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대신 ‘답너정’... 태영호의 꼰대 탈출 공식
[터치! 코리아] 1년 넘게 본 ‘필자’ 태영호
‘북한식 꼰대’였던 그가
보수정당 탈꼰대 전도사 돼
비결은 경청과 질문 던지기
입력 2021.05.08 03:00 | 수정 2021.05.08 03:00
태영호 의원 유튜브인 '태영호TV'의 '전지적 비서 시점'편. 보좌진의 불만을 재치있게 담았다.
지난 보궐선거 때 랩 하고 먹방 찍는 태영호를 보면서 내가 알던 태영호가 맞나 싶었다. 한동안 그가 가족 빼고 가장 많이 연락하던 사람이 기자였다. 1년 3개월간 본지 인기 칼럼이었던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탐구생활’ 담당자여서 거의 매일 카톡을 주고받았다.
2018년 가을 태영호를 처음 봤다. 공개 활동을 거의 안 하던 그에게 에세이형 칼럼을 제안했더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암살 위험 1순위’ 인사가 청한 만남이라니 잔뜩 긴장됐다. 동료를 대동해 충무로의 한 카페로 갔다. 중절모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꽁꽁 가린 태영호가 경호원 대여섯 명과 함께 나타났다. 누가 알아볼세라 카페 구석 자리로 잽싸게 몸을 욱여넣던 그를 기억한다. 경직된 표정, 불안이 일렁이던 그날의 눈빛도.
기억에 남는 원고 중 하나가 작년 새해 첫 칼럼이다. 그가 이끌던 비영리 통일 단체 직원들이 매일 한 시간 넘게 훈계하는 그더러 ‘북한식 꼰대’라고 해 충격받은 이야기였다. 2020년 목표가 꼰대 탈출이라고 했다. “아빠처럼 앞머리가 벗어지고 잔소리 많은 사람이 전형적인 한국 꼰대 이미지니 주의해야 한다”는 대학생 아들의 가차 없는 직언에 배꼽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태영호가 요즘 국회의 탈(脫)꼰대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태미넴(태영호와 가수 에미넴을 합친 말)’이라 불리며 국민의힘에 치석같이 붙은 꼰대 이미지를 떼는 일등공신이 됐다. 얼마 전 태영호를 만났더니 이유가 보였다.
첫째,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가 아닌 ‘답너정(답은 너가 정해라)’ 태도다. 초선의 정치 신인이자 5년 차 대한민국 신인이 선수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법은 ‘경청’이었다. “의원님이 한국을 몰라서 그렇다”는 20대 보좌진 말에도 꾹 참았다. 왜? 한국 생활 대선배니까. 막춤도, 랩도, 먹방도 그들의 “지령”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열린 자세로 임했더니 보좌진이 긴장했다. 잘못 시켰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더 열심히 하더란다. 대학에서 각각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하는 두 아들이 전해주는 20대 밑바닥 민심에도 귀 기울였다.
둘째, ‘잘되면 네 덕, 안되면 내 탓’이라는 자세다. 태영호는 선거 후 국민의힘이 승리에 취하지 말고 “왜 여전히 ‘이대녀(20대 여성)’의 표심을 얻지 못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진중권이 “태영호만 제정신”이라고 칭찬하자, 그는 “태영호 보좌관이 제정신”이 정확하다고 굳이 바로잡았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 20대 여성 비서가 “선거에 이겼다지만 우리 또래 여성에게 민주당은 팀장, 국민의힘은 더 권위적인 상무 이미지”라고 하더란다. 어떤 설명보다 와 닿는 비유를 듣고 글의 포인트를 잡았는데 자신의 공인 척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정은 위중설’을 잘못 제기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땐 사과했다. “정치판에선 사과하면 사퇴하는 게 불문율”이라며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잘못을 시인하는 게 당신답다”는 아내의 말을 따랐다.
셋째, ‘라떼(나 때)는 말이야’ 안 하기다. 태영호는 “북한에 있었으면 보나 마나 내 얘기만 하는 꼰대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에서 나고 자란 태영호의 ‘라떼 이야기’가 남한에선 안 먹힌다. 남한에서의 사회화 연령은 20대 수준임을 그도 인정했다. ‘라떼’로 말문을 열지 않으니 젊은 층이 마음을 열었다.
지난해 2월, 태영호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것 같다고 미리 알려주며 했던 말이 있다. “남의 등에 업히지 않고 제 발로 걸어가는 길을 선택하겠다. 제 발로 걷는 인생이 아니라면 왜 한국에 왔겠느냐.” 솔직히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겨우 한국에 적응한 사람이 무슨 국회의원이냐고, 게다가 비례대표도 아니고 지역구라니. 지금 보니 내가 틀렸다. 타성에 젖은 꼰대는 정작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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