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Motto(Once a Marine, always a Marine)"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

Marine Kim 2021. 1. 2. 10:37

Motto(Once a Marine, always a Marine)"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 [1]

 

Motto(Once a Marine, always a Marine)는 어떤 구호가 아니라 모든 해병, 특히 오늘의 해병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변화이며 또한 해병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지표이기도 하다. 또한 이 Motto는 우리의 형제해병대인 미국 해병대로부터 한국전쟁 중 한국 해병대와 함께 전투를 한데에서 유래되었지만 지금은 우리 한국 해병대의 고유 Motto로 정착되어 있다.

 

해병대의 자랑이었고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해병대 군복을 국가예산의 절약이라는 허구한 미명하에 우리의 젊은 시절을 헌신과 희생으로 지켜왔던 그 국가가, 박정희 정권이 우리들의 삶의 목표였고, 보람이 었고, 또한 삶의 터전이었던 해병대를 천추의 한을 품고 벗게 한지 벌써 30여 년(해병대 해체일 1973.10.10)이 지났다. 그러나 그 모든 지난 일들이 어제 일같이 아직껏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함은 아직도 우리는 그 정신, 해병 정신 속에서 살고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

 

전역 당일의 우리의 슬픔과 분노가 어떠하였음을 나는 여기에 감히 필설로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것을 여기에 기술한들 오늘의 해병들에게는 그런 일은 이미 지나간 옛사건으로밖에 생각안 될 것이고 따라서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 당시의 좌절감과 원통함과 함께 우리가 모군의 해체에 대한 분노로 흘렸던 피눈물을 도저히 우리는 잊을 수가 없으며 그런 우리를 오늘의 해병들은 이해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의 해병들은 이미 오래 전의 지난 추억꺼리로밖에 안되는 과거지사로 생각지 말고 언제든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항상 이에 대비하는 마음의 자세를 늦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는 다시는 이런 우리가 느끼고 또한 가졌던 분노와 비애를 우리의 후배들이 느끼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변해가고 있으나 우리는 우리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또한 체력이 노쇠해 가는 것 등을 우리 자신을 보고 느끼는 것 이외는 달라진 것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직껏 우리는 우리들의 선배들이 이룩한 그 고귀한 해병 정신과 그 전통을 이어 가기 위한 해병 정신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라는 우리, 해병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특유의 Motto 속에서 우리들 자신도 느끼지못하고 있는 중에 그렇게 살고 있는 데 이는 해병대의 철저한 훈련과정을 통하여 상하가 하나가 된 전우애로 뭉쳐진 해병대 생활의 결과로 생각된다.

 

즉 해병대 생활 중의 모든 것, 그리고 그 과정이 우리의 본능으로 변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사실 우리는 그 정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누구든 해병대 출신이면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Motto는 구호가 아니고 이 겨례와 이 나라를 위한 우리들의 행동원칙이며 또한 우리들의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한 헌신이며, 희생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은 해병대는 국가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병대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같이 우리, 해병가족들은 해병대의 명예와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다. 또한 이 엄연한 사실을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세대들에게도 전승하여야 한다.

 

특별히 한국전쟁 중 우리는 국가를 위한 대의를 위하여 적과의 전투에서 우리의 젊음을 희생하여 나라를 방위하였고 또한 월남전에서 국익을 위하여 싸웠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해병대의 명예"를 위해서 싸웠고, 우리 자신을 희생시킨 것이다. 즉 상관의 명에 따라 수 많은 해병들이 자신을 희생시켰고 또한 목숨까지 버리면서 전투하였다는 사실이다.

 

상관의 명에 의해 죽고 사는 해병들의 감투정신은 한국전쟁을 통해서 "귀신 잡는 해병대", "무적 해병대"라는 별명으로 국민들로부터 명명되었다. 그 별명은 우리들의 선배 해병들에 의해서 붙여진것이라는 사실을 오늘의 해병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이의 올바른 유지와 계승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책임도 오늘의 해병들에게 있음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현역시절의 상관이었던 그들은 우리들이 해병대의 군복을 벗고 민간복으로 갈아 입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영원한 정신적 선배이며 또한 우리들이 존경하여야 할 대상임을 부정할 해병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할 자는 스스로 해병이기를 이미 포기한 자이다. 우리는 그런 비겁자를 종종 주변에서 볼 수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어떤가? 생각해 보자.

 

우리는 군복을 벗은지 3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의 선배들을 존경하고 후배들을 동생같이 사랑하며 그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젊어서 갖고있던 패기에 찬 해병 정신을 잊지 않고 다시 새롭게 찾게 되어, 회복 되며 그 정신으로 "해병대의 전통"을 이어 가기 위하여 오늘의 전투와 같은 사회생활에서 힘쓰게 된다. 이것이 해병 정신이며 이것은 현역과 예비역이 공통적으로 갖고있는 정신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이라는 이 MOTTO를 우리의 회생의 활력소로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하여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우리의 해병 정신을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해병대의 전통""상경하애"의 정신, 즉 지휘관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고 또 그 부하는 그 상관, 지휘관을 위하여 그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으며, 필요 시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정신자세의 유지, 즉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해병대의 전통"이라고 한다.

 

이 정신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전우애"로 결집되는 것이며 또한 당시의 어려웠던 환경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나가는 희생의 정신이다. 이 희생의 정신을 우리는 "해병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정신으로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 싸웠고 지금도 그렇게 살기를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신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니 그 후에도 우리의 후배들을 통하여 계속 계승,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귀한 해병대 전통계승은 어떤 문서나 말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을 직접 계승한 해병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국가는 19731010일부로 그 전통의 전수, 계승자들인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용사들을 해병대의 해체를 통하여 해병대에서 고의적이건 아니건 영구히 퇴출시키므로서 해병대의 전통역할을 하고 있던 힘의 근원인 허리를 잘라 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때 우리, 우리의 선배들은 이 부당한 처사,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해병대가 해체되는 사실에 대해 아뭇소리도 못했다. 그런 우리는 과연 외강내유였던가? 외유내강이었던가? 아마 전자였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않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모든 해병들은, 선배해병인 우리 모두는 자괴감을 느끼고 반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허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대비하며 노력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 병들은 우리의 후배해병들에게 올바른 "해병 정신""해병대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지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의 실정은 과연 어떤가?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한번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자신과 자신의 발자취를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해병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이의 실천을 위하여 "상경하애의 정신(희생의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가?"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그렇게 살고 있는지? 우리 해병들은 오늘의 현실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오늘을 살고 있는 해병들은 명심하기를 바란다.

 

계속

 

 

출처 : 이근식 예) 해병 대령, 해간 3by oldmarine

marinekslee.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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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to(Once a Marine, always a Marine)"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2]

 

 

우리의 Motto"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어떤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단결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이 국가를 위한 우리의 헌신, 우리의 행동의 능력, 즉 힘인 것이다. 오늘의 해병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로 뭉쳤었다.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고 해병대의 전통을 유지, 계승케 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선배, 오늘의 해병들의 선배이며 또한 그들은 우리의 자랑이며 우리가 항상 존경하여야 할 선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오늘의 해병들은 그런 선배해병들을 과연 기억하고 있는지 우리는 묻고 싶다.

 

"오늘의 해병들은 과연 선배해병들을 기억하며 또한 그 해병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올바르게 알고 그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여기서 오늘의 모든 해병(현역 및 예비역)들에게 아래의 두가지를 제시하는 바이다.

 

1. 전투 시 공격소대장의 심경

 

전투 시 소대장이 맨 앞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적진 속으로 뛰어갈 때 ""하는 해병들의 돌격소리가 뒤에서 들리지 않을 때,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뒤따르는 해병이 아무도 없을 때 그 소대장의 절박한 심리상태를 누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때 겁에 질려 바닥에 엎드려있는 그들을 향해 산 정상에서 Carbine M-2로 총격을 가할려 조준까지 했었다.

 

산 정상으로 먼저 뛰어올라간 소대장을 따르지 않고 또 소대장이 죽건 말건 산 아래에서 겁에 질려 비겁하게 엎드려서 산 정상에서 적과 수류탄 투척전을 하고 있던 소대장을 그대로 관망하고 있었고 또한 소대장의 "돌격 앞으로!"하는 돌격명령에 돌격하지 않고 그대로 엎드려 소대장을 쳐다보고 있는 그런 겁쟁이들 전부를 총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가 산정상, 목표위에서 적과 수류탄 투척전을 하고 있는 것을 엎드려 보고 있으면서, 소대장이 살아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올라오지 않았다. 이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순간 울화통이 터졌다.

 

"이것들이 무슨 해병대야"하는 그런 절망적인 폭발하는 감정에서 였다. 이 세상의 누구도 이런 소대장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 앞에 서본 경험이 있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해병들에게 만일 자신이 소대장이 되어 이러한 상황 속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할까? 그리고 어떻게 대처했을까?하고 묻고 싶다.

 

이런 상황은 전투 시에만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며, 이는 가상이 아니고 내가 "도솔산 공격" 시 경험한 실제 상황이다. 이 실제 상황은 "우리, 해병은 한국전쟁 중 이렇게 전투했다".하는 내용으로 해병대 전투(1)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독자들은 한번 꼭 읽어 보시라.

 

나는 그때의 그 절박했던 심정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 가고 있다. 그것은 도저히 잊을래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예측불허의 심각한 상황은 우리가 원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전통계승자들은 이런 소대장에 의한 산교훈을 통하여 올바른 전통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 오늘의 해병들은 아래 내용을 귀감으로 삼기 바란다.

(1) 희생의 정신:

 

미 해병대 소대장

 

1953년 초 한국전쟁이 한참 치열할 때 서부전선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Bunker Hill"고지에서 중공군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귀국을 1주일 앞둔 미 해병대 포병소위가 "자기는 포병이기 때문에 적과 직접 전투를 안했으므로 귀국 전에 소총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전투 경험을 쌓고 귀국하고 싶다"는 그 소위의 요청에 따라 소대장으로 임명된 그 소위는 일선소대장으로서 그 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Bunker Hill"전투에서 중공군과 전투 중 귀국을 며칠 앞두고 애석하게도 전사했다. 그는 과연 누구를 위해 그의 생명을 희생했을까?

 

 

(2) 군인정신:

 

'레이몬드 G. 데이비스' 중령

 

한국전쟁 중 가장 어려웠고 또한 치열한 동계전투였던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제7연대 제1대대장, '레이몬드 G. 데이비스' 중령의 혁혁한 전공: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전멸당할 위기 속에 있던 인접대대인 제2대대의 F 중대를 직접 병력을 지휘하여 구출한 전공으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미국 최고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을 수여받았다.

 

그의 그런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미 해병 제1사단은 '장진호'지역으로부터 '흥남'부두로 성공적으로 철수하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의 피난민 10만 명을 후송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한국전쟁 중의 그의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도 "최고훈장"을 받은 "장진호 전투"의 영웅 미 해병대의 "Gen. Raymond G.Davis"의 군인의 귀감이 되는 철저한 군인정신을 본받자.

 

'윌리암 E. 발버' 대위

 

한국전쟁 중 미 해병 제1사단 제7연대 제2대대 F 중대장으로서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여 고립된, 전멸당할 위기 속에 있는 중대를 지휘하여 65일 동안 6차에 걸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여 중공군 1.000여 명에게 치명적인 피해(사살, 부상)를 입히고 진지를 지원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모든 초급지휘관의 모범이 되는 '윌리암 E. 발버' 대위의 초급지휘관으로서의 용감성과 탁월한 전투지휘능력을 교훈삼자. 이 전투는 결과적으로 미 해병 제1사단의 '흥남'으로의 철수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전투 종료 후 보행가능한 F 중대의 인원은 220명 중 82명이었다. - -

 

출처 : 이근식 예) 해병 대령, 해간 3by oldmarine

marinekslee.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