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복자 윤지충, 어머니 유언으로 제사 거부: 제1회 진산성지 교회사 학술발표회

Marine Kim 2016. 11. 17. 12:48

“신주 불태운 복자 뒤에는 가족 있었다”

김수태 교수, 제1회 진산성지 교회사 학술발표회에서


‘시대를 앞서간’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 1759~1791)과 권상연(야고보, 1751~1791) 복자.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태워 버린 윤지충과 권상연 복자의 폐제분주(廢祭焚主) 사건, 그 신앙의 뿌리에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거부하게끔 한 윤지충의 어머니이자 권상연의 고모인 안동 권씨가 있다.

이를 조명하기 위한 제1회 진산성지 교회사 학술발표회가 5일 진산성지성당 교육관에서 진산성지(전담 김용덕 신부) 주최로 열렸다.

김수태(안드레아) 충남대 교수는 ‘안동 권씨 부인의 유교식 조상제사 거부’를 주제로 한 첫 발제에서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1797년 8월 15일 자로 쓰촨 대리감목인 디디에르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안동 권씨 부인이 윤지충과 권상연에게 자기가 죽었을 때 그 어떠한 미신 행위나 우상 숭배 행위 같은 요소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그렇기에 윤지충 복자는 어머니를 위한 신주를 새롭게 만들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구베아 주교가 1797년 서한에서 윤지충과 권상연 복자의 순교 이후에 일어난 기적, 곧 박해 때문에 신앙생활을 중단했던 마음 약한 신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됐고 많은 양반들이 회개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한 것을 상기하고, 구베아 주교의 사료는 조선 측 기록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닌 사료로 봐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또 안동 권씨 부인이 조상제사를 거부한 배경은 △ 자신이 천주교 신자이기에 조상제사를 거부할 수밖에 없고 △ 조상제사를 미신행위나 우상숭배 행위로 봤기 때문이라며, 안동 권씨 부인은 조상제사가 천주교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거부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석원 수원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조선후기 진산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거주지 이동’, 방상근 내포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이 ‘개화기 진산지역 신앙공동체의 재건과 발전’에 대해 각각 주제 발표했다.

김용덕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뿌리 깊은 믿음으로 인한 아들 윤지충과 조카 권상연의 순교로 한국 천주교회의 정신과 기틀이 형성됐다”면서 “첫 순교의 반석 위에 한국 교회는 일어서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호, 오세택 기자]


진산성지, 제1회 교회사 학술발표회... ‘진산지역 천주교 신앙공동체의 재조명’ 주제

“복자 윤지충, 어머니 유언으로 제사 거부”


한국 천주교의 첫 박해 사건인 신해박해 즉 ‘진산 사건’과 진산지역 신앙공동체 역사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진산성지(전담 김용덕 신부)는 11월 5일 성지 교육관에서 ‘진산지역 천주교 신앙공동체의 재조명’을 주제로 ‘제1회 진산성지 교회사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학술발표회에서는 김수태 교수(충남대)가 ‘안동 권씨 부인의 유교식 조상제사 거부’를 주제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기존 연구에서 이미 검토된 진산사건의 두 주인공인 윤지충과 권상연에 대해서가 아니라, 윤지충의 어머니이자 권상연의 고모인 안동 권씨 부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안동 권씨 부인은 북경의 구베아 주교 서한과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아들 윤지충이 유교식 조상제사를 거부하도록 유언을 남긴 인물이다.

김 교수는 “안동 권씨 부인은 조선 후기 유교 사회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자각이라는 부분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그녀의 의지로 말미암아 윤지충과 권상연이라는 최초의 순교자가 탄생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산사건은 1791년 윤지충(바오로)이 유교식 제사를 거부해 발생한 사건이다. 1791년 어머니인 안동 권씨 부인의 상을 당하자 윤지충은 정성을 다해 상례를 치렀다. 하지만, 윤지충은 사촌 형인 권상연(야고보)과 상의해 권씨 부인의 유언에 따라 신주를 모시는 등의 유교식 제사의식을 거행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패륜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체포령이 떨어졌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자수했으며, 1791년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돼 순교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지난 2014년 복자품에 올랐다.

김수태 교수에 이어서 이석원 책임연구원(수원교회사연구소)이 ‘조선후기 진산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거주지 이동’을, 방상근 책임연구원(내포교회사연구소)가 ‘개화기 진산지역 신앙공동체의 재건과 발전’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에는 임혜련 교수(숙명여대), 이원희 교수(강원대), 서종태 교수(전주대)가 참가했다.

진산성지 전담 김용덕 신부는 인사말에서 “한국교회 첫 순교자들의 자리인 진산에서 이들의 삶의 외침을 듣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라면서 “첫 순교의 반석이라는 교회의 값진 보물을 널리 알리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16년 11월 13일, 최용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