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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최순실 기억을 웃으며 떠올리려면

Marine Kim 2016. 11. 9. 14:35

경제초점] 훗날, 최순실 기억을 웃으며 떠올리려면

  •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입력 : 2016.11.09 03:07

수치스러운 최순실 사태, 방향성 없는 분노 표출에 그칠지
무언가를 배워 축복으로 바꿀지 온전히 우리 하기에 달려
선진국 도약에 기여한 사건되도록 한국 경제에 갖는 의미 추출해야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2일 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공청회에 전문가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정부와 시장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제3 영역을 촉진하는 사회적경제법안에 관한 공청회였고, 우리 경제의 방향성에 관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각이 훌쩍 넘어도 외부 전문가들만 자리를 지킬 뿐, 정작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나타나지 않았다. 위원장은 국가의 주요 사태 때문에 기재위 위원들의 출석이 늦어진다고 거듭 사과했다. 겨우 정족수를 채워 시작한 후에도 몇 명이 추가로 잠깐 들렀을 뿐, 법안 내용을 심도 있게 논의한 의원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아무리 최순실 사태가 권력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해도 본업인 입법활동을 소홀히 해도 된다고 선뜻 용인하기 어려웠다.

요즘처럼 분노한 시위대가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의사 표현이며 정치권은 이를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을 유지하고 개선할 책임을 진 공복(公僕)들마저 분노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국민의 일상과 미래가 어그러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본연의 직무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말 호헌과 개헌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극도에 달했을 때에도 한국 경제는 매년 기록적인 고도성장을 이뤘다.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악영향을 최대한 차단하고 일상 활동을 충실히 하는 것 역시 사회의 중요한 능력이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최순실씨가 8일 새벽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버스에 탑승하기 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물며 지금은 더하다. 4차 산업혁명이 목전에 왔다는 것은 각국의 준비 경쟁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기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도들이 활발히 일어나고 그에 부수되는 많은 실패의 충격을 흡수하도록 경제 환경을 정비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더구나 우리는 현재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미증유의 과제 한가운데에 있다.

두 번째는 지금의 경험이 한국 경제에 갖는 의미를 제대로 추출하고 미래를 그려내야 한다. "국민이 분노했으니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에게서는 각자의 잇속만 보일 뿐 반성과 비전은 실종됐다. 최순실이라는 개인의 특성을 지우고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분노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그 중심엔 선진 시스템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권력에 기생한 개인과 셀프 충성으로 이를 조장한 통치자의 측근들, 재벌 대상의 강제 모금과 그 바탕의 정경유착 등 저급 생태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과거 정권부터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들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과 자원 투입 중심의 고속성장이 과거의 정치경제 환경이었다면, 지금은 확고한 법질서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된다는 믿음 속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극대화돼야 경쟁력을 가지는 생태계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 드러난 적폐들은 비록 그것이 오래 용인됐다 하더라도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한다. 만약 탄핵이 진행된다면 통치자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을 냉정히 따져보게 될 것이나, 그것만이 핵심은 아니다. 청와대의 역할 재편, 개헌 등 큰 폭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규명하고 단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4차산업혁명의 준비인 것이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국운을 좌우할 큰 위기들에 잘 대응해왔다. 권위주의 정권이 경제·사회를 억압하게 된 1980년대에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1990년대 경제 부실화와 외환위기는 구조 개혁으로 돌파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 이후 경로를 어떻게 바꿨느냐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를 수치스럽게 했다. 그러나 그 수치를 한국 경제의 축복으로 만들 것인지 방향성 없는 분노 표출에 그칠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 하기에 달렸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가장 기여한 사건으로 최순실 사태가 기억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