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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 詩로 '북한의 지옥' 폭로/ 북한의 솔제니친, 이번엔 詩로 '지옥'을 폭로

Marine Kim 2017. 2. 11. 08:05

북한의 솔제니친, 이번엔 詩로 '지옥'을 폭로

  • 입력 : 2017.02.11 03:11

[오늘의 세상]

현역 北작가 추정 반디, 이르면 내달 첫 시집… 北현실 냉정한 묘사

- 누런 원고지에 연필로 詩 50편
'배뚱뚱이 金부자놈, 천하 왕도적' '굳어진 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 '성분타령 없인 학급장 못해먹어'

- 소설집 '고발' 해외서 좋은 반응
호기심보다 작품 문학성에 주목
美 등 20개국 18개 언어로 번역… 국내선 13일 한글 개정판 나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북한 현역 작가로 알려진 '반디'의 첫 시집이 이르면 3월 말 출간된다. 반디는 '반딧불이처럼 북한의 어둠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담긴 필명(筆名)으로 탈북자 등을 통해 밀반출한 단편 7편을 묶은 소설집 '고발'이 2014년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국내외로부터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집중 조명된 바 있다. 반디의 시가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디의 시집‘지옥에서 부른 노래’와 소설집‘고발’원고 묶음.
반디의 시집‘지옥에서 부른 노래’와 소설집‘고발’원고 묶음. 반출 당시 적발을 피하기 위해 김일성·김정일 저작집 사이에 숨겨 나왔다고 한다. 원고지 원본 사진은 작가의 필체 노출 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다. /행복한통일로
시는 모두 50편으로 북한 내 궁핍과 그로 인한 인간 존엄성 파괴, 봉건제적 폐단 등을 꼬집는다. 반디가 직접 손으로 쓴 시집의 원제는 '지옥에서 부른 노래'. 시들은 질 낮은 누런 원고지에 연필로 쓰였다. 원고를 2013년 처음 입수한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는 "탈북하다 중국 변방대에 붙잡힌 한 여성으로부터 반디 작가의 존재를 전해 듣고 중국의 지인을 통해 원고를 받았다"며 "북한에선 제대로 된 펜과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디는 1950년대생으로 현재 평양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신원은 파악되지 않는다. 통일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 반면 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 관계자들은 "북한을 그리는 솜씨가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라며 "A급 북한 작가의 작품이 틀림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도 대표는 "최근 소식통을 통해 반디 작가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며 "북한 내부에서도 처절한 싸움을 계속하는 저항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시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신성천역(新成川驛)'. 3연으로 나뉜 9행짜리 짧은 정형시다. '따기군(소매치기)의 칼날에 낟알짐(곡식이 담긴 짐) 찢긴/ 녀인의 통곡소리 내 가슴도 찢는/ 아 신성천역 공산주의 종착역.' 신성천역은 평안남도 성천군에 있는 기차역으로 북한의 주요 물류 기지다. 이곳에서 목격한 인민의 곤궁한 일상을 통해 체제의 기만을 폭로한다. 도 대표는 "시의 성격이 작품 전체를 대표해 '신성천역'을 시집 표제로 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시 '성분타령 없이야'는 혈통과 가족의 공과(功過)가 사회적 위치를 결정 짓는 북한의 봉건적 신분 세습을 꼬집는다. '성분타령 없이야/ 내가 학급장 어찌 해먹어/…/네 할애빈 악질지주 네 아버진 대 브로카(밀무역 중개상)/네 삼촌은 반공단 네 사촌은 치안대였지.' 작가의 화살은 북한 독재자 김 부자(父子) 3대로 향한다. '성분타령 없이야/ 쟤넬 우리가 어찌 다스려/…/내 할애빈 백두혈통 내 아버진 락동강 핏줄/ 내 외켠(외가)은 피살자 내 처켠(처가)은 렬사자야.' 비판의 수위는 과감하다. 시 '오적타령'은 '이 도적놈 저 도적놈 그 중에도 왕도적은/ 배뚱뚱이 김 부자놈 천하제일 명적이라/ 온 나라의 공장 농촌 한엉치에 깔고 앉아/ 백주에도 뚝뚝 뜯어 제 맘대로 탕진한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최근 반디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 판권을 담당하는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고발'은 프랑스·일본·포르투갈·미국 등 20개국 18개 언어로 번역됐다"며 "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호기심보다 작품이 지닌 문학성에 더 주목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 부커상을 받은 데버러 스미스(29)가 '고발'을 번역해 영국 작가 단체 '펜(PEN)'이 주는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번역판 발문을 쓴 피에르 리굴로 사회역사연구소장은 "반디의 글은 저항의 신 호이며 전 세계를 향한 부르짖음"이라 평했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짧은 북한 이야기가 국제적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선 출판사 다산북스가 '고발'을 첫 출간했던 조갑제닷컴에서 판권을 구매해 오는 13일 개정판을 출간한다. 3월 28일부터 나흘간 행복한통일로 주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려 15명의 해외 인사가 방한해 반디의 작품을 토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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