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대구대교구 > 복자 성당

Marine Kim 2015. 10. 19. 18:26
복자 성당 마당에 조성된 순교자 묘역 전경. 병인박해 때 순교한 허인백, 김종륜, 이양등 3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대구시 동구 신천 3동에 위치한 복자 성당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카), 이양등(베드로) 3위 복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각각 김해, 공주, 서울 태생인 세 순교자는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집과 전답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경상도의 교우촌으로 피난해 온 이들이다.
 
천주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애환은 오늘날 후손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하물며 우리의 믿음이 바로 이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임을 기억한다면 순례자들은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울산 장대벌에서 한날한시에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이들의 시신은 허인백의 부인 박조예에 의해 처형 직후 형장 근처의 강둑 아래 구덩이 속에 묻혀 있다가 1907년 경주 산내면 진목정 앞산에 합장됐다. 그 후 1932년 5월 말 월배동 감천리의 천주교 묘지로 옮겨졌다가 1973년 10월 19일 비로소 대구 복자 성당 구내로 모셔져 오늘에 이른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대구 도심에 위치한 복자 성당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3위 복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김해, 공주, 서울 태생인 세 순교자는 박해를 피해 경상도의 교우촌으로 피난해 온 이들입니다. 울산 장대에서 한날한시에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이들의 시신은 허인백의 부인 박조예에 의해 처형 직후 형장 근처의 강둑 아래 가매장되었다가 1907년 경주 산내면 진목정 앞산에 합장되었습니다. 그 후 1932년 월배동 감천리의 교회 묘지로 옮겨졌다가 1973년 복자 성당 구내로 모셔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산내면 단석산의 범굴에 피신하던 이들은 1868년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경주 진영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곤장으로 피와 살이 터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끝끝내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경주 진영에서 병마절도사가 있는 울산까지 80리 길을 걸어 도착한 울산 장대에서 그들은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순교의 월계관을 썼습니다.

복자 성당은 대구대교구가 병인박해 100주년(1966년)을 기념해 교구민의 성금으로 1970년 설립한 성당으로 1973년 3위 순교자의 유해를 이장하면서부터 도심의 순례지로서 순교신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2002년 순교자 묘역에 대한 성역화사업을 추진하여 묘소를 새로 단장하고 묘역 둘레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으며, 묘소 앞에는 넓은 잔디마당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성당 내부 제대와 감실에 성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의 유해를 안치했습니다. 2010년에는 노후화된 성당을 보수해 3위 순교자를 기리는 성당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한 후 감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3위 순교자는 모두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