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성 안드레아 사도 그리고 스코틀랜드

Marine Kim 2016. 11. 17. 12:50

[세상 속의 교회읽기] 성 안드레아 사도 그리고 스코틀랜드


성 안드레아, 십자가의 사도

대림시기를 맞이할 즈음인 11월30일에 교회는 성 안드레아 사도를 기억한다. 이 성인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성 베드로 사도의 아우라는 점,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특이하게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는 점 정도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열두 사도들 중에서도 성 베드로 사도와 성 요한 사도에 이어서 세 번째로 우리네 입에 오르내리는 성인에 대해서 좀 더 짚어 보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는 확고한 믿음을 주셨고, 요한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주셨다면, 안드레아에게는 거룩하신 스승의 십자가를 드러내 보일 사명을 주셨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교회가 정녕 교회다워지는 것은 바로 이 세 가지, 곧 믿음과 사랑과 십자가로 말미암아서다. 그러기에 성 안드레아를 십자가의 사도로서 기억하면 좋겠다.

대부분의 사도들이 그러했듯이, 성 안드레아도 목숨을 바쳐 복음을 증언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느 십자가와는 다르게 X자 모양으로 생긴 십자가에 이틀 동안이나 달려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이런 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성인을 십자가의 사도라고 일컫자는 것은 아니다. 기록을 보면, 성인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보는 순간 기뻐서 외쳤다.

“오, 참 좋은 십자가여, 너는 내 주님의 몸을 모심으로써 아름다워졌구나! 내가 너를 참으로 오래도록 바랐고 간절히 사랑했으며 끊임없이 찾아마지 않았는데, 이제 드디어 마련되었으니 내 영혼이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구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내가 뽑혀 내 주님께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주님께서는 너로 해서 나를 받아 주시고 너로 해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구나.”


성 안드레아와 스코틀랜드의 각별한 인연

성인은 60년 11월30일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성인의 유해는 순교한 지 300년이 지나서 콘스탄티노 황제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그런데 특별히 스코틀랜드에서 1천 년경부터 널리 공경을 받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공식 수호성인이 된 것은 1320년에 와서다. 그 해에 스코틀랜드의 지도층 인사들은 스코틀랜드를 지배하려는 잉글랜드의 시도에 맞서서 시국선언문을 작성하여 발표했다(아브로스의 선언). 이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성인은 수호성인으로서 확고하게 인식되었다.

성 안드레아 사도가 스코틀랜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세기부터다. 당시 왕이던 욍거스 1세가 성인의 유해를 스코틀랜드로 옮겨 모시고는 그곳을 성 안드레아 마을이라 불렀고, 그곳에다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 그 후계자인 욍거스 2세가 수도인 에든버러 부근까지 침공해 온 잉글랜드 전사들에 맞서 존망이 걸린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군사의 수를 보더라도 아주 열세인 상황에서, 욍거스 2세는 전투 전날 밤에 기도를 했다. 성 안드레아에게 자신이 만약 싸움에서 이긴다면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겠노라고 약속했다.

- 스코틀랜드 국기.


그리고 전투 당일, 하늘에는 X자 모양의 구름이 떠 있었고, 승리는 욍거스 왕의 몫이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파란색 바탕에 성인의 상징인 X자 모양의 십자가를 흰색으로 새겨 넣은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385년부터는 이 깃발이 스코틀랜드의 상징으로, 곧 국기로 사용되었다.

중세기의 인기 많은 순례지로서 16세기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찾던 성 안드레아 마을에는 성인의 치아, 무릎뼈, 팔과 손가락의 뼈들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유해들은 16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종교 혁명이 일어났을 때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70년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아말피(Amalfi)의 대주교가 성인의 어깨뼈 일부를 스코틀랜드로 보냈고, 이 유해는 에든버러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모셔졌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각별한 사이

성인의 축일인 11월30일을 스코틀랜드에서는 휴일로 지낸다. 그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칠 때는 따라오는 월요일을 대체 휴일로 정할 정도로 확실한 휴일로 지낸다. 그리고 2006년에는 이날이 은행 휴무일로도 정해졌다. 자기 나라의 수호성인 축일에 은행이 문을 열지 않는 것은 북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다(성 파트리치오). 전통적으로 이날은 스코틀랜드의 성 안드레아 대학교 학생들도 등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날, 영국 수상과 스코틀랜드 지방정부의 제1 장관이 성 안드레아 축일 기념 메시지를 발표하고, 전국에 걸쳐서 음식과 음악과 춤을 곁들인 그들 나름의 문화행사들을 펼친다.


- 바베이도스 상징 문장.


성인은 또한 잉글랜드의 가터 훈장에 이어 세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 품격 있는 훈장들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엉겅퀴 훈장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 안드레아가 스코틀랜드만의 성인은 아니다. 성인은 그리스, 러시아, 바베이도스 등의 국가들과 이탈리아의 도시 아말피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특히 바베이도스에서는 성인의 축일을 독립기념일로 지낸다. 그리고 성인은 바베이도스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에 포함되는 상징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될 정도로 기려지며, 국가에서 공훈자를 표창할 때도 성인의 이름이 들어간 작위나 칭호를 수여한다.

11월30일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날이다. 동부 유럽과 중부 유럽의 나라들, 가령 루마니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에서는 이날이 남자 친구 없는 아가씨들이 장래의 남편감들을 점쳐 보는 날이다. 루마니아에서는 젊은 여성이 밀알 41개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베개 밑에 놓아두는 풍습이 있다. 만일 그날 밤에 그 여성이 누군가가 와서 그 밀알들을 훔쳐가는 꿈을 꾸면, 그것은 곧 이듬해에 결혼하게 될 조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날 밀랍을 녹여 열쇠 구멍으로 부어서 차가운 물속으로 흘려보내는 풍습도 있다. 그렇게 해서 밀랍이 굳어 생긴 형태가 장차 그 아가씨의 남편이 될 사람의 직업을 말해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기 때문이다.

어부들, 생선 장수들, 엄마가 되기를 바라는 여성들, 가수들, 독신녀들, 처녀들, 목 부위의 질환, 통풍의 수호성인으로서도 매우 바쁜 성 안드레아는 그만큼 인기도 높다. 이를테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 구글이 해마다 성 안드레아 축일이면 구글 두들(Google Doodle)을 게재할 정도로 말이다. 구글 두들이란 구글 홈페이지에 기념일이나 행사, 업적, 인물을 기념하고 기리는 특별 로고를 그때그때 만들어서 게재하는 것을 말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교리교육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