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16.04.22 08:16 | 수정 : 2016.04.22 11:19
"1930년대부터 1990년대 까지 음악을 듣기 위한 가장 대중적인 매체"
"판 뒤집고 바늘 먼지 닦고… 우리 음악은 LP로 들어야 맛"
"음원보다는 음반… 디지털 음악 판칠수록 LP 살아나리"
1948년 6월 어느날 아메리칸 컬럼비아사는 1분간 78번 회전하는 종래의 SP(short playing) 레코드와는 다른 33⅓회전 LP(long playing) 레코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소재(플라스틱)와 크기는 동일하지만, 녹음선, 혹은 소릿골을 보다 촘촘히 새겨넣은 '마이크로 그루브(micro groove)' 녹음이었다. 한달뒤 '라이프' 표지에 LP를 개발한 피터 골드마크 박사가 8피트 높이로 쌓아둔 SP판 옆에서 이 판들을 옮겨 녹음한 LP를 한손에 들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골드마크 박사는 원래 컬럼비아 방송사의 컬러TV 개발책임자였으나, 그 자신 첼리스트로 클래식음반을 듣는 것이 취미였다.
당시 SP는 12인치짜리 한쪽면에 불과 4분정도 음악을 수록, 연주시간이 긴 클래식음악을 담아내는데 많은 제약이 따랐다. 한 예로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곡을 담는데 무려 50장의 SP판이 필요했다. 4분마다 판을 바꿔가며 음악을 듣는 번거로움에 진력이 난 그는 컬럼비아레코드사에 LP 개발을 건의, 자신의 책임 아래 3년간 연구끝에 비닐디스크 한쪽 면에 27분간 음악을 담는데 성공했다. 음역도 크게 넓어지고, SP와 달리 쉽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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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는 CD가 등장하기 전까지 음악을 재생하기 위한 가장 대중적인 매체였다. 70년대 LP을 틀어주는 음악 다방들이 성행했고, 레코드샵들이 번화가마다 즐비했다. 많은 곡을 담을 수 있는 LP의 등장은 본격적인 앨범(Album) 체제를 만들었다. LP로 인해 음악가들은 음악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앨범 컨셉을 정해 포맷 형식으로 앨범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또한 음악의 대중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LP이전의 SP는 부피와 재생시간의 제한 때문에 음악감상이 번거로웠다. 이런 한계 때문에 쉽게 음반화되지 못했던 음악들을 LP 덕분에 간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97년 만난 서라벌음향 사장이자 국내 유일의 LP 제조 기술자인 홍창규 씨는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서 옆 사무실 사장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서라벌음향은 80년대 국내 대표 음반사인 서라벌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 업체 서라벌미디어의 모기업. 홍 사장은 80년 입사한 뒤, 2001년부터 혼자 남아 국내 LP 생산을 전담하고 있다. 그마저 이 공장을 닫으면 국내 LP는 외국에 나가 찍어와야 할 형편이다.
"직원이요? 저 한 명뿐입니다. 그것도 많아요. 이젠 전기세, 기름값은커녕 집세도 내기 어려워요." 그는 '히식스…' 이후 지난 2월 역시 비트볼뮤직에서 주문받아 '캔터베리 뮤직 페스티벌' LP를 찍은 이후 단 한 건의 일감도 없었다고 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서라벌레코드 직원은 60명에 달했다. 프레스, 레이블, 포장, 검품, 배송 등으로 부서가 나뉘어 북적였고, 지금 가구 창고들이 들어선 잔디밭에선 직원들이 축구·배구를 했다. 당시 프레스 10대가 하루에 6000장씩 LP를 찍어냈다. 그러다 불현듯 CD시대가 왔다. 회사 부지는 경매로 팔렸고, 경영진과 직원들 모두 회사를 떠났다. 그가 기억하는 서라벌의 마지막 LP 뮤지션은 '현진영', '공일오비', 그리고 '뉴키즈 온 더 블록'이다. 지금 남아 있는 프레스는 단 두 대. 나머지는 모두 고철값 2만~3만원을 받고 팔아 버렸다.
"서라벌에서 나온 그 숱한 히트 음반들이 모두 제 손을 거쳐 갔죠. 지금은 LP 매니아들을 위한 희귀 음반, 그리고 힙합에서 쓰는 LP가 전부인데 그것도 워낙 주문량이 적어요." LP는 PVC와 카본, 안정제 등을 섞어 가열해 원료를 만들고 홈이 양각된 니켈판을 프레스에 걸어 찍은 뒤 물로 냉각시켜 완성된다. "고교 졸업하고 보일러기사 면허증을 따서 입사했습니다. 그때 일산이 전부 논밭이었어요." 그는 눈이 많이 오면 구파발 언덕을 버스가 못 넘어, 걸어오곤 했다고 추억한다. "음악 박물관 같은 데서 가끔 연락오데요. LP기계를 전시할 테니 혹시 문 닫으면 연락 달라고요." 그는 들릴락말락 "남의 속도 모르고…"라고 희미하게 말했다. 사무실에 놓인 LP랙에 "음악을 들으면 예뻐져요"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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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와 스피커들이 빼곡히 들어선 20여 평의 오디오 전시실 한복판도 턴테이블 차지가 됐다. 매장을 찾는 고객 가운데 90%는 40~50대 전문직 남성. 보급형 턴테이블은 100만원 안팎이지만, 고급형은 2억8000만원짜리도 있다. 그는 "5년 전부터 조금씩 수요가 살아나더니 지금은 매달 5~6대씩 꾸준하게 팔린다"고 했다.
1980년대 CD, 1990년대 MP3의 등장으로 사멸 위기에 내몰렸던 LP의 회복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음반사인 씨앤엘뮤직과 유니버설뮤직코리아는 최근 LP 음반 5종을 함께 내놓았다. 카라얀의 마지막 음반인 브루크너 교향곡 7번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소품집,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그리스 민요 모음 등 1980년대의 LP 명연(名演)들이다. 단종된 희귀 음반들만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수백만원대에 거래되던 중고 LP 시장에서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정경화의 소품집은 보름 만에 500장이 모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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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고음질 CD로 발매했던 말러 교향곡 전집을 500종 한정판의 LP로 다시 내놓았다. LP 22장으로 무게 13kg, 가격 80만원에 이르지만 출시 한 달 만에 1~2종밖에 남지 않은 상태. 영국의 테스타먼트 음반사도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의 쇼팽 '연습곡'과 요한나 마르치(바이올린)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등 미공개 녹음을 LP로 발매하고 있다.
LP 부활의 원인
복고문화와 향수 : LP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부터다. IMF 이후 오랫동안 소장해 온 LP를 내놓는 사람이 늘어난 데다, 사회 전반에 부는 복고풍이 영향을 끼쳤다. 98년 무렵 중고 LP 상점이 늘었고, 동호회 움직임도 활발했다. 당시 서울 회현동 지하 상가에는 최근 LP 가게 네 곳이 새로 문을 열기도 했다.
'LP 열풍'은 IMF와 무관하지 않다. LP 애호가들이 IMF 이후 쪼들리는 자금을 대려고 판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난 98년 봄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껏 꾸준하다. 이들은 대부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원판을 어렵게 구하곤 하던 사람들. 그래서 회현동 시장에 나와있는 LP들은 한 장 한 장 애틋한 추억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LP는 대부분 중고품이었다. 당시에 발매되는 앨범은 모두 CD 형태를 띠고 있었고, LP 문화를 아는 이들이 대부분 중장년층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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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문화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곳
비틀스가 1966년 발매한 'Yesterday and Today' 앨범은 '도살자(bu-tcher)'란 별명이 붙어있다. 비틀스 멤버들이 머리가 분리된 아기 인형과 고깃덩이를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의 커버 사진 때문이다. 이 사진이 대중의 비난을 받자 커버를 교체한 새 판이 출시됐고 초판은 희귀반이 됐다. 현대카드가 22일 서울 한남동에 여는 '뮤직라이브러리 플러스 언더스테이지'에서 이 앨범을 볼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과 제일기획 중간쯤 있는 이곳엔 1만여장의 LP와 음악 관련 서적 3200여권이 비치돼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카니에 웨스트까지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음반들이다. 그중에는 레드제플린의 데뷔 앨범 'LED ZEPPELIN' 초판이나 롤링스톤스가 딱 200장만 찍은 'A Special Radio Promotion Album'도 포함돼 있다. 1967년 창간된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의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1161권을 모두 열람할 수 있다. 자료가 있는 음악감상실은 2층, 1층은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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