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대구대교구 > 대구 관덕정

Marine Kim 2015. 10. 19. 18:23
관덕정 순교기념관 정문 앞에 대구대교구 제2 주보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상이 서 있다. 성인의 유해는 경당에 모셔져 있다.대구 관덕정(觀德亭)은 조선 시대 무과 시험제도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都試廳)으로 조선 영조 25년에 세운 건물이다. 옛 이름은 관덕당(觀德堂)이었다.
 
관덕정은 옛 아미산 언덕 밑 전부에 해당하는 너른 앞마당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은 무과의 과거를 보던 연병장으로, 활쏘기와 말타기를 위한 승마장으로 사용되었고 세시 민속놀이인 줄다리기도 이곳에서 행해지곤 했다. 관덕정이 천주교와 깊은 연관을 맺기 시작한 것은 바로 연병장 가장자리인 아미산 등마루, 속칭 ‘관덕정 말랭이’로 일컬어지는 현재의 적십자 병원 남쪽 언덕배기 처형장에서부터이다.
 
이 아미산 처형장은 조선 시대 군사 훈련장이었던 장대벌(봉덕동), 비산동 날뫼 뒤에 있는 큰 들인 꼬부랑개와 함께 조선시대 중죄인들을 처형하던 3대 처형장의 하나로 꼽힌다.
 
이곳은 원래 국사범을 공개 처형하는 곳이었으며 1864년 3월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처형된 유서 깊은 곳이다. 당시 나라의 기틀을 뒤흔드는 것으로 여겨 중죄인으로 취급됐던 천주교인들은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등 박해 때마다 이곳에서 온갖 참혹한 방법으로 처형됐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대구 관덕정(觀德亭)은 조선 시대 무과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都試廳)으로 영조 25년에 세워졌습니다. 관덕정 앞마당에 자리한 연병장에서는 무과를 위한 활쏘기와 말타기, 세시 민속놀이인 줄다리기도 행해졌습니다. 관덕정이 천주교와 연관을 맺은 것은 연병장 가장자리인 아미산 처형장에서 천주교인들이 순교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중죄인으로 취급됐던 천주교인들은 박해 때마다 이곳에서 온갖 참혹한 방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선조 34년에 경상도 감영이 대구에 설치되면서 경상도 전역의 교우들이 대구로 이송되어 감영에서 옥사하거나 처형장에서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관덕정과 감영 등 대구 지역에서 순교한 20위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관덕정이 순교성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순교자 이윤일 요한이 시성되면서부터입니다. 대구대교구는 사형 터로 고증된 부지를 확보하여 1985년 순교기념관 기공식을 시작으로 1991년 1월 20일 지하경당 축복식과 이윤일 성인 유해 이전 봉안식을 갖고 그해 5월 31일 개관하였습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한식 누각으로 당시 관덕정 모습을 재현한 순교기념관에는 이윤일 성인의 유해와 함께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유해 그리고 영남 지역 교회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연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순교정신을 함양하고 신자들의 신앙 재교육과 선교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2년부터 매년 ‘성 이윤일 요한제’를 기획 · 거행하고 있습니다. 2002년 1월 21일에는 기념관 입구에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의 동상을 세웠고, 2007년 1월 21일 기념관 바로 옆에 신관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회의실과 강당 등을 갖춘 신관은 순교신앙 학습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