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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 보수를 벼랑끝으로 내몰건가

Marine Kim 2016. 11. 9. 14:33

박두식 칼럼] 이정현 대표, 보수를 벼랑끝으로 내몰건가

  • 입력 : 2016.11.09 03:12

최순실 사태 이후그 많던 친박 실세들이 뒤로 숨은 사이 李대표가 친박 방어막 구실
이러다가 보수정당의 몰락 초래할 수도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요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보면 '눈물겹다'는 말부터 떠오른다. 그는 몇 남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 무사다. 박 대통령의 하야(下野)·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세상을 뒤덮어도 그는 꿋꿋이 대통령 곁을 지키고 있다.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대표 사퇴' 압박에도 꿈쩍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 '정치인 이정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지역구는 전남 순천이다. 그는 1988년 이후 현재의 여당 당적(黨籍)으로 호남 지역구에서 당선된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이 대표는 그곳에서 두 번이나 승리를 거뒀다. 지난주에 나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도는 5%였다. 역대 최저치다. 광주광역시와 전남·북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특정 지역에서 대통령 지지도가 0%인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이런 호남에서 국회의원에 또 도전할 가능성이 큰 이 대표가 박 대통령 곁을 지키는 것은 거의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정치인에게 자신이 출마할 지역구의 여론은 어떻게든 따를 수밖에 없는 절대적 지침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의 전위부대를 자처해 온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 사드 미사일 배치를 비롯한 대통령의 결정과 자신들의 지역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반기(反旗)를 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대표는 이런 정치적 통념을 거스르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왼쪽 두 번째)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 간담회에서 정병국 의원의 발언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을 따르는 정치 계파인 이른바 '친박(親朴)'의 서열로만 치면 이 대표보다 앞줄에 서서 호위 무사를 자처해야 할 사람은 쌔고 쌨다. 기자도 말단 당료(黨僚)에서 시작해 정치적 사다리의 한 칸 한 칸을 힘들게 올라온 이 대표를 오래 알고 지냈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눈에 든 것은 2004년 총선을 전후해서다. 12년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줄곧 박 대통령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대표를 친박 내에서 '실세'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이 정권 출범 후 청와대 정무·홍보 수석을 역임했어도 권력 핵심에서 그를 보는 시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14년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문건'을 보면 청와대 참모들이 이 대표를 '근본 없는 놈'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친박 실세 대부분이 박 대통령을 정치적 위기로 내몬 '최순실 사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들은 최순실씨와 관련한 의혹의 한 대목에서라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면 발끈해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진성 친박'들이 뒤로 숨어 있는 사이 이 대표만이 맨 앞줄에서 총알받이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 박 대통령과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새누리당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던 그를 발탁해 청와대 수석 두 번,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이가 바로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의 의리를 앞세우는 것은 특정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팬클럽 내지는 뒷골목 주먹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논리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129명이 속한 공당(公黨)이다. 국회 1당이면서 집권당이다. 이런 정당을 이끄는 인물이 사적 인연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은 공당의 대표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대해 '선(先) 사태 수습, 후(後) 거취 결정'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면서 '시간을 좀 달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대통령이 두 번이나 대(對)국민 사과를 하고, '2선 후퇴'의 뜻을 밝혔어도 대다수 국민이 선뜻 마음을 열지 않는 까닭은 청와대와 친박 세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이들의 어떤 말과 행동도 거부당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지고 청와대가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는 여당이라도 나서야 하지만 현재 당을 이끌고 있는 '친박 지도부'로는 불가능하다. 국민의 눈에 비친 친박은 국란(國亂)의 주범 또는 공범일 뿐이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을 찾았다. 궁금하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서였다. '대통령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라는 구호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성난 민심의 바다에서 새누리당은 침몰이 임박한 난파선처럼 느껴졌다. 이런 배 위에서 '함께 살고 함께 죽자'는 일부 친박의 주장은 몰염치하기 짝이 없다. 친박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권력을 나누며 함께 사는 길을 찾았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친박의 자멸적 행태는 이 나 라 보수 세력 전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친박으로 인해 보수 정당이 와해되고, 급기야 정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에서 보물 같은 존재다. 지역주의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痼疾)을 깨뜨리겠다고 나섰던 그가 '친박의 방어막'으로 정치를 마감하는 것은 비극이다. 이 대표가 더 큰 정치의 문(門)을 여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인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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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