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시대를 뛰어넘는 열정의 사도 바오로: 유럽의 중심,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언덕

Marine Kim 2016. 11. 17. 12:49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 시대를 뛰어넘는 열정의 사도 바오로

유럽의 중심,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언덕


- 아테네 시가지 전경.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배기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재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우뚝 서있습니다.

아테네는 기원전부터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의 수도이자 인구 약 480만 명의 대도시입니다.

세계에서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고대 신전을 비롯한 건축물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아테네 한복판에는 니케 신전, 플리아스 신전, 헤파이스토스 신전, 파르테논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아테나 신전 등의 유적이 허물어진 상태로도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다양한 신전, 수많은 신에게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분명한 것은 아득히 먼 고대나 21세기인 요즘이나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도할 이유가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 어느 시대나 살아간다는 일은 절대 쉽지 않으니까요.


문명의 본고장, 아테네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며 문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수의 한정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시민 민주주의가 태동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대 아테네는 높은 문화 수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지금까지 존재한 도시 가운데 가장 문명화된 도시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철학과 문학, 정치, 예술, 종교 방면의 뛰어난 인물이 수없이 배출된 지혜롭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고 가르쳤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며 죽어갔고, 그의 제자 플라톤이 아테네에서 활동했던 광경을 상상해 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 지금도 공사 중인 파르테논 신전.


몇 년 전 방문했던 아테네는 토론이 활발하고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테네 시민들은 큰 목소리와 강한 몸짓으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뚱뚱한 80대 할머니 한 분이 비키니 차림으로 경치가 빼어난 바닷가를 활보하고 수영하는 모습은 제게 큰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뚱뚱한 할머니도, 날씬한 사람도 모두가 주변의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림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자유와 토론의 도시, 아테네에서 요즘 우리나라 신자들의 태도가 떠올랐습니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을 반드시 해결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펼칠 때도 흥미를 보이며 알려고 했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흔히 사람들은 말합니다. “천주교는 참 점잖은 종교인가 봐요. 조용해서 좋아요. 억지로 전교를 하지 않아서 좋아요.” 이런 말들은 칭찬일까요, 비판일까요? 혹시 성경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신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교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은 아닐까요? 다른 의미에서 천주교는 전교하지 않고 자기의 구원에만 안주한다는 비판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수도생활이 25년째에 접어듭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레드카드와 같습니다. 살아온 햇수가 늘어가면서 열정이 줄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태함에 안주한다면 이는 죽음의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태도를 경고하며 악과 같은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늘 자신을 채찍질하고 단련하여 생기 있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의 연설

- 바오로 사도가 설교한 자리인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언덕.


가슴에 언제나 열정이 불타오르던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전도여행 때 아테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지는 것도 사실 이런 열정 때문입니다. 유럽의 중심(당시에는 마케도니아)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그리스어 Areios Pagos : ‘아레스 신의 언덕’이란 뜻)에 드디어 바오로 사도가 서게 되었습니다. 아고라(광장, 시장)에서 조금 가면 볼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에 돌로 이루어진 언덕이 바로 사도행전 17장에서 말하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입니다. 지금은 수십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경사가 완만한 작은 언덕입니다.

이곳 아레오파고스에서 사도는 거기 모인 시민과 철학자들, 그리스 시인들 앞에서 하느님에 대해 열렬하고 강력한 설교를 했습니다.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에 빠져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지만, 이곳 사람들이 바오로에게 답변을 요구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새로운 가르침을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겠소?”(사도 17,19)

바오로는 호기심이 많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기꺼이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하느님 나라와 부활에 관한 설교를 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그리스도교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겁니다.

아레오파고스의 설교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 상이나 은 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사도 17,29)라는 점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물론 죽은 이들의 부활 소식도 전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비웃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와 박해를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의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사도 17,32.34).

당시의 신화와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던 아테네에서는 선교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떠벌리는 이나 교만스러운 이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는 이곳 아테네에서만은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바오로의 아테네 선교를 실패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이지만 아테네에서 바오로의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상황을 묵상하며 저의 수도생활을 되돌아봅니다. 수도생활은 공동체 생활이며 동시에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분명 외로운 생활이지만 그런데도 수도생활을 잘 유지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말이 잘 통하는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형제들의 수는 적지만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

바오로가 몇몇 사람의 힘을 얻어 다른 도시로 전교를 떠나는 힘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수도자라 해도 ‘절친’은 극소수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수도원은 사랑이 넘치는 장소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수도원이나 형제들이 개인주의(이기주의)경향을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거나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 수사가 있다면 이는 큰 복입니다. 수도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바오로가 소수 사람들의 지지로 선교를 지속하듯이 저도 몇몇 절친 수사와의 우정으로 이 멋지고 아름다운 수도자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달릴 길을 달리는 바오로의 사명

아테네에서의 쓰라린 경험인 교회 공동체 설립의 실패(?)를 뒤로 하고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18개월간이나 머물며 공동체를 세우고 많은 사람에게 전교하는 커다란 결실을 만들어냅니다. 아테네의 쓰라린 경험이 약이 되고 유익한 체험이 된 것입니다.

아테네의 아픈 경험은 어쩌면 바오로 사도가 처음 겪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문화의 도시인답게 자만에 빠져 우상숭배에 가득 차 우스꽝스러운 사도의 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은 바오로 사도의 편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도는 난관과 마주했을 때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사도에게 난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음 예화도 하나의 난관입니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바오로는 아테네의 신전 비문에 적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글을 보고 이런 신이 있다는 것에 어이없어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사도 17,23)하며 그들이 모르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에 관해 열심히 설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 시민들의 태도에 실망하여 복음 전파를 그만 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더욱더 가슴에 불이 타올라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가운데 결국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승리의 월계관을 씁니다.

수도원에서 다양한 사도직을 형제들과 함께 수행하다 보면 신나는 일도 많습니다만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성격과 가치관이 현저하게 다르다보니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들은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우리의 선교 사명을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저 또한 지치고 힘이 들 때 제 사명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럴 때 아테네를 떠올리며 바오로 사도를 생각하고 그의 열정을 본받습니다.

저희 수도회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말씀도 기억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 너희와 함께 있으니, 나 여기서 비추리라. 너희 죄를 뉘우쳐라.” 이 말씀을 날마다 읽으며 다짐합니다. ‘다양한 대중 홍보매체를 통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저의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선포하게 하소서. 바오로 사도여,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김동주 토마스 - 성바오로수도회 수사로 성바오로출판사 사장을 맡고 있다. 심리독서치유 전문가로 독서치료 모임인 ‘마음으로 책읽기’를 담당하고 있다. 「바오로 로드를 가다」라는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글 · 사진 김동주 토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