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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惡名 마케팅’, 최순실은 안 통했다

Marine Kim 2016. 11. 9. 14:36

명품의 ‘惡名 마케팅’, 최순실은 안 통했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이들은 '블레임룩(Blame look)'이라는
조어까지 탄생시키며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냈다.
하지만 이 공식을 깬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비선실세' 최순실이다.

  • 입력 : 2016.11.08 17:38

[Issue: 최순실 브랜드, 분노와 흥행 사이]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이탈리아 브랜드 토즈(Tod’s)의 홍보팀 관계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펄쩍 뛰었다. 최순실이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든 가방이 ‘토즈’라는 말이 인터넷에 번지면서 한국 지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입국 사진 뜨고 포털 사이트 검색어로 쭉쭉 뜨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사진으로 보면 ‘d백’과 핸들은 비슷한데 밑부분 디자인은 달라요. 주세페 카발로 한국 지사장님한테 달려갔죠. 국내 입수되지 않는 제품도 다 보신 분이니까. 근데 지사장님도 고개를 저으시더라고요.”

지난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는 최순실과 검찰 출두하다 벗겨진 최순실의 프라다 신발 한 짝. /김지호 기자, 전기병 기자

가방뿐 아니다. 최순실이 입국할 때 입은 패딩, 검찰 출두하면서 온몸을 싸맨 모자, 가방, 신발, 심지어 양말까지 ‘네티즌 수사대’의 레이더망에 올랐다. 패딩은 몽클레르, 모자는 샤넬 혹은 헬렌 카민스키, 양말은 샤넬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분명한 건 신발 브랜드뿐이다. 최씨의 벗겨진 신발에 또렷이 프라다(Prada)라고 적혀 있었다.

“와~ 홍보의 덧없음을 느꼈잖아요. 도움이라뇨! 최순실 관련 검색어로 나오는 것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입니다. 완전 마이너스예요.” 프라다 홍보팀 관계자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최순실이 신었다 떨어뜨린 ‘블랙레더 슬립온 스니커즈’는 2년 전 출시된 제품으로 당시 72만원이었다. 현재 인터넷 중고 거래 시세도 65만원 안팎이다. 네티즌들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빗대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 같은 패러디물을 만들어냈다.


최순실 효과? 명품브랜드들이 운다


지금껏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포토 라인’에 섰던 이들은 ‘블레임 룩(Blame Look)’이란 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쏠쏠한 마케팅 효과를 일으켰다. 욕하면서도 보는 선정적인 잡지처럼 스캔들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차림새를 눈여겨보고 따라 했다. 명품 브랜드가 급성장한 데는 이러한 ‘악명’도 한몫했다. ‘상류층+정계 로비+초고가’,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이 상류층 취향을 경험하는 ‘지름길’ 역할을 했다.

1) 학력 위조 파문 등을 일으킨 신정아가 2007년 당시 수사관과 함께 서부지검으로 가는 모습. 그가 입은 재킷이 200만원대의 돌체 앤 가바나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매진’되기도 했다. 2) 로비스트 린다 김씨가 2000년 병원에 가려고 여동생의 부축을 받는 모습. 그가 쓴 에스까다 선글라스는 품절 사태를 빚었다. 3) 2002년 체육 복표 사업 등 각종 이권 개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 최규선이 입은 베르사체 슈트가 화제가 됐다. /조선일보 DB

“상류층 취향 경험”…
욕하면서도 따라 입는
효과 있었는데

최씨 이미지
너무 음울·불순…

그와 관련된
모든 것 거부감

1996년을 떠들썩하게 만든 린다 김이 대표적이다. 무기 로비스트 린다김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얼굴을 가렸던 선글라스가 ‘에스까다’ 제품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장엔 문의가 빗발쳤다. 재고가 동나고 업체에선 넘쳐나는 주문을 감당하느라 애를 먹었다. 2000년대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압구정 며느리룩’이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데는 1999년 ‘옷 로비’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정·재계 ‘사모님’들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가 의류를 청탁 대가로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페라가모 한국 지사장이 청문회에 불려가기도 했다. 그 덕에 페라가모는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박혔다. 매출이 두 배 이상 뛰고 3년 뒤 청담동에 대형 단독 매장(플래그십 스토어)을 열었다.

학력 위조 파문과 현직 장관과의 불륜 스캔들로 2007년을 달군 신정아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가 입고 나온 알렉산더 매퀸 티셔츠, 보테가 베네타 가방, 돌체 앤 가바나 재킷 등이 화제가 됐다. 신정아가 애정의 증표로 받았다는 프랑스 보석 브랜드 반 클리프 앤 아펠 역시 백화점 매출이 급상승했다. 명품 홍보 담당자들은 지금도 “업자들 사이에선 유명하지만 대중에겐 덜 알려졌던 브랜드들의 인지도를 확산하는데 혁혁한 공이 있었다”고 평한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은 ‘상위 1% 패션’이란 명칭이 붙으며 ‘초초고가’ 브랜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증한 사건이었다. 재벌가 3세인 조 전 부사장이 2014년 말 검찰 출두 당시 입은 검은색 코트가 1000만원이 넘는 로로피아나, 머플러 역시 400만원이 넘는 로로피아나 제품으로 추정되면서 네티즌의 손을 바쁘게 했다. 대한항공과 로로피아나 측은 서로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로로피아나는 그해 1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프라다, 토즈 매출 뚝… “잊어주세요!”

최순실이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에 입국한 모습. 네티즌들은 그가 입은 패딩 브랜드가 몽클레르, 가방은 토즈 제품이라고 추정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최순실은 다르다. 관심은 치솟았지만 실제 매출로 이어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난달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최순실 브랜드’로 거론된 프라다·토즈의 백화점 매출을 분석한 결과 두 백화점에서 모두 전년 대비 매출이 10% 넘게 줄었다. 샤넬도 일부 매장에선 전년 대비 매출이 두 자릿수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루이비통과 구찌가 전년 대비 30% 성장한 것을 보면 ‘불황 탓’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업계에서 15년 넘게 홍보·마케팅을 한 A씨는 “최씨가 국민 혈세를 챙겨 그 돈으로 명품을 샀을 거란 생각에 이가 부득부득 갈리지 않겠느냐”면서 “요즘 명품업계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영화 속 대사인 ‘넌(최순실)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 교수는 “해외에서도 ‘노토리어스 셀레브리티(notorious celebrity·악명 높은 유명인)’란 명칭으로 희대의 연쇄 살인마, 마약 갱단 등에 팬클럽이 생기는 현상도 있지만, 최순실 사건의 경우 국민들에게 심한 능욕감을 주어 그와 관련된 건 일절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몽클레르 홍보 이사 B씨는 “처음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면서 “혹시라도 우리 제품이 맞을까 봐 4~5년 전 룩북(lookbook·출시된 제품 사진을 담은 것)까지 모두 뒤졌다”고 말했다. “국내로 들여오는 제품에는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최씨가) 몇 년 전 유럽 어딘가에서 샀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동안 출시된 디자인을 다시 뒤질 수밖에 없었죠. 몽클레르 그레노블 라인이 있는데 비슷한 디자인 제품은 있긴 있지만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디자인은 하나도 없거든요. 패딩 뒤편에 골지(골이 있는 원단)가 있는 제품도 전혀 없고요. 차라리 로고라도 보였으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을 텐데요.”

지난달 28일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상태라 몽클레르 쪽은 더욱 전전긍긍이라고 했다. “최순실 신발장에 몽클레르 제품이 있다는 뉴스를 때마침 방한한 본사 회장님도 알았어요. 회장님은 ‘고객의 선택’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가십에 오르내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최근 청담동 명품가에 등장한 이론은 ‘메이드 바이 고영태’다. 고영태는 기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가방을 만들어주면서 최순실과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모 잡지사 편집장은 “아무리 봐도 명품 디자인을 카피해 만든 것 같다”며 “사진을 확대해보니 스티치 같은 디테일이 조악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또 다른 잡지 에디터는 “명품이란 건 허영과 사치심을 먹고 사는데 최순실이 설사 명품을 휘감았던들 고급스럽기는커녕 초라한 졸부 행색이라 명품 업계를 당혹시킨 것”이라고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그동안 각종 게이트와 관련된 명품들은 상류층 여인들이 걸치는 제품으로 일종의 ‘검증’을 받은 셈이라면, 최순실은 무당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등 그가 쌓아놓은 이미지가 너무 음울하고 불순해 제아무리 명품이어도 따라 하고 싶지 않은 사회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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