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다가올 양극화가 큰일이다
입력 2021.05.08 03:20 | 수정 2021.05.08 03:20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회에 양극화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느낌이다. 지난 30년간 소득분배 통계를 보면 양극화는 다음의 경우 악화되었다. 첫째, 경제 위기가 왔을 때이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맞았을 때 여지없이 소득 격차가 커졌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없는 사람’이 더 큰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둘째, 부동산 투기가 휩쓸고 지나갈 때이다. 2002년과 2006년 집값 폭등 이후 분배 지표가 현저하게 악화되었다. 셋째, 성장이 더디고 일자리가 정체될 때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 중·고등학교 2020년 학업성취도 분석을 통한 코로나 학력격차 실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세 가지 요건 중 어느 하나만 발생해도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최근 우리 경제는 세 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형상이다. 코로나 위기, 부동산 광풍, 일자리 정체가 겹치면서 앞으로 다가올 양극화가 매우 험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이번 양극화는 코로나 영향으로 산업 간, 세대 간 격차까지 키우고 있어 더 우려된다.
지금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반도체 같은 일부 산업의 착시 효과에 힘입어 기업들이 선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향후 물이 빠지면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벌거벗고 있을지 모른다. 대변화의 흐름을 탄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 간의 격차는 엄청 확대될 것이다.
세대 간 벌어지는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지금 기성세대가 누리는 행복의 상당 부분은 미래 세대의 희생 토대 위에 있다. 삼촌들이 높은 임금을 받고 오랫동안 호의호식하는 동안 청년들의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반면 기성 정치인들이 빚내서 인심 쓰는 돈들은 모두 청년들이 갚아야 한다. 미래 세대는 정작 본인이 은퇴할 시점이 되면 국민연금마저 고갈되니 사회에서 혜택은 못 받으면서 기성세대의 빚은 떠안아야 하는 불행한 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근자에 청년들이 주식·부동산·코인 등에 마구 뛰어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취업은 안 되고, 집값은 폭등하고, 미래는 불안하고, 부의 사다리는 끊겼다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빚내서 투기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세대 간 양극화가 청년들 영혼마저 병들게 하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하면 사회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소비 감소와 성장 둔화를 초래한다. 미국 클린턴 정부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는 그의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양극화로 중산층이 몰락하면 소비가 정체되고, 하위 계층들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경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경우 엄청난 가계 부채와 인구 절벽까지 가세하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양극화가 갖는 정치적 폭발력이다. 양극화로 무너진 나라들을 보면, 정치집단이 국민을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대립 구도를 만들면서 적의와 반감을 선동해 지지를 얻으려 한다. 마치 자기들만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화려한 비전을 제시하고, 포퓰리즘 정책들을 남발한다. 돈을 뿌린다든지, 빚을 탕감해준다든지, 혹은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고 하면 ‘없는 사람’은 열광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만큼 재정은 파탄 나고, 경제는 엉망이 되면서 국가 부도로 연결되었다.
최근 우리 정치권도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거 때면 돈 나눠준다는 공약이 나오고, 국회에서는 빚 탕감법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재산세·종부세 폭등에 이어 국민 조세 부담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도 험난한 미래를 피할 수 없다.
양극화는 100% 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해법도 당연히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외부 위기로 인해 초래되는 양극화는 어쩔 수 없지만 정책의 잘못으로 초래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집값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잡고, ‘기취업자 권한만 강화하고, 신규 일자리는 줄이는’ 소주성 정책이나 ‘기업을 해외로 내보내는’ 반기업 정책들은 빨리 전환해야 한다. ‘지는 산업’의 근로자들이 ‘뜨는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노동의 유연성도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가진 자’를 적대시해서 양극화를 해소할 수는 없다. 전 세계가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이재용 부회장을 감방에 가두고 있는 모습은 조선시대 이야기 같다. 러시아 민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하느님이 도저히 소를 살 수 없는 가난한 농부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옆집 소를 죽여주세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양극화 처방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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