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La Vie.
세라비 C'est La Vie (가사와 해석)
Have your leaves all turned to brown?
Will you scatter them around you?
C'est La Vie.
이것이 인생이겠지.
당신의 잎새들은 모두 갈색으로 물들었는가?
그 잎새들은 머지않아 당신의 발 밑에 떨어지겠지.
이것이 인생일거야.
Do you love?
And then how am I to know
if you don"t let your love show for me?
당신은 사랑하는가?
당신이 그 마음을 내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당신의 사랑을 알 수 있을까.
Oh~~ C'est La Vie.
Oh~~ C'est La Vie.
Who knows, who cares for me?
C'est La Vie.
오~~ 이것이 인생이겠지.
오~~ 이것이 인생일거야.
누가 내게 마음 기울이는지,
누가 날 기억하는지...
In the night, do you light a lover"s fire?
Do the ashes of desire for you remain?
Like the sea, there"s a love too deep to show.
Took the storm before my love flowed for you.
C'est La Vie.
깊고 어두운 밤, 당신은 사랑의 등불을 켜는가?
타고 남은 재가 아직 남아있는가?
바다처럼 너무 깊어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다네.
당신에게 흐르는 내 앞의 폭풍이 잠들기를 바라네.
Like a song, out of time and out of time,
All I needed was a rhyme for you
C'est La Vie.
노래가 끝이 난 것처럼 이제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지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한 시와도 같았는데,
이것이 인생이겠지.
Do you give, do you live from day to day?
Is there no song I can play for you.
C'est La Vie.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당신은 그런 사랑을 주고 있는가?
당신을 위해 불러 줄 노래가 나에겐 더 이상 없네.
이것이 인생일거야.
김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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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비(c'est la vie)
幼年時節 그는 富裕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家庭에서 六 男妹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어린 時節 6.25事變에 避難 가는 苦生도 겪으며 어린 時節을 보냈다. 比較的 溫純한 性格이며 어린이답지 않게 흔히들 점잖다고 表現하는 그런 성격의 어린이였다. 避難時節에 다른 親戚들은 가물가물 앞서가는데 이 어린이는 엄마와 이모의 손을 잡고 이끌려 가다시피 하는 渦中에 엄마의 애타는 心情은 아랑곳하지 않고 6살 나이에 초저녁잠이 많은 그는 눈이 하얗게 덮여있는 들판에 이불을 펴 달래며 응석을 부리던 記憶을 어렴풋하게 하고 있기도 했다. 休戰協定이 發效된 후 다른 집들은 굶어죽네 먹을거리가 없네 하며 이웃에게 糧食을 꾸어다가 죽을 쑤어서 延命하는 상당히 어려운 時節에 이 어린이는 하루 세끼를 쌀밥은 아니지만 보리를 약간 섞은 밥을 먹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남들은 꽁보리밥에 고추장이나 된장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우리만 잘 먹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恒常 밥에 雜穀이나 보리를 섞어 아이들에게 節約精神을 심어 주셨다고 한다. 이 어린이는 몸이 무척이나 약하고 腸이 나쁜 關係로 慢性 泄瀉病을 앓고 있었는데 이제는 故人이 되신 외할머니가 여러 가지 菓子를 사 가지고 오셔서 죽기 전에 한이라도 되지 말라고 하시면서 주셨는데 그 후로 차츰 健康을 回復하여 저승길을 가지 않고 成長하게 되었다.
少年時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初等學校에 入學한 그는 아무 탈 없이 學校生活에 適應을 해나가면서 學窓時節이 始作되고 學年이 하나, 둘 올라가면서도 이렇다 할 特異한 점이 없었으나, 學校工夫는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工夫가 하기 싫어서 成績이 中下位圈에서 맴돌고 있었으며, 初等學校를 卒業하고 中學校는 一流는 아니지만 二流程度의 中學校에 應試하여 合格하였으며 반 아이들과 圓滿한 校友關係를 맺는 등 큰 問題없이 얌전하게 生活하던 중 같은 반 개구쟁이 하나가 자꾸 귀찮게 하니까 왼 주먹으로 개구쟁이의 코를 한 대 쥐어박았는데 여기에서 問題가 發生되게 되었다. 事緣인즉 얻어맞은 그 녀석의 코뼈가 부러지게 되었고 급기야 그의 父母가 學校에 오셔서 누가 우리아이의 코뼈를 부러뜨렸느냐 하며 亂離가 났다. 이 사람은 相對 父母님 앞에서 제가 그랬습니다. 하니 자기 아들보다도 기도 적고 얌전하게 생긴 학생이 그랬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지 다시 한 번 事實 確認을 한 후 왜 그랬느냐고 理由를 물었으며 “사실은 저는 가만히 있는데 저 녀석이 자꾸 귀찮게 장난을 걸기에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됐다”고 하니까 다른 아이들도 하나같이 그녀석이 장난을 너무 심하게 친다고 異口同聲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 父母님은 “그럼 우리 아들이 잘못했구나.” 하시면서 “돌아오는 日曜日에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지 않으련? 하시기에 未安하기도 하고 해서“예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對答을 한 후 日曜日에 親舊 집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그 후로는 그 親舊도 장난 끼가 줄어들었고 특히 나한테는 더 親切하게 대해 주었단다. 高等學校 入學試驗에 合格하고서도 學校가 흔히 이야기하는 三流學校라며 가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남들은 다 學校를 가는데 집에 있으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보내달라고 어머니께 졸라서 學校엘 찾아가니 이미 充員이 끝났다고 하면서 合格한 사실이 있으니 夜間을 한 학기 다니면 晝間으로 編入 시켜준다기에 팔자에 없는 夜間學校 生活을 하게 되었으며, 在學時節엔 父母 몰래 好奇心에 담배를 피워 보기도 한 철부지이기도 했다. 하교 길에 若干의 장난 끼가 있었던 그는 煉炭을 때고 살던 時節 도로 가에 버릴 연탄재를 내 놓으면 길에 다니기 不便하다고 그 집 담에 올라가 연탄재를 올려놓고 小便을 보아 꽁꽁 얼려 골탕을 먹이기도 하였으며, 2학기에 晝間으로 編入되어 本格的으로 高敎時節의 生活이 始作되었다. 집에서 學校까지 십리가 넘는 길을 새벽밥을 먹으며 부지런히 걸어서 學校를 다녔으며 下交 길에 때로는 D여고 가사실습실에 들어가서 요리 실습한 飮食을 도시락에 가득 담아 가지고 나오다 學校 급사한테 들켜서 줄행랑을 치기도 할 程度로 개구쟁이를 닮은 면도 있었으며 卒業이 가까워져 大學의 꿈을 키우고자 나름대로 努力하였으나 結局 大學入學試驗에 낙방한 후 四寸兄이 運營하는 食品會社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만하고 會社가 不渡나는 바람에 給與도 받지 못하고 失業者가 되면서 그의 앞길에 많은 變化가 始作된다.
靑年時節 고교를 졸업 후 외삼촌이 운영하시는 병원 일을 4년 정도 하면서 그가 일생의 신조로 삼는 휴머니즘의 토대가 마련된다. 원래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병원에서 일을 하며 너무나 많이 죽어 가는 사람 앞에 눈물을 흘려 기도하고, 완쾌되어 떠나는 환자에게 가슴에서 우러나는 고마움과 보람에 가슴 시린 세월을 보냈다, 군에 입대하여 삼 년의 세월을 보낸 후 만기 제대하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삼성건설 영월출장소장으로 계셨던 이산가족인 사촌 매형의 주선으로 현장 총무일을 하게 되었다. 1972년 대홍수가 나서 영월 동강철교가 무너지는 참사가 발생하며 산 속의 절로 피난을 가서 절에서 삶아주는 한 주먹만큼의 국수로 여름밤을 지새운 적도 있고 학교 증축공사 건설현장에 있는 거푸집을 학교 교무주임이 소리 없이 가져다 사용한다고 학교 교무주임 선생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장면을 교장선생님과 육성회장, 매형이 목격하고는 뚱뚱한 배를 움켜쥐고 뛰어오시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다 듣고 난 후에 “당신은 정말 멋있는 젊은이”라며 “우리 저녁에 술 한잔하세” 하시기에 흔쾌히 대답하고 저녁 술자리에서 갑자기(?) 홀아비인 학교 육성회장이 “자네 내일 나 좀 만나세” 하시기에 “예 그러시지요.” 대답을 한 후 다음날 만나 뵈니 자네 우리 딸이 있는데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에 아직 직장도 변변치 않아서 “지금은 따님을 데려와서 굶기기 알맞으니 그렇습니다.” 했지만 그 후로도 매형을 통하여 여러 차례 의사타진이 있었으나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그 후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풀 빵집, 신문. 잡지장사, 꽃가게 점원, 기성복 판매사원, 보험회사 외판원, 들판의 보리밭을 뭉개고 돼지와 토끼도 키워보며 숱한 고생을 하게 되었다.
長年時節 외숙부의 소개로 대구의 기능대학에 입사한 후 그때부터 봉급쟁이의 길로 들어서는 출발이 시작되었단다. 그간 세 명의 여동생 혼기도 있어 미루었던 결혼을 하기 위하여 일곱, 여덟 번의 선을 보고 결혼도 하게 되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적지만 알뜰하게 살아주는 미인형인 부인의 내조로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어느 날 막내 동생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에 그는 실신까지 하게 되고, 자식이 사망한 후 눈물로 지새우는 부모님의 생각에 서둘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지근거리에서 살게 되었다. 아이들도 점점 자라서 이제 큰아이가 고등학생, 딸이 중학교 졸업 직전에 호주로의 유학을 보내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많은 돈이 들어가니 가정생활도 어려워지고 외화부족으로 나라가 온통 거지가 되었다며 난리 법석이 나서 환율이 천정부지로 솟아올라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무렵 딸이 호주의 고등학교에 합격하여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라 귀국하게 되었는데, 외환위기에 직장도 구조조정을 한다느니 하며 불안하여 딸아이를 설득하여 자퇴시키고 귀국하도록 하였단다. 그 후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하고 아들은 먼저 대학생이 되었고 현재는 군복무중이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그는 남이 불쌍하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라도 주고자하며 항상 눈물도 많고 감정이 풍부하여 한편의 드라마, 한편의 영화에 눈물을 짓기도 한다. 꾸미지 않고 자연스런 멋을 좋아하는 유안진 씨가 쓴 “지란지교를 꿈꾸며”처럼 그는 세상을 살아가며 부인을 지극히 사랑할 줄도 알며, 굳이 없는 것을 보이지 않으며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이며, 남편이며 가장이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살아가야 할 대비와 걱정도 하며, 열심히 살아가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살아가며, 삶의 목적에 대하여 나름대로 많은 생각도 하고 난초를 사랑하여 그 들과 대화도 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老年時節 어느덧 황혼초기에 들어선 그는 요즈음 들어 걱정이 많단다. 결혼이 늦어 자식이 어리기 때문이며 앞날의 생활에 대하여 헤쳐 나갈 방법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의 소원은 널따란 대지에 자그마한 통나무집을 짓고 난을 배양할 온실도 만들고 싶고, 집 한편에 널찍한 이층으로 시설을 만들어 1층은 생활공간을, 2층은 침실로 갈 곳 없는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입혀주고 먹여주고 교육도 시켜 힘닿는 한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으며, 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런 소망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오늘도 걱정을 해보고 있기도 하고, 그는 지금까지 건강한 육체를 주신 신에게 세상에서 나 자신이 가장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그리고 세상사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믿고 싶다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는 종교개혁자도 신학자도 아니면서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그리하여 먼 훗날 그것이 내일 올지도 모르긴 하지만 사는 날 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을 해보며, 따뜻한 어느 봄날 자는 듯 누운 듯 난초 향기 너울너울 춤을 추는 허공으로 난 향기와 함께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소원이 있단다.(2007. 05)
* 세라비(c'est la vie)는 불어로 그것은 인생(c'est la vie)이라는 의미임.
김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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