 사실은 존슨 대통령의 불행입니다. 역사적으로 월남전에서 미국은 무엇이었느냐를 평가할 때 중요한 의문의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데 미국의 개입이 세계 정치사에서 어떤 문제점을 남기고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하는 걸 존슨 대통령은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던 겁니다. 나는 그렇게 봐요. 존슨이 나한테 월남전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고요.

 

이건 굉장한 시사점이 있는 거요. 그때까지 존슨은 확실하게 국제외교를 통한 지지를 확보하지도 파악하지도 않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솔직하게 그대로 얘기했어요.

 

미국은 어렵다. 그러자 왜 어렵다고 보느냐면서 심각하게 물어요. 각하 월맹도 동양인데 동양 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호랑이인 줄 알고 처음에는 겁을 먹었는데 싸우고 보니까 미국은 종이호랑이다 이건 무섭지 않다 오래 시간을 끌면 언젠가는 종이호랑이가 터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 각하께서는 두 개의 적과 동시에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월맹과 미국 내부의 반전 세력이지요. 각하께서 월맹을 이기려면 나는 종이호랑이가 아니고 진짜 호랑이라는 걸 보여주셔야 하는데 그걸 보여주기에는 의회부터 강한 저항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렵다는 겁니다 하니까 존슨 대통령이 굉장히 심각하게 들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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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8]

 

'월남서 번 돈 전부 국내로 승금하라'

미 상원 '한국 5년간 54600만불 이득'

많은 젊은이 희생됐지만 경제자립 바탕

 

'브라운 각서'를 통해 월남서 이뤄지는 건설사업에 한국인 참여기회를 확대시킨 것은 한국 경제자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은 부대 주둔지역을 중심으로 대민 봉사와 공사작업을 활발히 하였는데 사진은 하리엔손 도로준공식. 아래 작은 사진은 맹호부대가 지어준 빈탄국민학교 준공 이양식 장면.

 

-듣고만 있는 겁니까?

 

"전쟁에 승산이 없다는 얘기를 했으니까 심각히 들으면서도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묻지요. 그땐 나도 파병을 하겠다 해서 만나놓고 방법이 뭐냐고 물으니까 대답하기가 참 조심스럽데요. 그래서 총칼로 이길 자신이 없으면 입으로 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외교전을 해야 한다고 그랬지요. 존슨 대통령이 그 얘기도 심각하게 듣습디다. 그런데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닉슨 대통령이 들어와서 키신저를 내세워 모든 걸 입으로 해결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일어날 때 존슨이 날보고 그러시데. 월남전에 대해서 자기한테 그처럼 확실하게 얘기해준 건 당신이 처음이라고 이제는 뭔가 알 것 같다고 말이지. 이건 기록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러면 브라운 각서는 백악관에서 작성된 겁니까?

 

"아니지요. 한국에 돌아와서 브라운을 불렀어요. 당신네 대통령이 모두 오케이 한 것 들었지 않느냐 들었다 이거요. 그러면서 내가 요구한 대로 하겠다고 그래요. 그러면 각서를 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대사가 각서를 쓰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말이야 하하하. 워싱턴에서 당한 것도 분한데 각서까지 쓰라고 하니까 약이 오른 거지. 그렇지만 나는 웃지. 여보시오 당신은 믿겠지만 후임대사가 와가지고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 그땐 어떻게 하느냐.

 

우린 생명을 보내놓고 너희는 약속을 안 지키고. 그러면 내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건 물론이고 우리 장병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각서를 써야 너희 대통령이 약속한 게 남을 것 아니냐. 그래가지고 각서 안 쓰겠다는 걸 그러면 미국에 또 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브라운 각서'예요.

 

펜이 잘 나오는데도 안 나온다고 내던지고 말이지 하하하. 결국 대사관으로 돌아가서 메모랜덤(각서)을 가지고 왔는데 아마 대사가 외무장관한테 각서를 써준 것이 한.미외교사에 처음이었을 겁니다."

 

이 장관은 브라운 대사에 대해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지만 월남파병의 근간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박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내기도 하고 정일권 총리가 러스크 국무장관과 험프리 부통령을 만나 여러 차례 설득한 것도 영향을 미쳤음을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브라운 대사가 직접 이동원 장관 앞으로 공식 문서를 보냈다는 것으로써 이 장관의 집요한 노력이 얻어낸 결과물임은 입증이 되는 셈이다. 브라운 각서의 정식 명칭은 '한국군 월남 증파에 따른 미국의 대한(對韓) 협조에 관한 주한 미 대사 공한(公翰)'으로 규정됐다.

 

미국이 추가 파병을 조건으로 10개항의 '군수협조'6개항의 '경제협조'를 포함 총 16개항을 정리해 196637일자로 보내온 문서는 '대한민국 이동원 외무장관 각하'로 시작되고 있다.

 

물론 주요 내용 중에는 당시 가장 민감했던 한국 방위 태세의 강화 국군 전반의 실질적 장비 현대화 보충 병력의 확충 증파비 부담 북괴의 남파간첩 봉쇄를 위한 지원과 협조 대한 군사원조 이관 중지 차관 제공 대 월남물자와 용역의 한국 조달 장병의 처우개선 문제 등 9개항이 포함되어 있다.

 

군수협조 10개항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탄약 생산을 증강하기 위해 병기창 확장 시설을 제공한다든가 막사와 독신 장교 숙소 식당 위생 오락 시설 등 부대 복지를 위한 재원 제공도 포함돼 있다.

 

파월 한국군 전원에 대해 196634일 비치 장군과 김성은 국방장관 간에 합의된 조항에 따라 해외 근무수당을 지급한다는 것도 담겨 있다. 월남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상자에 대해서는 한.미 합동군사위원회에서 합의된 액수의 2배 비율로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것도 들어있다.

 

한국 정부가 가장 관심을 집중시켰던 경제협조에서는 '파월 대한민국 부대에 소요되는 보급물자와 장비를 대한민국에서 실행할 수 있는 한도까지 대한민국에서 구매하고 파월 미군과 월남군을 위한 물자도 최대한 대한민국에서 발주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수송업체와 건설업자들이 새로운 시장을 열게 됐다고 환호했던 부분도 '미합중국 공급업자들과 경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월남공화국에서 농촌건설사업 선무 구호 보급 건설 등의 사업을 위해 한국인 민간기술자 고용을 포함하여 기타 용역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생각해 보면 그게 엄청난 금액이고 결과적으로 월남전 파병은 정치.외교적으로 정당성 여부를 떠나 우리 경제성장의 촉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65년부터 72년까지 8년여 동안 많은 젊은이의 희생이 있었고 그분들 덕분에 경제자립의 바탕이 됐다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오.

 

그 전까지 우리 산업이라는 게 뭐가 있었어요? 한국군 장비 현대화도 그때부터 가능해졌지만 군복 신발 캔 음식 막사 건설 이런 산업이 전부 발달하게 된 것 아니오? 우리 경제사적인 면에서 점프하는 디딤돌이 파월인데 조그만 건설회사든 큰 건설회사든 돈은 그 사람들이 다 벌었어요.

 

한진이 제일 많이 벌었고. 한일회담으로는 포철과 울산공단 같은 기간산업을 일으켰다면 파병을 통해서는 일반산업을 키운 겁니다. 재미있는 비화도 많고 아직도 공개해서는 안 될 얘기가 많지만 우리가 월남에서 번 돈을 월남에서 쓰질 못하게 해서 전부 국내로 송금하도록 했는데 그게 산업의 밑거름이 됐고 그 돈이 정말 큽니다."

 

실제로 702월 미 상원 사이밍턴 청문회 때 포터 주한 미 대사가 참전에 따른 한국의 경제적 이득을 설명할 때 5(1965~1969) 동안 54600만 달러라 했고 미국 언론은 '한국군 5만 명 파병에 5년간 10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이는 브라운 각서에 따른 것'이라면서 마치 미국이 공짜로 거저 준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장병들의 희생과 기술자들을 포함한 한국 기업들의 엄청난 수고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장관도 언급했지만 월남특수를 최대한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시킨 대표적인 기업이 한진이었다. 인천에서 수송업으로 시작했던 한진이 급성장한 것은 월남전 덕분이었다.

 

한진을 통해 월남전이 한국 경제에 어느 정도의 기여를 했는지 조망해 보는 것도 흥미를 끄는 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출처]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7,8|작성자 오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