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erson

'통속'의 철학 대가, 도올 김용옥 "나는 독설가 아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Marine Kim 2016. 9. 24. 12:24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통속'의 철학 대가, 도올 김용옥 "나는 독설가 아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9.24 07:00 | 수정 : 2016.09.24 10:04
    30년 간 ‘대중 언어’로 철학 가르친, 실천 철학자 김용옥
    철학은 광장에서 떠드는 것, 지식의 발전은 개방성에서 나와
    선대 ‘상왕정치' 종식시킨 중국의 시진핑처럼, 2017년 한국 대선은 게임의 룰이 바뀐다

    “나는 랄프 왈도 에머슨이 “역사란 알고 보면 인간의 전기들일 뿐이다"라고 한 말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오늘날 중국을 바라보는 가장 긴요한 핵은 실로 매우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시진핑이라는 인간, 그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이 책은 시진핑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 삶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도올, 시진핑을 말한다'에서

    한신대 석좌 교수 도올 김용옥. 그는 1999년 EBS 노자강의를 시작으로 KBS, MBC, SBS에서 행한 200여 회의 고전강의로 인문학의 대중소통시대를 열었다./사진=주완중 기자
    한신대 석좌 교수 도올 김용옥. 그는 1999년 EBS 노자강의를 시작으로 KBS, MBC, SBS에서 행한 200여 회의 고전강의로 인문학의 대중소통시대를 열었다./사진=주완중 기자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그의 스피드는 위력적으로 빨랐다. “오늘 저녁에 오세요! 안된다고? 그럼 내일!” 그는 순식간에 다른 스케줄을 재조정 했다. “단, 내가 하는 말을 왜곡시키지만 마세요!” 수화기를 타고 넘어 오는 기운은 호통에 가까워 고막이 감전될 지경이었다.

    상쾌한 날벼락…, 김용옥다웠다.

    철학자 김용옥을 만난다고 하니, 주변에서 호기심에 거드는 사람이 많았다. 올 봄에 jtbc에서 방영한 인문 강의 프로그램 ‘차이나는 도올’의 대중적인 인기가 그만큼 뜨거웠기 때문이다.

    9월 초에 나온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는 ‘차이나는 도올'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글로벌 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 문명을 해부한 철학자 김용옥의 야심작이다.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도올의 중국 일기'가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대륙의 생생한 현장 기록이라면, 이번 책은 시진핑이라는 한 인물의 서사에 중국의 유교 철학과 현대사를 드라마틱하게 중첩시켰다.

    그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부처님이 손오공이 놀고 있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총체적으로 조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소망은 시진핑 본인이 이 책의 내용을 개인적으로 한번 숙독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그런 희망은 절망일 뿐이다. 한국어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중국인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도저에 넘치는 자신감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전문가로서의 전지적 서술은 이 책을 읽도록 추동하는 기이한 동력이 된다. 김용옥은 ‘무명 정치인에 불과했던 시진핑이 어떻게 14억 인구를 대표해서 권력의 최전방에 섰는가?’라는 물음표를 쥐고 중국 대륙과 역사를 종횡으로 가로지른다.

    가차 없는 통속과 지적 기개를 동시에 쥐고 달리는 그의 기습적 서사는 가령 이런 식이다. ‘상왕정치의 악패를 근절시키기 위해 후진타오는 발가벗은 몸으로 의기 논개가 왜적장을 휘말아 남강에 투신하였듯이, 강택민을 휘말아 같이 떨어졌던 것이다.’

    김용옥을 만났다. 추석을 며칠 앞 둔 저녁. 동숭동에 있는 그의 집필실은 도심 한가운데 생경하게 자리한 고적한 2층 주택이었다. 달빛이 풍덩하게 고일 정도로 한가로운 마당, 붉은 외벽 한 켠에 정돈된 농기구, 무성한 채소밭, 놓아 키우는 닭들조차 제 주인을 닮아 자유롭고 고집 있어 보였다.

    도올 김용옥. 마당에 닭을 키우며 자연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사진=주완중 기자
    도올 김용옥. 마당에 닭을 키우며 자연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사진=주완중 기자
    -닭들이 참 색이 곱고 행동이 꼿꼿합니다.

    “닭은 자연 순환의 모든 자연스러운 정보를 내게 주고 있어요. 개는 안 키워요. 개는 사람 말을 알아 듣고 흉내를 내기 때문에 자연 관찰이 안 돼. 닭은 자기 고집을 갖고 살아요. 닭 세상을 들여다보는 거나 사람 세상을 들여다보는 거나 비슷해요(웃음).

    다만 사이클이 빨라서 인간의 한 달이 닭의 하루예요. 불가사의하고 특이한 동물이야. 빠른 출산과 출생, 계속 자라는 병아리를 관찰하다보면 저마다 다르고 그 안에 인간 세상의 희노애락이 다 있어요. 자식 키우는 방식, 그 자식이 자라 효도하는 걸 보면서 삶의 힌트를 얻어요. 그것도 10년 하다 보니 예전만큼 충격적이진 않더라고(웃음).”

    -살아있는 생명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경이가 남다르신 듯 합니다(웃음).

    “끊임없는 경이감을 느끼며 사는 것, 그게 바로 철학의 출발이예요. 희랍어로 타우마제인(taumazein), 놀람과 경탄이지요. 나는 여러 분야를 돌아다니면서 지식에 대한 경이를 추구하고 살았어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럴 거예요.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는 교수나 박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거예요. 그 목적을 이루고 정년퇴직하면 공부를 안 해. 그런데 실제 공부는 그 목적이 끝나야 더 많이 할 수가 있어요. 찬란한 저작은 대부분 65~75세에 가장 많이 나온다고.”

    -올 봄 jtbc에서 방영한 인문 강의 프로그램 ’차이나는 도올’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매 회 시진핑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 현대사가 무협 드라마처럼 흥미로웠어요.

    “나한테는 상식인데 그게 시청자들한테는 충격이었던 모양이예요(웃음). 이제까지 우리는 중국을 타자화 시키지 않았었지요. 한국하고 비슷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정치사를 뼈대로 중국 현대사의 인물과 사건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해독해줬어요. 그게 신기했던 모양이야. 얼마 전에 중국 상대로 비지니스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내 강의를 듣고 시진핑이 어떻게 주석이 됐는지를 읊어주니까 중국인들이 놀라서 다시 보더랍니다.”

    9월 초에 출간된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학문이 논리나 주장이 아니라, 한 편의 서사와 풍경으로 전환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국 철학이 기본이지만, 언어학, 문학, 연극, 무도, 한의학에 폭넓게 걸쳐진 지식이 제각각 융합하여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9월 초에 출간된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학문이 논리나 주장이 아니라, 한 편의 서사와 풍경으로 전환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국 철학이 기본이지만, 언어학, 문학, 연극, 무도, 한의학에 폭넓게 걸쳐진 지식이 제각각 융합하여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책은 방송보다 지적으로 좀 더 심미안이 느껴집니다. 시진핑이의 인생이 중국 대철학자의 ‘송가'와 맞물려 유장하게 펼쳐지더군요.

    “왕꾸어웨이라는 중국의 대학자가 있어요. 쇼펜 하우어, 칸트 등 서양의 철학과 미학을 중국 철학의 범주로 융합해낸 경지가 아주 높은 사상가지요. 지금도 중국 학계에서 신적인 존재로 숭상을 받는, 한마디로 ‘못말리는 천재'였어요. 왕꾸어웨이를 내가 참 좋아해요. 중국 문명을 이해하려면 그 나라에 수많은 왕꾸어웨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하죠.

    그는 중국 문명을 이끈 그 대석학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왕꾸어웨이의 동료와 제자들에게 배웠다고 했다.

    “그가 ‘인간사화' 1권에서 ‘인생 삼중 경계’라는 걸 내세웠는데, 나는 그 테마로 시진핑이라는 인간을 깊게 해석했어요. 시진핑이 왕꾸어웨이가 말한 ‘인생 삼중 경계’가 바로 내 인생이다'라고 단언한 적은 없지만 인용한 적은 있어요. 나는 그걸 아주 중요하게 봤어요.

    시진핑은 중국의 혁명 명문 가문 태생이지만, 아버지 시종쉰의 인생 내력 부터 훑어보면 시진핑의 마음은 애초에 대권을 향한 적이 없어요. 오직 철학적 깊이로 정치가의 길에 이르렀죠. 시진핑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려는 게 아니예요. 나는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인생 삼중 경계'의 마지막 경지를 절절이 가슴 속에 새기길 바라지요.”

    -한국의 정치가들이 왕꾸어웨이가 말한 마지막 경지, 즉 ‘인위적 갈구'가 아니라 ‘순수한 정진'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요. ‘대통령병'에 걸려 세력을 연합하고 서로를 헐뜯고, 자기 직위에 연연할 때가 아니라는 거지요. 중국 정치체제를 살펴보면 철저한 ‘적우제'로 실력과 업적을 쌓아야 올라갈 수 있어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다른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요. 반면 우리 정치는 어떤가요? 언론과 국민 앞에서 튀려고 피상적으로 유별난 언행을 일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은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맞을 때가 됐어요. 시진핑도 모택동이나 등소평의 ‘상왕정치' 패러다임이 종료되고 나온 새로운 인물이예요. 모택동부터 후진타오까지가 하나의 패러다임이고, 시진핑은 그걸 벗어난 의외의 인물이죠.”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기중심적인 이타성’이라는 이상한 조어가 떠올랐다. 형식은 불같지만, 그 바탕의 의도와 내용은 신중하고 너그러웠다./사진=주완중 기자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기중심적인 이타성’이라는 이상한 조어가 떠올랐다. 형식은 불같지만, 그 바탕의 의도와 내용은 신중하고 너그러웠다./사진=주완중 기자
    -대한민국 정치사도 같은 패러다임의 반복으로 보십니까?

    “나는 그렇게 봐요. 해방 후 정치사를 보면 이승만, 박정희 패러다임의 반복 아니면 반동에서 나왔어요. 좋으나 싫으나 윗세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대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하나의 패러다임 속에서 구태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지요.

    나는 시진핑이 나온 중국의 문화를 생각하면서, 2017년의 대선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커요. 이전 세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나오면서 게임의 룰이 달라질 거예요. 원희룡, 남경필, 유승민, 안희정, 반기문… 자기 생각이 있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보는 거죠.”

    -이전 세대와의 단절때문에 오히려 인물에 내재한 힘이 적다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아요. 시진핑도 등장 전까지는 거의 아무도 모르는 인물이었어요. 나는 2017년 한국 대선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기운을 타고난 대선이 펼쳐질 거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당이나 계파에 상관 없이 그 사람의 정치 철학을 눈여겨 보고, 민족의 유익을 위한 선택을 해야해요.”

    -서양의 민주주의 전통과 동양의 민본주의 전통을 대비해서 보여주면서, 지금의 서구식 선거 민주주의가 리스키하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선거전, 브렉시트 등을 실험의 혼돈 사례로 들면서요.

    “나는 미국식 민주주의는 월남전 이후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봐요. 의도했던 아니던 지금의 미국은 버블경제의 주범이자 금융사기국의 혐의를 벗을 수 없어요. 독일을 보세요.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근간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블을 주도하지 않고 지금은 제조업도 탄탄해요.

    중요한 건 동양에서 민본주의는 기나긴 역사를 통해 하나의 윤리관으로 심어져왔다는 거예요. 제도적 장치만 잘 만들면 동양이 서구보다 더 진화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도 있다는 거죠. 윤리학을 토대로 한 민본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까.”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 학계에 김용옥이라는 별똥별이 떨어졌다./사진=주완중 기자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 학계에 김용옥이라는 별똥별이 떨어졌다./사진=주완중 기자
    -앞으로의 미국은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 대선에 대한 생각은... 힐러리가 되더라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아시아 정책을 다시 수정해야 해요. 트럼프가 된다면..., 전 세계가 미국 없이 살 궁리를 해야할 테고. 어찌되었건 미국의 우월성은 1세기는 지속될 거예요. 그것이 그리 쉽게 흔들리지는 않아요. 하버드, MIT를 북경대와 청화대가 능가하는 것은 1세기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지금 내가 바라는 건 동양이 EU만큼 과격하게는 아니지만, 함께 연합해서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싱가폴 등이 힘을 합치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어요.”

    가을볕은 생각보다 짧았고 벌써 창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먼저 하기로 했다. 한복을 곱게 입은 김용옥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닭에게 모이를 주었다. 흰 옷과 붉은 닭 벼슬 색깔이 어우려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채소밭에는 고추며 상추며 깻잎이 풍성하게 웃자라 있었다.

    김용옥은 자연주의자로 자연을 관찰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닭장과 채소밭 사이에 있는 작은 건물은 그가 공개한 적 없다는 개인 서재가 있었다. 2층 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올라가니 그야말로 책으로 뒤덮힌 방이 나왔다. 한 눈에 봐도 2~3천 권이 넘었다. 오로지 책 냄새만 가득한 지식의 수장고에서, 그는 매번 팩트를 낚고 사유를 버무려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고 했다.

    불투명한 과거의 세상에서 건져 올린 사건, 지명, 인물이 제 각각 선명한 자기 이야기를 갖고 현재의 시간에 닿을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보면 시진핑이라는 한 사람 안에 중국의 역사와 학문이 크로스오버가 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작은 그림 안에 상상도 못한 큰 그림이 계속 달려나오는 기분이랄까요.

    “작은 걸 자유롭게 이야기하려면 전체를 알아야 하죠(웃음). 모택동, 강택민을 이야기해도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내부적으로 평가를 끝냈기 때문에, 한 달음에 적확한 기술을 할 수 있는 거지요. 논문 글쓰기에서 중요한 게 ‘고유명사'에요. 그런데 대부분 고유명사가 풀어지지 않고 있어요.

    나는 고유명사를 모르고 쓴 적이 없어요. 역사를 쓸 때도 평양성, 비사성을 모르고 쓰면 그건 모르는 채 있는 거예요. 나는 대약진운동이든, 비사성이든, 공자든 엄청난 조사와 답사를 통해 이미 전문 지식을 갖춘 뒤에, 순간 기술을 해요. TV에 나와서 칠판에 쓸 때도 이미 머릿속에 묘사가 다 끝나 있다고. 자신감은 전문성에서 나와요. 나는 하다못해 닭을 키워도 해부학, 생리학 공부를 다 한다고.”

    -그 모든 지식을 습득하려면 시간이 보통 걸리는 게 아닐텐데요.

    “보통 사람이 술 먹고 노는 시간에 나는 책을 봐요(웃음). 제자들과 닭의 생리에 대해 하룻밤 진지하게 얘기하기도 해요(웃음). 중요한 건 프로페셔널리즘이예요. 평생을 그런 방식으로 언어 생활을 했고, 그게 후학들에게도 본이 됐으면 해요.”

    그는 조국땅에서 모국어로 학문을 하는 것이 철학자의 길이라고 했다./사진=주완중 기자
    그는 조국땅에서 모국어로 학문을 하는 것이 철학자의 길이라고 했다./사진=주완중 기자
    -언어와 문장, 팩트를 아우르는 저술가로서의 매력은 대중 강연에서 단련된 1인칭 스토리텔러의 힘이겠지요? 문장과 챕터를 지나면서 드는 기분이 절벽을 오르다가 바다를 헤엄치고, 강에서 낚시 하다 별안간 벌판에서 영웅호투를 대면하는 듯 했어요.

    “이유가 있어요. 나는 10대 시절부터 일기도 영어로 쓰고, 그야말로 영어에 미쳐서 살았어요. 하버드 박사 논문도 한 달 안에 끝낼 만큼 영어가 입에 붙었지요. 미국 지식인들이 쓰는 영어의 98%는 마스터 했지만, 2%는 끝까지 안되더라고. 그 부족한 2%를 극복하는 데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한국말로 위대한 저술가가 되자, 한국말로 승부를 보자’ 결심하고 오로지 한국말 속에서 살았지요.”

    -철학의 도구로 타국의 언어에 불편함을 느낀 건가요?

    “가령 내가 러시아어를 하면 푸시킨 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학은 논리가 다가 아니기 때문에 조국의 흙냄새를 밟으며 하는 게 맞지요. 미국에서 귀국에서 1986년에 낸 책의 제목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란 무엇인가' 등이었는데, 그게 학계에 꽤나 충격을 줬던가 봐요. 그때까지 학계에는 구어로 된 한국말이 통용되지 않았거든.

    고전에 대한 소양을 갖추면서 쉬운 한국말을 구사하려면, 폼에 얽매이면 안돼요. 나는 지금도 ‘카톡' 언어를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언어적 실험이 학문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네요.

    “한국어에 관한 한 양보한 적이 없어요. ‘문사철’,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총체적으로 논할 때, 구어와 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김용옥만의 유니크한 스타일이 된 거죠. 나 자신, 한국 학문의 역사에 보이지 않는 언어 혁명을 이뤘다, 그렇게 자평하고 있어요. 그간 80권이 넘는 책을 다 그렇게 완성했어요. 어쩌면 해방감과 구속감을 동시에 준 셈이죠(웃음).”

    필라소피(철학)보다 필롤로지(언어학)가 앞서야 한다는 것을 그는 동경대에서 배웠다. 문법, 음성학, 기호학 등 어학적인 탐구를 거쳐 그는 철학을 철저히 ‘대중 언어'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거침없는 독설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쓴소리를 내뱉는 건 의도적인 건가요?

    “독설? 난 독설가 아니예요. 정직한 거지(웃음). 편하게 말하는 거지. 나는 금기가 없어요.”

    -금기가 없다는 것도 타고난 기질이십니까?

    “금기 없이 말하려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타고난 실력이 있어야 해요. 실력이 없으면 공격을 받고 무너지죠. 지식이 없으면 사망이예요. 그 과정에서 내가 한 말이 사회담론이 되서 살아남으면 나는 행복했어요.

    철학이 뭡니까? 아고라(광장)에서 떠드는 거예요. 떠들면 반론이 오고 그것에 또 대답을 하고, 변증법이 되는 거에요. 지식의 발전은 개방성에서 와요. 나는 내 솔직함이 역사의 진보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설사 욕먹고 천박해보이더라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드러나 보이니까요. 권력을 지닌 사람은 무표정한 채로 커튼 뒤에 숨어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들면 안돼요. 울고 웃고 소통해야죠.”

    -가슴앓이를 하거나 눈치를 본 적은 없습니까?

    “눈치 본 적 없어요. 당한 것만큼 토해내고 화해하고 보냅니다(웃음). 화가 나면 한 밤중에도 찾아가고 그때그때 해결을 해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통속'의 철학 대가, 도올 김용옥 "나는 독설가 아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공자와 증자, 장학량과 장개석, 시진핑과 뿨시라이 등 수많은 대화와 영웅 호투가 드라마틱하지만,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 장면은 시진핑이 좋아했던 대석학 왕꾸어웨이가 이화원 곤명호에서 몸을 던지며 자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아...(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왕꾸어웨이는 정말 큰 학자였어요. 그 시대 서양 철학과 갑골문을 연구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은 지식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예요. 그가 오십에 홀연히 죽는데, 그 모습이 너무 초연하고 담담하여…”

    김용옥은 왕꾸어웨에게 깊이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그 비통함으로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훔쳤다. 지식이 경계 없이 훌훌 드나들듯 감정의 드나듦도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왕꾸어웨이는 1927년 6월 어느날, 대학원생들의 시험지를 꼼꼼하게 채점하고 동료 교수에게 2위안을 빌려 인력거를 타고 이화원에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운 후 곤명호 호수에 몸을 던졌다. 웃옷 주머니에서 나온 유서에는 ‘50년을 살면서 죽는 것 하나 못해 봤다. 한심한 세태를 겪으며 나의 의로움이 더이상 욕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자식들에 대한 당부를 담담히 적었다.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십니까?

    “그는 영원한 나의 친구지요.”

    -인문학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봅니까?

    “인문학은 결국 신 없이 산 사람의 경지예요. 죽은 후에 천당 간다는 생각을 안하지요. 왕꾸어웨이의 유서를 보면 거짓말도 허세도 없어요. 자식들에게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 설명하고, 남은 너희들은 열심히 살면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해요. 죽음이 형이상학적 세계가 아닌 거죠.

    그 장면을 보고 내 아내가 “이 사람 미친놈이다" 그래요. 아마 내가 따라갈까봐 겁이 난 모양이야(웃음). 아! 내 처는 중국어를 공부한 언어 학자예요.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줘요.”

    그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지만, 외국사이트에는 소개글에 ‘몽크(스님)’로 나와있더라며 웃었다. “나는 애들을 잘 키웠어요. 큰 딸은 프린스턴에서 천체물리학 박사를, 존스홉킨스에서 포스트닥을 하더니 재미없다고 이젠 희랍미술을 연구해요. 천문, 물리, 인문이 바탕이 된 어마무시한 글을 써내고 있어요. 내가 그걸 보고 딸한테 크게 배웁니다(웃음).”



    80세에 학문의 전성기를 이루기 위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도올. 좋아하는 커피도 줄였다./사진=주완중 기자
    80세에 학문의 전성기를 이루기 위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도올. 좋아하는 커피도 줄였다./사진=주완중 기자
    -고려대 철학과 교수를 제외하고도,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교수, 용인대 무도학과 교수, 중앙대 의대 한의학 담당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이유는 무엇이지요?

    “소설가 정한숙 선생이 그랬지요. “산문이 골짜기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라면 시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를 뛰어다니는 것과 같다.” 나는 시를 쓰듯 학문을 했어요. 봉우리와 봉우리를 뛰어다녔지(웃음).”

    -동숭동에서 한의사로 활동할 때는 어땠습니까?

    “4년 동안 했는데 환자가 너무 많았어요. 너무 많아서 문을 닫았지(웃음).”

    -한의사로서 환자를 어떻게 진찰했습니까?

    “나는 “아무 문제 없으니 돌아가세요"라고 했어요. 불안한 요소는 내가 간직하고 고쳤어요. 내 한계를 벗어나면 양의에게 가보라고 했고.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안주니까 몰려들더라고. 많은 병원이 환자를 협박해요. 나쁘다, 위험하다라고 해서 불안하게 만들지.

    얼마 전에 내 아내도 어깨뼈가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하라고 압박을 하더라고. 내가 “내 말 들어라"고 설득해서 수술 전날 도망쳐 나왔어요. 지금 100% 완쾌됐죠.”

    -부부 사이가 좋은 비결이 뭔가요?

    “남녀 문제는 간단해요. 남자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면 돼요(웃음).”

    -스스로를 우주의 보물, ‘우주보'이라 칭하셨는데…, 자부심을 자주 노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웃으며) 양주동 선생(국문학 박사)이 자기를 일컬어 ‘국보’라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우주보'다 그랬죠. 하버드에서 학위 받고 귀국하자마자 떠들었어요(웃음). 고작 34살의 나이에, 나는 70~80대 처럼 행동했어요. 그런 행동을 고맙게도 한국 사회가 받아줬죠.”

    -의도적인 만용이었나요?

    “당시에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싶었어요. 비판 세력이 꽤 많았거든. 대만대, 동경대,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했으니 그 학문적 배경이 충격적이기도 했고, 내 방법론이 위험하다고 교수들도 불안에 떨었어요. 나는 공자도 20세기 우리말과 똑같아야 한다고, 인간의 언어는 소통되고 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공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교의 알파와 오메가가 충(忠)과 효(孝)가 아니라 서(恕)가 맞습니까? ‘기소불욕 물시어인'... 공자가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였다니... 그것이 예수의 말씀인 ‘네가 대접받고 싶은 데로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라'와 차이가 크다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후자의 능동적 사랑이 서구의 자기중심적 침략사로 오역되었다고 보셨지요?

    “나는 부정태가 진정한 황금율이라고 보는 거예요. 내가 좋아서 한 사랑이 상대에겐 폭력일 수도 있으니까요. 너무 긍정태로 세상을 보면 사랑이 지배가 될 수가 있어요.”

    그는 9월 24일 박원순 시장과의 대담집 ‘국가를 말하다'를 출간했다./사진 주완중 기자
    그는 9월 24일 박원순 시장과의 대담집 ‘국가를 말하다'를 출간했다./사진 주완중 기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를 유교적 강령의 최고 우선 순위로 두는 것은 결국 개별 인간의 윤리적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겠지요?

    “그렇죠. 윤리학에서 최소한 부정형을 지키자, 이것 만큼은 하지 말자가 최선인 거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 부정태의 삶의 원칙이 중국인들의 정신 세계에 깔려있는데도, 현재의 중국은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승부수는 반부패 운동인데, 그게 인민들의 가치관을 실제적으로 변화시켰느냐? 부패 척결을 위해 30만 명을 정리했어도, 중국 14억 인구가 도덕적인 반성을 했다고는 볼 수 없어요. 사회주의 교육을 대신해서 부패가 생산되지 않는 철학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는 게 중요하죠.

    나 같은 사상가가 나와야 돼요(웃음). 경제 특구처럼 사상 특구를 만들어서 중국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시진핑에게 조언을 할 수 있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부패 세력이 언제 시진핑을 공격할 지 모릅니다. 시진핑이 다음 후계자를 잘 선택해서 20년 안정적으로 간다면 인류사에 새로운 운명이 열릴 거라고 봅니다.”

    -너무 중국 중심의 인식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웃으며)우리는 초이스가 없어요. 약소국의 운명이죠. 우리는 단군 이래 최초로 지난 10년 간 중국을 깔보며 지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중국은 어마어마하게 성장을 했습니다. 내가 70년도에 하버드대학에 있을 때만 해도 중국 유학생은 아프리카 피그미국에서 온 사람들 취급을 받았어요.

    지금은 어때요. 역사와 전통이 지닌 힘과 회복력은 어마어마해서 지금은 중국이 많은 면에서 앞서 있어요. 최근 몇 년 간 중국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한번은 조선족을 상대로 스피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내가 그랬어요. 20세기 미국의 유대인과 같은 존재가 돼라고.

    헤브라이즘의 깊이가 미국 문명을 구원했어요. 바이링구얼(bilingual 이중 언어)이 가능한 유대인이 은행, 유통, 엔터, 교육을 장악했지요. 바이링구얼인 조선족도 중국 내에서 그렇게 중국 문명의 맥을 짚어서 독자적 힘을 키울 수 있어요.

    한국인들도 앞으로 중국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가 더 많아질 거예요. 중국 파트너를 상대하려면, 그 정글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깊이 있게 그 문명을 이해해야 해요.”

    지식도 감정도 드나듦이 자유로운 도올의 삶./사진=주완중 기자
    지식도 감정도 드나듦이 자유로운 도올의 삶./사진=주완중 기자
    -68세인데 인생 절정기를 언제로 보고 있습니까?

    “내 인생은 80이 넘어야 진정한 절정기로 진입할 거예요. 학문적으로 보면 머리맡에 주춧돌은 놓았고 서서히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정도예요. 80이 되면 집이 지어질 것 같애(웃음). 그러려면 건강을 지켜야 하는데 요즘엔 눈이 침침해져서 걱정이예요.

    칸트는 평생을 기능적으로 살며 건강을 유지했어요. 자기 사상의 체계가 60은 지나야 완성될 걸 알았지. 감정 기복 심해질까 우려해서 결혼도 연애도 안했어요. ‘에밀'을 읽다가 산보 시간을 놓친 것 빼고는 모든 게 일정했지요.

    지금의 나를 보면 사르트르, 러셀, 데리다 등 세계적인 철학의 대가들보다 생애 주기로 20년 뒤졌어요. 학문의 초반 스타트도 환경도 달라서 경쟁 구도에서 불리하게 뛰었어요. 억울하지. 그래서 난 그들보다 20년은 더 살아야 돼. 건강을 위해 절대 스트레스 받으면 안된다고(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가을 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었다. 달빛에 비친 도올의 몸은 작지만 또렷해 보였다. 30년이 넘도록, 모국어로 어마어마한 말과 글을 쏟아낸 야심만만한 철학자.

    ‘독설이 아닌 정직인 채로' 그와 수많은 말을 나누었는데, 머릿속엔 한마디 말만 맴을 돌았다.
    “왕꾸어웨이는 나의 친구예요. 영원한 내 친구..."
    문득 금방 낳은 달걀 몇 개가 손바닥에 닿아 따뜻하게 느껴졌다.

    중국의 문화적 가치 쇠락을 탄식하며 1927년 곤명호에 몸을 던졌던 중국의 대석학 왕꾸어웨이. 그는 ‘인생 삼중 경계'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3가지 경지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 1경지는 ‘망진천애', 환란의 세월이 닥쳐도 고매한 이상을 품고 위를 향해 고독하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 제 2경지는 ‘의대점관', 의복이 헐렁해질 정도로 신체적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제 3경지는 ‘맥연회수', “문득 머리를 돌려보니 그가 거기 있었다"는 본래의 해석처럼, 궁극의 성취는 나의 인위적인 갈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정진 속에 스스로 문득 찾아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