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대구대교구 > 가실 성당

Marine Kim 2015. 10. 19. 18:20


투르뇌 신부가 1920년대 초 건립한 벽돌조 성당.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로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다.가실(佳室) 본당은 경북 지역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대구대교구 소속이며 설립일은 1895년이다. 초창기의 이름은 가실 본당으로 후에 행정구역명을 따라 낙산(洛山) 본당으로 개명되었다가 다시 가실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주보는 성녀 안나이다.

본당 설립과 정착  박해가 끝난 뒤 경상도 지방의 전담 신부로 임명된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신나무골(지천면 연화리)에 거주하다가 1887년 대구 인근의 새방골[新坊谷]로 이주한 뒤, 신나무골에는 그의 보좌인 보두네(Baudounet, 尹沙勿) 신부와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가 한때 거처하다가 각각 전주와 부산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를 이어 1894년에 입국한 파이야스(Pailhasse, 河敬朝) 가밀로 신부는 그 해 6월 신나무골에 와서 머물며 경상도 북부 지방을 맡아 전교하였으며, 9월경 가실(佳室, 왜관읍 낙산동 蘆湖)로 이주, 김회두(金會斗, 베드로) 소유의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삼고 전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파이야스 신부가 담당한 전교 지역은 칠곡을 비롯하여 성주, 선산, 문경, 상주, 함창, 군위, 안동, 예천, 의성, 김천, 거창, 안의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지였으며, 공소는 17개소. 신자수는 777명이었다. 파이야스 신부는 이후 1898년 6월까지 이곳에서 전교하다가 황해도 장연의 두섭[道習] 본당으로 전임되고, 제2대 본당 주임으로 김성학(金聖學) 알릭스 신부가 부임, 3년 간 전교 활동을 하다가 1901년 김천 본당을 분리 설립하면서 그곳으로 이임하였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끝난 1894년 신나무골에서 경상도 북부 지방 선교를 담당하던 파이야스 신부는 가실(佳室)로 이주하여 순교자 성순교가 살던 기와집을 매입하여 가실 성당을 설립했습니다. 1912년 부임한 투르뇌 신부는 1944년 지병으로 사망하기까지 가실 본당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제 치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전교 활동에 노력하여 교세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또한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여 1925년 9월 드망즈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교황 사절 지아르디니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습니다.

투르뇌 신부는 1922-1924년 사이에 현재의 신 로마네스크식 벽돌조 성당을 건립했는데, 설계는 명동 성당과 대구 계산 성당을 지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와넬 신부가 담당했습니다. 프와넬 신부는 중국 기술자들에게 벽돌을 한 장씩 굽도록 하여 잘 구워진 것은 성당을 짓는데, 중간치는 사제관을 짓는데, 품질이 나쁜 것은 버렸다고 합니다. 당시의 유물과 유산은 현재 유물관(구 사제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도시화와 탈농촌 현상으로 신자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1990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였고, 성모동굴과 교육관을 마련하고 순교자 성순교 가문의 신앙 유적비를 세워 1995년 100주년을 맞아 봉헌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동양화가 손석희가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와 독일의 유명한 색유리 작가 에기노 바이너트가 제작한 유리화를 2002년에 설치했습니다. 10개의 창문에 설치된 유리화의 주제는 ‘예수님의 삶’입니다.

대구대교구에서 현 계산 주교좌성당에 이은 두 번째이자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인 가실 성당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근대 건축사와 교회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옛 사제관과 함께 2003년 4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구대교구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낙산 본당으로 변경된 본당명을 2005년 2월 본래의 가실 본당으로 다시 변경했습니다. 2011년 7월에는 16년이나 늦었지만 충분한 자료를 토대로 “가실(낙산) 성당 100년사”를 출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